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어 고발한…도박과 알코올 ‘조용한 중독의 나라’
추적 60분
청소년 온라인 도박 실태 심각
캄보디아 생중계 현장 잠입
2030 여성 폭음도 밀착 취재
간판 시사프로 4년 만에 부활
‘추적 60분’은 한국방송(KBS) 대표 시사 프로그램으로, 2019년 8월에 문을 닫았다가 2023년 7월에 부활했다. 4년의 공백 동안에는 ‘시사직격’이 방송되었다. 이는 ‘추적 60분’과 ‘케이비에스 스페셜’을 통합해 탐사 보도의 ‘시의성’과 다큐멘터리의 ‘심층성’을 결합한 시사 프로그램으로, 임재성 변호사를 내세워 인지도를 높였다. 그런데 굳이 ‘시사직격’을 폐지하고, ‘추적 60분’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더구나 제작진도 그대로 이어지니, ‘포대갈이’ 아니냐는 힐난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방송 쪽은 “시의성과 현장성이 높은 르포 방식 강화, 국민 생활과 밀접한 민생 아이템의 지속 발굴”을 강조하며 “최소 3개월 이상의 ‘장기 기획 취재팀’을 따로 운영할 계획”을 밝히는 등 야심 찬 기획 의도를 드러냈다.
과연 이런 의도에 걸맞게 ‘추적 60분’의 첫 방송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심층 분석했다. 제작진은 일본 후쿠시마 현장을 직접 찾았고, 지난 12년간 도쿄전력의 행적을 파헤쳤다. 최근 회차인 ‘중독사회 2부작’ 역시 ‘현장 확인’과 ‘밀착성’을 높인다는 취지에 걸맞은 프로그램이었다.
청소년 온라인 도박 시장 37조5천억원
지난 1일 방송된 1357회에서는 청소년 온라인 도박을 다루었다. 우리나라의 불법 도박 시장의 규모가 얼마인지 아는가. 2022년 기준으로 102조7천억원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올린 매출보다 큰 수치이다. 이 중 청소년들이 쉽게 접하는 온라인 도박은 37조5천억원을 차지한다. 초중고생 4명 중 1명이 온라인 도박을 해본 적이 있으며, 도박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학생도 전체의 4.8%, 19만명으로 추산된다.
청소년들 사이에 온라인 도박이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있으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기의 고립과 비대면 수업도 한몫했다. 온라인 도박을 비대면 게임인 양 가볍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업자들은 무료 콘텐츠 사이트나 불법 웹툰 사이트에 배너광고를 올려 청소년들의 클릭을 유도한다. 청소년이라도 회원 가입이 쉽다. 카지노에서 하는 ‘바카라’ 같은 도박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고 여기에 돈을 걸 수 있다. 간단한 규칙으로 수십초 만에 몇백만원을 잃는다. 가끔 따기도 한다. 그럴수록 쉽게 몰입되며 다 잃을 때까지 계속하게 되어 있다. 큰돈을 잃고 나서 그만두려 해도 접속 기록이 남은 청소년들의 명단이 관리되어, 집요하게 연락이 온다. 가뜩이나 청소년들은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기능이 발달하지 못해 자제력이 약하다. 중독에 취약해 끊기가 어렵다. 온라인 도박은 청소년들에게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정신적 황폐화를 일으킨다. 중독된 청소년들은 또래들을 더 끌어들이는 모집책이 되거나 돈 때문에 2차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정부는 작년 11월에 대통령 지시로 온라인 불법 도박 근절과 청소년 보호를 위한 범정부 티에프(TF)를 출범시켰다. 그 무렵 문화방송(MBC)은 ‘스트레이트’에서 청소년 온라인 도박의 실태와 폐해를 다루었다.
이번 ‘추적 60분’에서는 온라인 불법 도박으로 8개월 만에 3억원을 날린 19살 청년의 사연으로 문을 연다. 피해자들이 더 있다. 자사고 출신의 ‘모범생’까지 ‘온라인 바카라’의 늪에 빠져 있다. 제작진은 전현직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만나 업계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은 한국의 폐회로티브이(CCTV·시시티브이)와 수사망에서 자유로운 캄보디아에 본사와 아이피(IP) 주소를 두고 ‘안전하게’ 영업한다고 말한다. 제작진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로 날아갔다. 대낮처럼 환한 밤거리의 큰 건물들이 죄다 카지노다. 그곳에서 딜러들이 잔뜩 들어앉아 나 홀로 바카라를 하며, 실시간 생중계를 하고 있다. 그곳엔 한국인이 실시간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곳도 있고, 개인이 카지노 테이블을 임대해 ‘대리 도박’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시스템도 있었다. 제작진은 캄보디아 송출업자와 직접 인터뷰도 해보았다. 온라인 송출은 캄보디아에서도 불법이다. 하지만 현지 경찰도 카지노에 못 들어오고, 한국 경찰도 수사권이 없어서 잡히지 않는단다. ‘추적 60분’ 제작진이 바카라 불법 온라인 송출 현장에 최초로 잠입해 카메라에 담은 것은 프로그램 부활 당시 내세운 ‘현장 확인’의 정신에 충실한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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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버티며 죽어가는 법을…
지난달 23일에 방송된 1356회는 ‘중독사회 2부작’ 중 첫 회로, 음주 문제를 다루었다. 과거 한국의 술 문화는 회식 등 사회생활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회식은 줄어든 반면 ‘혼술’이 늘었다. ‘위스키 오픈런’이 생기고, ‘혼술’ 유튜버가 생겼다. 그러면서 겉으론 티 안 나는, 조용한 중독자들이 늘었다. 젊고 일도 잘하는 고기능성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들이다. 특히 약 10년 사이 2030 여성 폭음자들이 늘었다. 2000년대에 술 광고 모델이 여성들로 바뀌었다. 2015년에 향을 넣은 소주가 출시되고 광고 모델이 어려지는 등 여성들을 향한 공격적인 마케팅이 이루어지면서 여성 폭음자들이 급증했다. 알코올 문제의 40~50%가 사회환경적 요인에 좌우된다는 실례다. ‘추적 60분’은 해당 회차의 연출자이자 2030 여성 음주자이기도 한 기아영 피디를 프로그램의 앞뒤에 출연시켜 당사자성과 화제성을 높였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민생 아이템을 지속 발굴하겠다는 ‘밀착성’이 돋보이는 시도이다.
우리나라는 밤늦게까지 술 마시기 좋은 나라로, 주류 접근성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독한 술을 살 수 있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흡연보다 높지만, 관련 정책은 거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주류 가격 정책과 세금 정책을 권고하지만, 지난 1월1일 정부는 ‘서민의 친구 소주’에 붙는 세금을 오히려 낮추어 출고가를 내렸다. 주세를 연 3조원 이상 걷고 있지만, 음주 폐해 예방관리 사업에 쓰지 않는다. 과잉 경쟁 속에서 여전히 술 마시는 것도 능력으로 인정받거나, 사회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혼술’이 도피처로 제공될 뿐이다. 국가가 선량한 중재자 역할을 방기한 채, 가장 값싸게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법을, 아니 하루하루 버티며 죽어가는 법을 알려주는 셈이다. 청소년은 온라인 도박 중독에, 2030은 은폐된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조용한 중독의 나라’라니, 그 어떤 고발보다 무섭다.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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