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디단 밤양갱”…이별이 왜 꼭 절절해야 해?

한겨레 2024. 3.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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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소울 뮤직’과 ‘소울 푸드’의 만남
비비. 문화방송 ‘음악중심’ 갈무리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이는 영어 표현들이 있다. ‘소울 푸드’(솔 푸드)도 그중 하나. 원래 이 말은 미국의 노예제도와 관련 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팔려 온 흑인들로부터 시작되어 주로 남부 지역에서 먹다가 20세기 초중반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 대중화된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 소울 푸드다. 옥수수빵, 바비큐윙, 프라이드치킨, 빈라이스, 맥앤치즈 등.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에서 소울 푸드는 제일 좋아하는 메뉴나 힘들 때 찾는 특별한 음식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흔해졌다.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입니까?

나의 소울 푸드를 물어본다면 일단 후보 세 가지는 확실히 고를 수 있다. 닭발, 참치회(회를 다 좋아하지만 한 어종만 고르라면), 순댓국. 먹고 싶은 상황이 조금씩 다른데, 닭발은 술집에 있으면 무조건 시키는 안주고, 참치회는 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과 술을 마실 때 자주 고르는 메뉴다. 순댓국은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내고 싶을 때 위로처럼 찾는 음식이니 진짜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들깻가루 말고 다진 양념이나 깍두기 국물은 넣지 않는다. 대신 청양고추를 썰어달라고 부탁해 아직 끓고 있는 국물에 넣어놓고, 고기와 내장부터 건져 새우젓에 찍는다. 건더기로 배를 적당히 채우고 맵고 진하고 뜨거운 국물을 마실 때쯤엔 부정적인 감정이 땀으로 변해 기화되어 사라진다. 그렇게 수없이 뚝배기를 비워내며 깨달았다. 모름지기 진짜 위로란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것임을.

유튜브 갈무리

서론이 길었는데 음악도 그러하다. 돌아보면 우리를 진정으로 위로해준 노래는 순댓국처럼 부담 없는 소품이었다. 어떤 노래가 소품일까? 일단 악기 편성이 단출해야 하고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힘줘 만든 노래가 아니어야 하고 길이도 짧은 편이어야 한다. 옥상달빛의 노래 ‘수고했어, 오늘도’가 대표적이다.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에 양념처럼 관악기를 더한 반주에 수고했다는 말을 반복하는 2분대의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소울 푸드 같은 위로를 선사해주었다. 헤비메탈 밴드도 종종 소품 발라드를 내놓아 의외의 성공을 거둔다. 멜로딕 메탈 밴드 스트라토바리우스의 ‘포에버’, 미스터빅의 ‘투 비 위드 유’는 큰 기대 없이 끼워넣은 소품이 그룹의 대표곡이 되어버린 사례.

팝 역사상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꼽히는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는 위대한, 그러니까 형용모순적 소품이라고 할 만하다. 이 노래에는 존 레넌의 목소리도 조지 해리슨의 기타도 링고 스타의 드럼도 없다. 폴 매카트니 혼자 작곡하고 연주하고 노래했다. 심심한 통기타와 간단한 현악기 반주에 목소리만 얹은 2분짜리 노래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이 노래가 얼마나 초월적인 울림을 주었는지는 기네스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지금까지 3천명이 넘는 다른 가수가 리메이크해 팝 역사상 가장 많이 다시 불린 노래라고 한다. 요즘 또 한 곡의 소품이 우리의 마음을 달달하게 달래주고 있다. 장기하가 만들고 가수 비비가 부른 ‘밤양갱’. 역시 2분20초 짧은 길이에 ‘수고했어, 오늘도’와 거의 같은 악기 편성이다. 왈츠풍의 소박한 반주에 코러스도 없는 심심한 보컬이 흐른다. 남녀의 이별 순간으로 짐작되는 상황을 노래하는데, 뜬금없는 밤양갱 타령이 반복된다.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이거지. 이별이 왜 꼭 절절해야 해? 왜 이별 노래엔 나를 떠났냐는 원망이 가득했을까? 다시 돌아오라는 질척거림은 또 어떻고. 심지어 나는 널 영원히 그리워하겠지만 넌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는 주제넘은 당부로 끝나는 노래도 많았다. 이런 이별 노래는 이미 너무 많으니 이제 좀 다른 방식으로 이별을 노래하자고 장기하와 비비가 제안하는 것 같다. 박수!

이 노래는 지난 2월13일에 발매되었는데 입소문을 타고 단 2주 만에 멜론, 유튜브, 벅스, 지니 등 각종 차트 1위를 휩쓸었다. 무려 아이유가 방탄소년단 뷔와 함께 뮤직비디오까지 찍은 신곡을 공개했는데도 ‘밤양갱’은 꿈쩍 않고 1위를 지켰다. 전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않았겠지만, 장기하가 만든 노래 중 최고 히트곡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노래는 가요계 밖에서도 일종의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밤양갱’ 음원이 공개된 2월13일부터 최근까지 씨유(CU)·지에스(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 연양갱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최대 100%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소울 뮤직(솔 뮤직)과 소울 푸드의 결합이다. 하나 까먹으면서 또 들어볼까?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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