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에 등장하는 길흉 풍수 실체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2024. 3.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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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의 웰빙 풍수] 자연 기운 가득한 길지(吉地)에 살면 건강하고 일도 잘 풀려

풍수지리를 소재로 다룬 영화 '파묘'가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범상치 않은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중장년층이 대거 극장가로 몰리는 이색적인 현상도 보인다. 명당에 조상을 잘 모시면 집안이 잘 된다거나, 반대로 사업이나 건강상 문제가 생긴 경우 이장을 하는 등 풍수 문화가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종종 들리는 흉지 관련 사례

조선시대 이후 지금까지도 상류층 주거 지역으로 유명한 서울 북촌 한옥거리. [GettyImages]
영화 '파묘'는 조상 묘를 쓴 후 그 집안 후손들이 대를 물려가며 치명적인 해를 입자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오컬트 식으로 엮어내고 있다. 냉기 가득한 흉지(凶地)에 조상을 모신 후 유전적 연결고리를 가진 자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스토리는 사실 영화만이 아닌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현상이다.

영화배우 K 씨 부자의 가족납골묘가 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탄탄한 연기 실력으로 한국 영화계에서 원로급 배우로 대접받던 아버지 K 씨(2005년 작고)는 고향인 충청도 땅에 가족납골묘를 조성한 다음 조부모와 부모의 유해를 한자리에 모셨다. 이후 K 씨는 60대 초반 나이에 폐질환으로 사망하고 그 부인도 10년 뒤인 2015년 작고했다. 아버지 뒤를 이어 인기 배우로 부상하고 있던 아들 K 씨는 가족납골묘에 부모 유해를 함께 모셨다. 그 후 아들 K 씨가 2017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풍수계 일각에서는 선조 유해들을 한꺼번에 흉지에 모신 결과 K 씨 부자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됐다고 해석했다.

국민 MC로 인기를 끌었던 H 씨(2022년 작고) 역시 비슷한 경우에 해당한다. 예능프로그램 명MC로 활동하던 H 씨는 강원 춘천 공원묘지에 가족납골묘를 조성해 부모 유해를 모신 후 70대 초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춘천에서 풍수업을 하는 손건웅 씨는 "H 씨는 흉지에 해당하는 가족납골묘에 부친 유해를 모신 지 4년 만에 암 진단을 받았고, 모친(2021년 작고) 유해를 이곳에 합장한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동티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두 사례는 영화 '파묘'의 내용보다 더 심각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파묘를 해 유골을 화장 처리하면 자손에게 더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러나 앞서 두 사례는 화장 처리한 조상 유골이라 해도 여전히 자손과의 동기감응(同氣感應) 원리가 작동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풍수 블로거 사이에서는 화장한 유해가 무해무득(無害無得: 해로울 것도, 이로울 것도 없음)한가, 아니면 동기감응 현상을 일으키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건강엔 묘보다 집터가 우선

그런데 양택풍수론에서는 산 사람의 건강 문제는 조상 묘보다 거주하는 집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암환자가 발생한 집은 대개 침실 등이 유해한 기운에 노출돼 있었다는 연구 보고가 이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현재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국민배우 A 씨는 새로 이사한 집터에서도 건강상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집터가 수맥파 또는 교란된 지자기(地磁氣) 등 유해한 기운에 노출돼 있을 경우 인체 면역력이 현격히 떨어져 중중 질환자가 발생하는 확률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임상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사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집(양택)풍수를 중요하게 다뤄왔다. 5세기쯤 저작으로 추정되는 중국 풍수서적 '황제택경'에는 비록 조상의 묘가 흉지에 모셔져 있다 해도 자손이 좋은 기운이 서린 집에 살면 건강은 물론, 밥을 먹고 살 정도는 된다고 씌어 있다. 조상과 자손의 유전적 인연 고리보다 자손이 현재 사는 집에서 받는 터의 기운이 현실적으로 더 크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길지(吉地)에 지어진 집에 살면 일이 잘 풀린다는 얘기는 거꾸로 흉지에 있는 집에 살면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집터가 극단적으로 사람 목숨까지 앗아간 사례도 있다. 이는 권력층이 모여 사는 양반촌이나 부자들이 사는 부자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조선시대 이후 지금까지도 상류층 주거 지역으로 유명한 서울 북촌 사례를 보자. 경복궁과 창덕궁을 좌우로 두고 있는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는 기업 오너 일가를 비롯해 부유층, 예술인이 많이 모여 산다. 이곳에는 북촌 토박이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거론되는 '유령 집'(종로구 화동 ◯◯번지)이 실재하고 있다. 현재는 2층 규모 벽돌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과거에는 개량 한옥이 자리하던 곳이다.

사연은 바로 이 집으로 이사 온 젊은 부부에게서 비롯된다. 당시 젊은 부부는 온 동네에 소문날 정도로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집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수사 결과 남편이 완전 범죄를 꾸민 살해범으로 밝혀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 후 당시 동네 통장이던 한 할머니가 집터와 관련된 흉흉한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싼값에 해당 집을 구매했다. 통장 할머니는 자신의 장남에게 이 집을 물려줬는데, 철로 전기관리 일에 종사하던 장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두 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마을 사람들은 집터의 저주라고 생각해 '유령 집'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현재 북촌 '유령 집'은 가게로 변신한 상태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아 직접적 피해를 입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가게 터에서는 유해한 기운이 감지될 정도다. 사실 살인사건이 발생한 집터를 보면 살기(殺氣) 등 유해한 기운에 노출된 경우가 적잖다. 한편 북촌 화동 '유령 집' 바로 인근에는 대기업 회장 소유의 집도 있다. 대기업 오너 2세인 J 회장은 이곳에 거주하면서 횡령과 도박 등으로 감옥살이 등 험한 일을 겪었다. 그가 사는 집터의 유해한 기운과도 연관돼 있다는 게 풍수계 일각의 지적이다.

좋은 집터 조건

조상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오컬트 식으로 엮어낸 영화 ‘파묘’. [쇼박스 제공]
사람이 살기에 좋은 터는 과연 어떤 곳일까. 풍수학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금낭경'에는 "온전한 기운이 있는 땅은 초목이 울창하고 무성하다"고 돼 있다. 초목이 잘 자라는 환경은 좋은 땅이며, 생기(生氣)가 왕성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비단 초목만이 아니다. 동물이나 짐승도 생기 터를 본능적으로 가려낼 줄 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 등장하는 제비가 좋은 사례다. 사실 제비는 아무 데나 자기 집을 짓지 않는다. 제비는 새끼를 안전하면서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생기가 맺힌 곳에 둥지를 마련하는 조류이기 때문이다.

판소리 '흥보가(신재효본)'에 의하면 심보 고약한 형인 놀보의 집에서 쫓겨난 흥보는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불쑥 나타난 시주승이 골라준 집터에다 움막을 짓고 살게 된다. 시주승은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이룬 이 터에서 살면 가세(家勢)가 속히 일어나 자손 대대로 번성이 이어질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그 증표는 이듬해 봄에 나타난다.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가 흥보의 움막에 찾아온다. 흥보는 튼튼하게 잘 지은 부잣집을 마다하고 자신의 허름한 집 처마 안에 둥지를 튼 제비 부부를 반갑게 맞이한다. 제비가 흥보 집으로 날아들었다는 것은 그 집이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생기 터임을 의미한다. 이후 흥보는 제비의 보은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흥보가'는 겉으로는 권선징악을 내세우는 듯하지만, 사실상 명당 풍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짐승도 좋은 기운을 알아채고 그 혜택을 누리며 사는데, 현대인은 오히려 자연의 기운에 역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의학지식과 과학 설비가 갈수록 진화한다고 해도 자연의 기운에는 미치지 못한다. 영화 '파묘'는 자연의 좋은 기운과 친하게 지내는 삶이야말로 건강하게 사는 확실한 비책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주고 있다.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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