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선거 앞두고 '주4일 법제화' 띄웠다…실현 가능성은?[리얼팩트]
아이슬란드·벨기에·스페인 등 실험 긍정적 평가
우리나라도 대기업 속속 도입…직장인 67.3% '찬성'
문제는 임금과 기업간 격차…전면 도입은 무리일 듯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노동계가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과로사회와 장시간 노동 해소를 위한 '주4일제' 법제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호응하고 직장인들의 과반이 찬성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법제화까지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시간 노동 벗어나야"…직장인 67.3%, 주4일제 '찬성'
이 단체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중심으로 전국여성노동조합,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청년유니온 등이 모인 범 노동·시민단체 결합체다.
이들은 출범 기자회견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터의 산업재해와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 성평등한 사회와 일터를 실현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주4일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주4일제 법제화 ▲노동시간 단축 정책과 로드맵 및 사업 지원 등 종합계획 수립 및 시행 ▲국가노동시간위원회 설립 및 운영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노동시간 체제 전환 등 4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양대노총의 또 다른 축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제22대 총선 요구안으로 '주4일제 도입 및 연장근로 제한, 휴식권 보장'을 내거는 등 노동계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직장인들의 호응도 좋다. 일하는시민연구소가 올해 1월14일부터 16일까지 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은 67.3%에 달했다. 연차 휴가 확대는 74.3%, 퇴근 후 연락을 하지 않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76.5%가 동의했다.
전 세계에서 다양하게 실시된 주4일제 실험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영향도 받았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취업자의 1%인 2500여명 근로자를 대상으로 주4일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 증후군' 등 신체, 정신적 고통의 해소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개선 등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벨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2년 법률 개정을 통해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4일제 실험을 했다. 1주 37시간 근무형태는 유지하고, 1일의 미출근 근무시간은 다른 날 근무하는 형태다.
이 밖에도 영국, 스페인, 미국 등 지방정부 중심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 SK, 포스코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패밀리데이'라는 명칭으로 주4일제를 도입하고 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A(31)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의 회사는 매주 원하는 요일에 오전만 근무하는 '주4.5일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A씨는 이 시간을 영화 관람 등 취미 생활이나 은행 등 관공서 업무를 보는 데 사용하고 있다. A씨는 "모두가 똑같이 쓰기 때문에 업무 지원도 서로서로 잘 되는 편이고, 눈치주는 것도 없다. 업무량 증가를 크게 느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기업에 다니는 B(32)씨의 회사는 마지막 주 금요일을 일찍 퇴근하는 '얼리 프라이데이(Early Friday)'를 운영 중이다. 1주일 전과 해당 요일에 인사팀이 메신저를 통해 '4시간 근무 이후 퇴근하면 된다'고 공지를 해 전 직원이 눈치 볼 것 없이 퇴근을 하고 있다.
생산성 높아지고 긍정적이지만…임금보전·양극화는 '과제'
하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지난해 OECD 37개국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는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이스라엘 5개국 뿐이었다.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가 노동생산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3 대한민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110.2였다.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지만, OECD 기준으로 놓고 보면 37개국 중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다음인 33위다.
한국개발연구원(KDI)가 2017년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그 시사점이 뚜렷하다. 1990년부터 2016년까지 OECD 회원국 35개국의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의 관계를 살펴보면, 근로시간이 짧은 국가일수록 노동생산성이 높은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가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한 2004년부터 2011년까지를 살펴 보면, 10인 이상 제조업 사업체에서 종사자 1인당 노동생산성이 약 1.5% 향상됐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은 자본 투입 증가보다는 생산 과정의 효율성 향상에 주로 인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제도 시행 이전에 비효율적 장시간 근로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근로시간 단축 정책은 비효율적 장시간 근로를 초래할 수 있는 제도 및 경제적 유인체계를 식별하고 바로 잡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관건은 임금 보전 문제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지다.
실제로 스페인의 최대 통신사인 텔레포니카가 주4일제를 도입하면서 희망 직원은 임금을 15% 삭감한다는 규정을 내세우자 지원율이 0.75%로 저조했다.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임금을 깎고 주4일제를 하는 것은 '조업 단축'이지 진정한 의미의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지 않느냐"며 "연착륙을 위해 일시적으로 임금 인상률을 낮춘다든가 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사실상 주4일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 사무직과 프리랜서 등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동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만일 주4일제를 법제화하게 되면 프리랜서, 플랫폼 근로자들은 실질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적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여건이 되는 일부 업종은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주4일제가 전면 법제화되면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delant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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