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의 오판, 통화정책의 백미는 ‘타이밍’이다
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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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2024년 1월31일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보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고민을 알 수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회의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에 우리는 이미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더욱 큰 확신을 원한다”고 했다. 동시에 “FOMC 위원 모두가 연내 금리를 낮추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며 “다만 FOMC가 편안하게 올해 금리를 인하하려면 인플레이션이 2%까지 내려가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금리를 내리고는 싶지만 데이터가 명확해질 때까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연준은 2020년 인플레이션 경로 예측에 실패했다. 그에 따른 후유증은 막대했다. 그것은 트라우마다.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치면 또 실수할 수 있다. ‘타이밍’은 통화정책의 백미다.
2020년 7월로 돌아가보니
2020년 7월로 돌아가보자. 코로나19 대유행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을 때다. 당시 전문가 대부분은 수조달러의 경기부양책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가장 큰 이유는 ‘데이터’일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팬데믹 이전보다 낮은 상황이었고 실제 2% 이하의 낮은 인플레이션은 2021년 초까지 이어졌다.
되돌아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리석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코노미스트가 인플레이션 경로 예측에 실패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새삼스레 2020년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현 상황을 분석하기 위함이다. 현재는 어떤 상황일까? 연준 인사들과 전문가 상당수가 평균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거나, 낮아진 인플레이션이 다시 급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들의 전망은 맞을까?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현재 데이터에 대한 과도한 편향은 미래를 읽는 눈을 흐리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팬데믹으로 경제는 멈췄다. 붕괴는 빨랐다. 일자리가 무려 2천만 개 이상 사라졌다. <뉴욕타임스>는 ‘실업은 얼마나 치명적인가? 일자리 감소 수를 그래픽으로 표현하려 해도 선 그을 공간이 모자랄 정도다’라고 표현했다. 공포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책은 하나였다. 이례적인 재정부양, 통화공급책이었다.
팬데믹 뒤 6개월 동안 연준의 자산은 2조8천억달러(약 3736조원)나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시행했던 ‘긴급 양적완화1’보다 무려 1조6천억달러나 많은 금액이다. 정책금리는 1.5%에서 0%로 낮아졌다. 파열하는 금융시장, 실물경제를 지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로써 미국 정부 역시 원하는 만큼의 돈을 싼 금리로 빌리게 됐다. 2020년 2분기에만 무려 2조달러의 적자를 냈다. 이는 금융위기 때 연간 적자액보다 5천억달러가 더 많은 금액이다. 한 분기 적자 규모가 이례적 위기였던 2008년 한 해 적자보다 훨씬 컸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정 통화정책으로 천문학적 돈이 살포됐다. 여기에 심각한 공급망 교란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 전망에 낙관적이었다. 2020년 6월10일, 연준의 인플레이션 당해 전망치는 0.8%였다. 2021년은 1.6%, 2022년엔 1.7% 오를 거라 했다. 장기 목표 2%에 이상이 없을 거라 장담했다. 그들의 전망은 6개월이 지나지 않아 빗나갔다. 2021년 초부터 인플레이션은 2%를 넘어 치솟아, 2년이 흐른 2022년 6월엔 9.1%에 이른다.
왜 실패했을까?
“현 단계에서 연준이 할 수 있는 바를 다 해도 수요를 대폭 늘리기는 어렵다. 수요 급증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올리비에 블랑샤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당시 이코노미스트들은 공급 충격이 특정 상품 가격을 올리지만 제한적일 거라 믿었다. 수조달러의 정부 부양책에도 소비자가격은 낮게 유지되리라 생각했다. 이유는 단 하나, 총수요 감소가 근거였다.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공급망 혼란에도 총수요가 줄어 가격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란 얘기다. 그들은 수요를 제외한 기타 변수를 무시했다. 주목한 게 있기는 했다. 빠른 속도로 느려지는 통화유통속도였다. 총수요 감소와 통화유통속도 저하가 경기부양, 공급 쪽 문제, 통화 공급의 이례적 증가를 상쇄하리라고 믿었다. 경기부양책으로 생긴 돈을 가계는 장기간 저축할 거라 가정했다. 지독한 편향이었다.
이들은 연방정부가 개인에게 지급한 1200달러 수표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믿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코로나19 셧다운(봉쇄)으로 소비처가 제한됐는데도 소비는 늘었다. 팬데믹 초기 급락했던 소매 판매는 빠르게 회복됐다. 팬데믹 이전 추세보다 가파르게 늘어 지속됐다. 게다가 둔화했던 통화유통속도마저 서서히 빨라졌다. 소매 판매와 통화유통속도 회복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폭발했다.
2020년 상황을 다시 복기해보자. 통화 공급은 7월까지 20% 증가, 연준 자산은 66% 증가, 정부 재정적자는 2조4500억달러, 공급망 붕괴, 개인 저축률 468% 증가 등등. 이들 모두는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이다. 단 하나, 통화유통속도만이 18% 감소했다. 이는 디플레이션 요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인플레이션 요소가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이코노미스트와 연준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에만 매달리는 오류를 범했다.
현재 상황은?
최근 상황을 보자. 광의통화(M2)는 2022년 7월 21조7천억달러 정도에서 2023년 12월 말 20조8천억달러로 감소했다. 연준 자산은 2022년 4월 약 9조달러에서 2024년 1월 말 현재 7조6천억달러로 줄었다. 팬데믹 직후 30% 이상이던 개인 저축률은 2023년 12월 3.7%까지 급락했다. 공급망 역시 안정을 찾았다. 이들 모두는 디플레이션 혹은 디스인플레이션 요소다.
반면 통화유통속도는 2020년 2분기 1.128에서 2023년 4분기 1.344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 1.4 수준보다는 낮다. 통화공급량 증가율 감소와 결합하면 통화유통속도가 빨라진 것이 인플레이션을 강하게 자극한다고 할 수 없다. 중립 상태다. 재정적자는 계속되지만 2020년 3조달러 이상 적자에서 2023년 1조7천억달러 적자로 그 규모는 줄었다. 인플레이션 요소는 분명하지만 2020년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덜하다. 전체적으로 디플레이션, 디스인플레이션 요소가 강하다.
한데 이코노미스트와 연준은 여전히 총수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지속될 수 있는가?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소비가 차지한다. 소비가 늘면 성장할 수밖에 없다. 2023년 12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5.6%, 전월 대비로는 0.60% 성장했다. 2023년 6월까지 둔화하는 듯했던 소매판매 성장률은 7월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인다. 미국 소비자는 2023년 3.2% 소비를 늘렸다.
노동시장 강세 역시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침체에 앞서 소매판매나 일자리가 늘어나는 일이 상례였다. 최근에 발생한 세 개의 침체 양상을 보면 소매판매는 침체 직전까지도 강했다. 2000년 초반, 금융위기, 팬데믹 침체 모두 그랬다. 최근의 소매판매 강세가 경기둔화 위험을 지우는 건 아니다. 외려 소매판매와 일자리 간 차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이 둘의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일자리가 늘었다지만 팬데믹 이전 추세선에 겨우 다다른 상황이다.
반면 소매판매는 추세선을 이탈해 폭등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이 둘의 추세는 거의 동행했다. 한데 2020년부터 둘의 간격이 벌어졌다. 이런 격차는 지속 불가능하다. 소매판매가 계속 강하려면 소득이 늘어야 한다. 일자리와 임금이 동반 성장해야 가능하다. 미국의 실업률은 이미 완전고용에 가깝다. 추가 성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시적 추세 이탈은 반드시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소매판매와 일자리 이격이 좁혀지는 건 소매판매 둔화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경제는 강건한 소매판매에 의존한다. 소매판매가 흔들리면 성장 둔화는 필연이다.
이코노미스트와 연준은 2020년에도 같은 실수를 했다. 수요에 과도한 가중치를 뒀다. 다른 요인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2020년 7월, 소비자가 그렇게 많이 소비할 줄 상상하기 어려웠다.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미국 소비자는 연준이 경제를 어떻게 느리게 하든 상관없이 소비하고 있다. 이를 보고 대부분은 그것이 장기간 지속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는 편향일 수 있다. 여전히 전문가들은 오늘의 데이터에만 집중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보인다. 현재의 데이터가 가리키는 인플레이션 압력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도 디플레이션 압력 가중 요인은 널렸다.
연준은 계속 데이터에 의존한 통화정책을 고집한다. 대부분의 경제 데이터는 과거의 수치일 뿐이다.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미래를 담보하진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설사 인플레이션 경로에 실패해 금리를 낮춘다 해도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약할 수 있다. 고금리 압박으로 인한 타격이 더 클 수 있다. 연착륙이 중요하다. 정말 그것을 꿈꾼다면 틀에 박힌 통화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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