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미 대북전략 조정하나…비핵화 중간단계 '위협감소' 주목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북한문제와 관련해 비핵화 중간단계와 위협감소를 잇달아 언급하고 나서 주목된다.
미라 랩-후퍼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은 4일 중앙일보-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 특별대담에서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면서도 "만약 역내 및 전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조치'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재 한반도 상황에 비춰봤을 때 '위협 감소'에 대해 북한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고 그렇게 하길 원한다"며 "이러한 진전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루빨리 북한의 불안정한 행위로 인한 위협 감소, 더 나아가 궁극적인 위협 제거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조는 미국 정부의 대북협상을 총괄하는 정 박 국무부 대북고위관리에 의해서도 재확인됐다.
정 박 대북고위관리는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궁극적인 비핵화로 향하는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며 "그것(비핵화)은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미국 외교안보 고위관리들의 언급을 종합하면 북한 비핵화라는 최종목표는 유지하면서도 중간단계로 미군이 주둔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시도를 하겠다는 뜻이 읽힌다.
특히 박 고위관리는 중간단계에서 논의할 위협의 범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전술핵무기 고체연료, 극초음속 능력, 무인 잠수정 등 북한의 무기 관련 활동 및 확산의 범위를 고려할 때 우리가 다뤄야 할 무기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언급은 핵 위협을 넘어서 재래식으로 분류할 수도 있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포괄적으로 다뤄나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위협 감소를 목표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포괄적으로 다뤄나가겠다는 것으로, 대북전략의 방점을 군비통제(Arms Control)에 두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미국 입장에서는 핵무기뿐 아니라 현재 북한이 개발 중인 다양한 신무기 체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성을 키운다고 여길 것"이라며 "군비통제 협상을 통해 위협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위협감소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상호성이라는 점에서 북한과 대화는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미 고위관리들도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랩-후퍼 선임보좌관은 "바이든 행정부는 내내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며 "향후 북한과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기회를 모색할 것이고 이는 한반도 긴장 완화에 매우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박 고위관리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대화와 외교"라면서 "이를 위해 어떤 직급에서도 관심 사항에 대해 전제조건 없이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계속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비핵화 중간단계를 설정하고 위협감소라는 목표를 갖고 북한과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최근 미국이 직면하는 국제정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와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지원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전선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불안정을 감내하기 어려운 만큼 이 지역 군사적 충돌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큰 북한 문제를 위협감소의 범주에서 다루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바이든 정부의 이런 전략변화에 호응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북한도 미국의 어려운 상황을 읽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가 뒷배가 되어주는 현 상황에서 미국과 대화나 협상에 흥미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의 호응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바이든 행정부도 모든 현안을 제쳐두고 오는 11월 대선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추동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장 객원연구위원은 "바이든 정부에서 실행은 어렵더라도 미국 조야에 북한 문제에 대한 이런 고민의 흐름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더라도 이런 고민 위에서 대북정책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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