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주택 구매자보다 노숙자 더 많았던 이 나라 [특파원 리포트]
치솟는 집값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지는 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생애 첫 주택 마련 연령이 높아지고 있고, 도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영국입니다.
■ 집 사는 사람보다 쫓겨나는 사람 더 많은 영국
세입자 보호 단체인 영국의 '제너레이션 렌트'는 정부 통계를 토대로, 지난해 9월까지 12개월 동안 영국에서 첫 주택을 구매한 사람보다 노숙자가 더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정부 토지세 통계를 보면 2022년 10월부터 1년간 약 12만 6천1백 가구가 처음으로 주택을 샀습니다. 직전 1년 동안은 26만 4천4백 가구가 생애 첫 주택을 마련했는데, 그 수치가 반 토막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반면 같은 기간 노숙자는 크게 늘었습니다. 지난해 9월까지 1년 동안 16만 4천 640가구가 노숙자가 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생애 첫 주택 구매자 수를 4만 가구 정도 넘어선 수치입니다.
이를 두고 제너레이션 렌트는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공포"라고 말합니다. 서민들이 부담하기 힘든 수준의 높은 부동산 가격, 물가 급등, 브렉시트 이후 일자리 감소 등이 총체적으로 영향을 끼친 결과로 풀이됩니다.
이 단체는 영국 정부가 부당한 퇴거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는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해마다 필요한 수준의 사회주택을 건설해야 한다고도 강조합니다.
■ 생애 첫 주택 구매 연령은 상향 중
첫 주택 소유자의 평균 연령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럽은 한국보다 더 젊은 나이에 내 집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의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평균 연령은 35세입니다.
하지만 최근 경기 불황 등의 영향으로 영국의 첫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34세로 2007년보다 6세 많아졌고, 아일랜드는 2010년의 35세에 비해 39세로 높아졌습니다. 또 스페인은 2014년 31세에서 41세로 크게 높아졌습니다.
여기에는 유럽 중앙은행이 2014년부터 8년 동안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펴오다, 2022년부터 최근까지 금리를 4.5%까지 인상하는 등 단일 통화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올린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금리가 높아져 대출받기가 어려워지면 생애 첫 주택 구매 시점도 늦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 에어비앤비 전환 급증…쫓겨나는 거주자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유럽 도시의 주택 부족은 이런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이 최근 특히 그러한데, 일반 주택을 에어비앤비와 같은 단기 숙박 공유 시설로 전환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는 지난해 임대료가 평균 5.9% 올랐고, 2018년 이후 3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임금이 소폭 상승했지만, 임대료는 50%까지 상승한 곳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리스 피레우스 은행에 따르면 현재 그리스에는 21만 2천 채의 주택이 부족한데, 이는 주로 에어비앤비와 같은 단기 임대 플랫폼에 17만 채의 아파트나 주택이 올라와 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기존 거주자들이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학생과 서민, 중산층입니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지난 1월 초 아테네 외곽의 아파트에 살다 쫓겨난 한 대학생과의 인터뷰를 소개했습니다. 이 학생은 "집주인이 작년에 월세를 100유로(우리 돈 14만 원 정도) 인상한 데 이어 작년 9월에는 에어비앤비로 바꾸겠다"고 해 집에서 쫓겨났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금은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원룸을 구하려고 하지만 가격이 치솟아 방을 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단기 임대 숙소 증가로 전국적인 주거난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전국 호텔리어 연맹의 자료를 보면 관광객의 아파트 임대 숙박 건수는 1억 7,820만 건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부동산 시장 전체 거래의 42%에 해당하는 수치로, 110억 유로(우리 돈 15조 9천억 상당)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특히 피렌체에서 두드러집니다. 피렌체 세입자 조합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피렌체 도심은 4천5백 명의 주민이 떠났습니다.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도시를 떠난 사람들입니다.
주민들이 떠난 주택 상당수는 관광 숙박시설로 바뀌었습니다. 현지 당국 조사를 보면 2016년보다 두 배 많은 1만 4천3백 개의 단기 임대 숙소가 등록됐습니다. 주거용 임대보다 수익성이 훨씬 높은 단기 임대 증가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2016년에 비해 2022년 집값은 42% 올랐습니다. 이탈리아 노동조합 연맹에 따르면 35 제곱미터(10평쯤 되는) 아파트의 주거비는 이제 35세 미만 근로자의 평균 급여보다 높다고 합니다.
■ 대책 마련 부심…'에어비앤비 방지법' 등장
주택 부족 문제가 정치적 분노로까지 확산하자 유럽 각국은 대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주택 소유주가 젊은이들에게 주택을 임대할 경우 세금 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 피렌체 시의회는 지난해 10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이른바 '에어비앤비 방지법'을 채택했습니다. 이 법안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심 지역의 관광객 숙소 임대료를 동결하고 집주인이 일반 세입자들 받아들일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적용되는 지역이 도시 전체 면적의 5%에 불과한 점은 한계점으로 지적됩니다.
유럽 의회 차원에서 최근 단기 임대 플랫폼이 각종 데이터를 공유하고, 플랫폼이 무작위 확인을 통해 불법 대여 방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에어비앤비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을 발의한 네덜란드 녹색당의 킴 반 스파렌탁 의원은 데이터 공유가 개선되면 당국이 불법 숙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저렴한 주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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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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