[만나보니] "도배든 연극이든 밑 작업이 반이에요" 도배하는 연극 배우 장종호

윤영균 2024. 3. 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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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호 배우 "주 6일을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도배하고 오후 7시 반부터 10시 20분까지 연극 연습" "고픔이 있어야죠. 하고픔, 싶음, 이런 것들이 있어야···"

극소수의 배우를 제외하고 연극 배우는 배고픈 직업입니다. 대부분의 배우가 연기와 함께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을 병행하며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 서게 하고 있을까요? 만나보니, 도배하는 연극 배우 장종호 씨를 만나 그의 열정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꿈이냐? 생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 꿈을 좇자니 돈이 안 되고 또 돈을 좇자니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어서 고민하는 분들 많으시잖아요?

만나보니, 도배하는 배우 장종호 씨를 만나보겠습니다.

Q. 배우님, 안녕하세요?

A. 안녕하세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배우 생활을 하고 있고 생업으로 도배를 하는 장종호라고 합니다.

Q. 배우는 언제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A. 제가 중2 때 영화를 한 편 봤어요. 중경삼림이라는 영화인데···

Q. 저도 좋아해요.

A. 아! 그래요.

Q. 네네

A. 중경삼림을 보고 난 다음에 부모님께 그 얘기를 했죠. 나 저거 할 거다. 그때부터 연기학원을 알아보고 입시를 치르고 극단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쭉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Q. 그러면 얼마나 되신 거예요?

A. 한 25년 정도. 전문적으로 프로 극단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배우 데뷔를 한 건 16년···

Q. 연극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16년이나, 25년이나 하시게 됐을까요?

A. 관객들의 숨소리가 막 이렇게 느껴지는 그런 공연장에서 또 끝나고 나면 인사하는데 계속 이러고 있는 사람도 있고 박수 쳐주는 사람도 있고 그날그날 분위기가 매번 새롭고 즉각적인 반응들과 그리고 함께 살아 숨 쉰다는 것. 연극의 매력 라이브죠. 네, 살아있다는 것.

Q. 라이브로 관객들의 반응을 보는 게 어떨 때는 가끔은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A. 준비가 부족하면 부담이 되죠. 저도 한참을 그랬어요. 아무리 준비해도 막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거 잘할 수 있을까? 잘한다고 얘기는 듣는데 정말 잘하는 걸까? 계속 의문을 가지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놨어요. 주변에 같이 활동하시는 선배들을 보면서 저렇게 논다고?

Q. 즐기면서 하는 그런 경지에 오르는 거예요?

A. 예, 놀고 있더라고요. 그럼 나도 논다는 마음으로 한번 해볼까? 그러고 난 다음부터는 마음이 좀 많이 편해졌어요. 그래서 관객들이 반응을 보일 때마다 조금 조금씩 좀 액팅을 좀 다르게도 하고 즐길 수 있게 됐던 것 같아요.

Q. 이때까지 연극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나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을까요?

A. 한창 안 좋을 때가 있었는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왜 이 공간에서 이렇게 너무 힘들게 왜 그러고 있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친구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저한테 와서 밥도 사주고 술도 한잔 사주고 손을 이렇게 딱 잡아준 거예요.

그때 아! 하면서 다 연결이 되는 거예요. 나는 어떤 얘기가 하고 싶었느냐고 하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저는 항상 그거였던 것 같아요, 좀 따뜻했으면. 그런데··· 손을 딱 잡는 순간 '그래, 이거 해야겠다' 해서 손이라는 작품을 썼어요.

그리고 친한 친구랑 대표님이랑 이렇게 모여서 '나 이 작품 하고 싶다. 같이 하자' 해서 공연을 시작했죠. 작품이 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한 세 번 정도를 더 (공연)했던 것 같아요.

대학로의 페스티벌 이런 데 공모전에 이렇게 내니까 선정이 돼서 공연도 갔다 오기도 하고··· 아무튼 네, 좋았습니다.

Q. 공연을 계속하시기도 하고 작품도 쓰시기도 하고 그래서 연극 쪽으로 더 많은 활동도 하셨을 거로 생각하는데, 제가 듣기로는 배우님께서 도배를 하신다고 하셨어요.

A. 예.

Q. 도배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A. 방송 드라마나 영화 쪽으로 좀 진출하고 싶어서 경기도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12월에 우한 폐렴이라고 갑자기 뉴스에서 막 뜨는 거예요.

Q. 아~ 코로나···

 A. 그러고 한 2년을 있는데 그 당시에 사귀던 여자 친구가 "지금 도배가 잘 된다고 하는데 생각이 없느냐?" "알았다. 그럼 나 한번 해보겠다." 그러고는 직업전문학교에 갔죠. 그렇게 배우고서 시험 치고 다음 날 바로 현장으로 갔어요.

Q. 어떻게 그렇게 바로 투입될 수가 있죠?

A. 현장에는 늘 일손이 부족해요. 도배가 진짜 어렵거든요? 엄청 힘들어요. 도배 자체가 우리가 그냥 이렇게 종이를 바른다고 생각하는데 밑 작업이 되게 중요합니다.

Q. 어떤 작업일까요?

A. 밑 작업이라고 하면 우리가 그 판판한 면에다가 종이를 발라야 깨끗하게 면이 나오는데,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 있으면···

Q. 울퉁불퉁하겠네요.

A. 그리고 그 면 자체가 착 달라붙어 있을 수 없는 그런 면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면 도배지가 뜨겠죠. 그리고 온도 관리를 잘못해도 터진다거나 이런 경우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도배는 좀 장기간을 두고 봐야 자기가 잘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가 있어요.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작업이에요.

Q. 아까 제가 연극의 매력을 물어봤으니까, 도배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A. 도배는 갈 때마다 달라요. 같은 아파트에 같은 그 방인데도 조금씩 다 달라요. 이렇게 벽이 조금만 틀어져 있어도 이렇게 맞춰나가는 게 좀 다릅니다. 그리고 들어가는 현장마다도 하는 방식이 다 다르고 벽지가 풀을 먹으면 1cm 이상이 늘어난다는 거 모르시죠?

Q. 네

A. 풀을 발라놓으면 벽지가, 이랬던 벽지가 이렇게 늘어나요. 그래서 바를 때마다 그 면이 어떻게 생긴 것, 그리고 내가 어떻게 바르는 거에 따라서 붙어 있는, 조인이라고 합니다, 그 조인이 정말 잘 나오기도 하고 좀 힘들게 안 나오기도 하고, 이렇게 매번 달라요.

Q. 마치 연극을 하셨을 때 관객들과의 소통을 바로바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도배지를 붙이면서 뭔가 바로바로 리액션을··· 그런 건가요?

A. 그렇죠. 손끝에서부터 이미 와요.

Q. 그럼 그렇게 도배를 하신 지가 코로나가 터졌을 때부터라면···

A. 코로나 2년 차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그때 바로 시작했으니까, 햇수로는 지금 4년 차인가 그렇죠.

Q. 혹시 오늘도 도배를 하셨나요?

A. 네.

Q. 어떤 현장에서 도배를 하셨나요?

A. 아파트 신축 현장이고요. 저기 용산역 인근에 하고 있습니다.

Q. 일주일에 몇 번을 일하시는 거예요?

A. 주 6일.

Q. 도배를요?

A. 네.

Q. 몇 시간씩,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시는 건가요?

A. 7시부터 5시 반까지.

Q. 그럼, 녹초가 되시겠는데요?

A. 그럼요.

Q. 그런데 그 이후에 혹시 연극 연습은 언제 하시는 거예요?

A. 7시 30분부터 10시 20분까지.

 Q. 아니 체력적으로 굉장히 많이 뭔가 좀 소모될 것 같기도 한데, 이게 정말 열정이 있으면 계속 에너지가 샘솟는 건가요?

A. 고픔이 있어야죠. 하고픔, 싶음, 이런 것들이 있어야···

Q. 지금 준비하시는 공연은 어떤 공연이에요?

A. 이준호라는 후배가 '무원마을 이야기'라고 헨릭 입센의 '민중의 적'을 번안한 게 있어요. 그 작품의 군수 역할을 맡았습니다. 보수적인, 소통 잘 안되는···

 Q. 배우 장종호에게 도배사란 어떻고, 도배사 장종호에게 배우는 어떤 건가요?

 A.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분명히 도움은 된다. 도배라는 게 밑 작업이 반쯤이에요. 우리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 면을 정리하는 것과 그리고 그 도배지가 하자를 일으키지 않게끔 밑 작업을 하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초배도 있고 한 번 틀어지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이 안 되거나,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못해서 그걸 귀찮다고 놓고 가면 그 도배는 분명히 문제가 생깁니다. 하자가 생기죠.

연기도 배우 연기를 하는 기술자잖아요? 연기라는 기술을 가지고 먹고살아야 하는 직업인데, 기본 소양 같은 것들이 있죠. 발성이라든지 신체라든지 그리고 감정의 조절 같은 것들, 명상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꾸준히 해야 어떤 역할을 맡게 되더라도 그 자리에 가서 편안하게 내 집처럼 내 고향처럼 마치 그 동네에 오래 살았던 사람처럼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연결해서 서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일이지만 나의 목적지가 한 곳이라면 어떤 길을 가든지 나에게 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현실에 부딪혀서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배우님은 무엇을 선택할까요?

A. 연기죠. 그럼요.

Q. 연기를 하시면 생업은 어떡하죠?

A. 생업은 또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죠. 중간중간 내가 연기를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찾아야죠. 그러다 보면 어디에 고정적으로 하는 일이 매우 힘들어요. 대다수의 지금 무명으로 지내고 있는 배우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대체로 그래요. 아르바이트하고 배달하고 일당 받는 일을 하거나 뭐 그렇게 되죠.

Q. 진로에 고민이 많은 청년들, 그리고 또 중년들도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도 계속 고민이 많은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A. 어떤 말씀을 제가 드려야 될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살았어요. 나는 이걸 하고 싶다,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고, 내 마음이 그랬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든지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치 않고 싶으면 쭉 변치 않으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또 다른 걸 찾아보고 싶으면 찾아봐야죠. 두려워하지 않으면 돼요. 잠시 여행 갔다 오는 것처럼 휴가 갔다 오는 것처럼 다른 일을 그냥 알아보면 되죠.

여행 갔다가 그 여행지가 너무 좋으면 거기에 정착해서 살 수도 있잖아요? 한때는 그냥 도배만 쭉 해볼까? 이런 생각도 한 번쯤은 해봤어요. 그런데 돌아와야 하겠더라고요.

Q. 배우님의 앞으로 계획 또는 꿈은 무엇일까요?

A. 지금보다 조금 나은 환경으로 한 발 더, 굉장히 먼 미래는 아직 보지 않고요, 지금보다 한 발 더 한 계단만 더 올라가는 겁니다.

Q. 굉장히 현실적이네요.

A. 예, 현실적으로 그렇게 잡고 있어요.

Q. 연극 배우 장종호라고 하면 어떤 배우로 기억에 남길 바라시나요?

A. 동료들한테 그 배우랑 함께해서 참 즐겁고 재밌었어, 이 사람이랑 해서 따뜻했다, 좋은 날들이었다, 좋은 기억들이다, 다시 언젠가 또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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