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군 단위 월간지, 〈월간 옥이네〉를 읽는 이유 [미디어 리터러시]

신혜림 2024. 3. 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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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아주 내밀한 것까지 알고 있는 동네가 있다.

군민 222명이 주주로 모여 창간한 〈옥천신문〉은 지금도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다양한 방식의 공론장을 고민하고 구축하며 확장하고 있다.

'역사에 남은 1%가 아니라 역사를 만든 99%를 기록한다'는 옥이네의 창간 선언은 그 99%가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늘 1%를 쫓고 있는 내 머리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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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향한 갈구는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매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곧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언론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충북 옥천읍 금구리의 미용실 아홉 곳 이야기를 담은 〈월간 옥이네〉 제69호 표지. ⓒ 〈월간 옥이네〉 홈페이지 갈무리

내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아주 내밀한 것까지 알고 있는 동네가 있다. 그곳은 바로 충북 옥천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택배가 꼭 한 번씩 거쳐가는 ‘옥천 허브(hub)’의 그 옥천 맞다. 아는 사람은 안다. 옥천이 다름 아닌 지역 저널리즘의 산실이라는 사실. 중심에는 어느덧 34년이 된 〈옥천신문〉이 있다. 군민 222명이 주주로 모여 창간한 〈옥천신문〉은 지금도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다양한 방식의 공론장을 고민하고 구축하며 확장하고 있다.

나는 〈옥천신문〉에서 뻗어 나온 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이하 옥이네)의 외지인 구독자 중 한 명이다. 옥이네는 인구 5만이 안 되는 옥천과 그 부근의 평범한 주민들 이야기를 다루는 전국 유일 군 단위 월간지다. 나는 2020년 ‘씨리얼’에서 〈용돈 없는 청소년〉 시리즈를 기획하던 무렵 처음 ‘옥이네’를 알았다. 옥천 지역 청소년 15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하는 기획기사를 통해서였다. 이 실험을 계기로 군의회에서는 13~18세 청소년에게 1년에 7만~10만원 상당의 바우처를 지원하는 조례가 통과되기도 했다. 그땐 무슨 이런 멋진 잡지가 다 있나 싶었다.

옥이네를 구독하면서 농촌지역에 ‘씻을 권리’가 부족하고 작은 목욕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산 넘고 물 건너 마을 곳곳을 달리는 집배원이 목격하는 낭만의 디테일도 알게 됐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는 청년의 취미생활과, 주민이 몇 남지 않아 사라져가는 마을을 지키며 여생을 사는 이의 하루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었다. 이번 옥이네 2월호에서는 설날이 낀 달답게 휴게소에 대해 다뤘다. 안 그래도 장거리 운전을 나설 때마다 휴게소에 들르게 되면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얘기를 나누며 일하는지 괜히 궁금해지곤 했는데 덕분에 궁금증이 꽤 풀렸다.

〈월간 옥이네〉를 구독하면서 알게 된 것

가장 기억에 남는 호는 지난해 3월의 미용실 특집이다. 작은 동네 옥천읍에는 무려 100개가 넘는 미용실이 몰려 있다. 이유가 뭘까.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거라는 박누리 편집장의 추측은 합리적이다. 옥천의 웬만한 신부들은 다 믿고 화장과 머리를 맡겼던 ‘전설의 염미용실’ 염순옥 원장부터, 20대에 베트남에서 결혼 이주로 건너와 온갖 어려움을 딛고 미용실을 차린 서희수 원장까지, 옥천읍 금구리의 아홉 곳 미용실 이야기가 잡지 한 권에 촘촘히 담겼다. 옥이네는 농촌에선 더욱 소외되기 십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항상 비중 있게 담아낸다. 내가 이 잡지를 특별히 아끼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한국기자상 기획보도 부문을 수상한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의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와 같은 수작을, 옥이네는 매달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역사에 남은 1%가 아니라 역사를 만든 99%를 기록한다’는 옥이네의 창간 선언은 그 99%가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늘 1%를 쫓고 있는 내 머리를 부끄럽게 한다. “어릴 때부터 지역에서 살아가고 싶었고 살아갈 방법을 찾았다”(〈한겨레21〉)라는 박누리 옥이네 편집장의 인터뷰는 언젠가 지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정중앙에서 일하고 있는 몸뚱아리를 멋쩍게 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마음 둘 곳 마땅치 않아 제2의 고향을 갖고 싶은 분이 있다면, 지역 잡지 하나 구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나만의 내적 친밀감이 일상을 한층 충만하게 해줄 것이다.

신혜림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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