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만난 로기완, 그리고 송중기 [MK★인터뷰]
송중기의 ‘로기완’은 차가우면서도 또 뜨겁다.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도착한 벨기에서 난민 지위를 받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탈북자 로기완이 된 송중기. 그의 눈동자는 낯선 이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기완의 어둡고 처절한 인생의 단편을 비춰주는 동시에, 그 누구보다 사람답게 지내고자 하는 삶을 향한 간절한 열망을 보여준다. 덕분에 송중기가 소개하는 로기완은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어두우면서도 희망에 차 있다.
“저에게 ‘로기완’은 인연인 것 같아요. ‘로기완’은 7년 전에 한 번 출연을 고사했는데, 돌고 돌아 다시 저에게 온 작품이거든요. 다시 만났을 때 이번에는 놓치지 말고 들었고, 그렇게 ‘로기완’을 시작하게 됐어요. 한번 출연했던 작품을 다시 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어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보니, 당시의 타이밍과 마음가짐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걱정은 이었어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저 조차 공감이 되지 않는 지점이 있기도 했거든요. 이를테면 기완이 엄마의 시체를 팔아서까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있는 인물인데, 거기까지 가서 마리와 사랑놀음을 한다는 점이 특히나 그랬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처음에 공감이 안 됐던 부분이 두 번째 봤을 때는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는 거였어요.”
혹시라도 대본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이에 대한 송중기의 답은 ‘No’였다. 극중 마리의 캐릭터 설정이 바뀐 것 외에는 대본 차이는 없었다고.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송중기의 처음 마음을 변하게 한 것일까.
“대본은 똑같았는데 제가 바뀌었어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기완인데, 그런 그가 사랑을 하는 것은 사치가 아니냐고, 기완이 했던 대사를 제가 실제로 똑같이 말한거죠. 그런 저였는데, 돌고 돌아 다시 만났을 때는 이상하게 기완의 삶이 그냥 공감되더라고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꾸역꾸역 살아남기 위해 이방인의 삶을 버티는 기완을 보면서 ‘잘 사는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내린 결론이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는 가족과의 사랑도 있을 것이고 연인과의 사랑이라든지 친구와의 사랑 등 사람과 잘 사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7년 전과 다르게 조금은 ‘로기완’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게 된거죠.”
“그냥 스며든 것은 있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제가 뭐가 바뀐 건지 잘 모르겠거든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 같은데.(웃음) 사실 돌아보면 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 관심사 같은 부분들은 시대에 따라 다들 달라지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바뀐 것도 있는거죠. 가정의 변화가 기완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한 가지 가정이 생겼다. 만약 7년 전에 만남이 없이, 지금의 송중기가 ‘로기완’을 만났다면 그는 과연 로기완의 삶이 이해됐을까 하는.
“가정으로 할 수 있는 답변이 아닌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모르겠거든요. 가정으로 하기에는, 저는 ‘다시’ 이 대본을 봤을 때 공감이 됐던 것이어서요. 참 가정으로 하기 힘든 답변이기는 한데, 지금으로서는 예전에 봤던 경험을 뺀다고 저는 이 작품을 할 것 같기는 합니다.”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기완을 보면 스스로 고생길을 찾아 선택하잖아요. 제가 성격이 이상한지 모르겠는데 처음에는 ‘그냥 한국으로 가면 되는데 기완은 굳이 왜 난민을 신청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죠. 어머니의 시체를 팔아 비겁하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기완인데, 몸이라도 고생해야 마음이 편할 수 있겠다는.”
이렇듯 작품을 향한 공감과 더불어 큰 만족을 드러낸 송중기이지만, 정작 ‘로기완’을 향한 평단의 반응과 온도는 살짝 미지근하다. 6일 넷플릭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넷플릭스 Global Top10(글로벌 톱10)에 따르면, ‘로기완’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3일까지 총 310만 뷰, 690만 시간 시청돼 영화 비영어권 부문 3위에 올랐다. 나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좋다기 말하기도 애매한 성적을 받은 ‘로기완’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이에 따른 해석은 다양하게 존재하나, 장점이 분명한 만큼 한계점 또한 뚜렷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즉 쉽게 말해 ‘호불호’가 강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로기완’을 향한 제 만족도는 높은 편입니다. 사연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애착이 큰 작품이거든요.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예상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호를 가지신 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또 아니에요. ‘왜 멜로로 가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도 충분히 이해하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그래서 거절했었으니까요. 다만 한가지 바라는 지점은 있어요. 제가 두 번째 만났을 때 비로소 로기완을 공감하기 시작했잖아요. 그것처럼, 혹시 나중에 다시 봐주신다면, 지금 공감이 안 되는 부분들이 공감되기를요. 그때도 공감이 안 되면 어떡하냐고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이미 제 손을 떠난 작품이잖아요. 다만 영화라는 것이 한 번 보고 버릴 것이 아니니, 그러기를 바랄 뿐이죠.”
“북한 관련된 부분을 총괄 디렉팅 해주신 선생님께서 촬영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기완은 왠지 자강도라는 지역에서 살았던 인물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저는 잘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기완은 물론이고 어머니와 삼촌까지, 그쪽 지방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인상이 깊었어요.”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마리 역의 최은과의 호흡 또한 ‘로기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포인트 중 하나다. 최성은과의 연기 호흡과 관련된 질문에 송중기는 “배울 것이 많은 배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가 첫 촬영을 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친구를 만났어요. 그동안 앵글을 통해 기완이 고생하는 장면만 보다가, 성은이가 앵글에 나오는데 마냥 좋더라고요. ‘이제야 함께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 내가 이전까지 외로웠구나 싶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친구는 촬영이 시작되고 한 달 뒤에 들어온 셈이잖아요. 근데 바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한 달 동안 마리의 정서를 잘 잡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성은이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 부러웠던 지점은, 연기에 대해서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자기가 아니다 싶으면 힘들어도 끝까지 밀고 가는 성은이의 모습을 보면서, 배운 지점이 정말 많아요. 덕분에 파트너와 허물없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서로 부대꼈던 것 같아요.”
‘로기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조선족 출신이자 로기완과 함께 벨기에 정육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 선주로 열연을 펼쳤던 이상희가 그 주인공이다. 생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낯선 땅에 자리 잡은 선주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이방인 기완에게 유일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인물.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끈끈한 우정을 나눠가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며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선주라는 캐릭터는 기완이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인물이어서, 그 누구보다 서사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상희 누나가 힘을 빼고 연기하더라고요. 만약 기완이와 선주의 서사가 잘 쌓였다고 판단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모두 다 상희 누나 덕분이에요. 연기를 하는 내내 누나가 ‘자 들어와, 다 받아줄게’라는 애디튜드로 저를 대해줬거든요. 촬영이 없는 날 뒤에서 다 챙겨준 선배도 상희 누나였어요. 누나는 정말 좋은 배우예요. 현장에서 존재감 주인공은 단언컨대 이상희 배우입니다.”
“제가 농담 삼아서 ‘돈 값’이라고 하기는 했는데, 농담이지만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주연배우로서 책임감이 없으면 주인공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걸 돈값으로 표현을 한거죠. 작품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건 너무 당연한 거예요, 그래서 주인공이 돈을 많이 받는게 아닐까요.”
‘탈북자’와 ‘난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아가는 로기완의 삶은 국가와 제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라고 볼 수 있다. 영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소감을 묻자 송중기는 “거창한 소감보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보다는 ‘나는 나의 주변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기완을 연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은 많이 했었어요. 현실적으로 저는 많은 사람에게 과분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아왔잖아요. 받은 사랑만큼 많은 혜택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과연 나는 내게 주어진 만큼, 나의 주변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를. 촬영하는 시간 동안 와이프가 임신을 하고, 또 아들도 태어났었잖아요.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시기여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떠나서, 나는 주변을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인 기완과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송중기, 두 인물간의 간격은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닮은 점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로기완과 송중기와의 닮은 점’과 관련해 질문을 던지자, 송중기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촬영하던 중간에 제작사 대표님이 저에게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신이 판권을 샀을 때보다, 네가 연기하고 있는 로기완의 온도가 훨씬 뜨겁다고. 그리고 로기완의 온도가 올라간 이유는 제가 그런 인물인 것 같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죠, 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원작보다 덜 수동적이고 적극적인 기완이라는 말에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제 실제 성격이 로기완에게 입혀진 것이 아닐까 하는, 하하.”
[금빛나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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