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빈티지' 시계 수집가 유순식 씨 "아파트 1채 삽니다"

박준수 2024. 3.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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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유품 '롤렉스'에 끌려 수집 활동 시작
5년간 70여점..중소형 아파트 한 채 가격
"누군가의 추억과 애환 느낄 수 있어 매력"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빈티지 시계 수집의 즐거움을 설명하는 유순식 씨. 손목에 아버지의 유품인 '롤렉스'를 차고 있다. 사진 : 필자

'째깍 째깍'.

한 때는 남녀노소 누구나 차고 다닐 정도로 필수품이었던 손목시계.

요즘은 휴대폰으로 대체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채 멋쟁이들의 패션을 위한 악세사리로 기능이 바뀐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옛 추억이 그리워, 혹은 시계 자체의 감성에 이끌려 유행과 관계 없이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20여 년간 광주광역시의 한 일간지에서 시사만화를 그리다가 현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62살 유순식 씨.

그는 5년 전부터 오래됐지만 가치있는 '빈티지' 시계의 매력에 반해 취미 삼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아온 빈티지 시계만 무려 70여 점.

이제는 어엿한 수집가가 됐습니다.

이들을 구입하는 데 쓴 비용이 자그마치 광주 시내 중소형 아파트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 사연 깃든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

그가 빈티지 시계에 혹하게 된 것은 40여 년 전 세상을 등진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스며 있습니다.

그의 부친은 교사였는데 1960년대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롤렉스' 시계를 차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카투사 1기 출신이어서 돈만 있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박봉이던 시절, 교사가 고급 명품 시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연년생인 삼형제가 동시에 군대에 입대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대가 끊길 것을 걱정한 할아버지는 세 자식 가운데 한 명이라도 군대에 가는 걸 막기 위해 긴급히 돈을 마련해 여러 경로로 '로비'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워낙 엄중한 전시 상황이라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집안에 쇼케이스를 마련해두고 6개월을 주기로 바꿔가며 디스플레이한다. 사진 : 본인 제공

다행히 전쟁이 끝나고 삼형제 모두 무사히 귀가하자 그 돈을 장남인 유 씨의 아버지에게 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유 씨의 아버지는 큰 마음을 먹고 '롤렉스'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시계의 존재를 망각했던 유 씨는 5년전 불현 듯 '롤렉스'가 머릿 속에 떠올랐습니다.

◇ '긁힌 자국' 마저도 정겨운 빈티지 시계

그리고 어머니께 물어서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시계를 꺼내보니 운모로 된 유리는 뿌옇게 흐려있고, 가죽 스트랩은 보전이 힘들 만큼 삭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전문점에 맡겨 완벽하게 수리한 후 다시 착용하게 되면서부터 빈티지 시계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추억과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게 빈티지 시계의 매력이죠. 그래서 긁힌 자국마저도 정겹게 느껴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빈티지 롤렉스 시계

손목시계 종류는 크게 태엽을 감아 작동시키는 기계식과 배터리로 움직이는 쿼츠(quartz) 2종류로 나뉩니다.

수집가들은 일반적으로 올드한 감성이 느껴지는 기계식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또한 기능과 사용목적에 따라 △정장시계(dress watch) △스포츠시계(field watch) △다이버시계(diver watch) △항공시계(aviation watch) △군용시계(military watch)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처음에 반대하던 가족들, 지금은 함께 즐겨

유 씨가 가진 시계 종류와 브랜드도 다양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시계를 몇 종류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능이 디자인을 지배하는 바우하우스 정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독일제 노모스.

- 최초로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넌 여성이 착용했던 다이버워치 서브마리너.

-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함께 한 익스플로러.

- 이탈리아 해군이 사용한 시계로 유명하며 유일하게 팬클럽이 존재하는 파네라이.

특히 이 파네라이 시계는 초창기 야광도료로 1급 발암물질인 라듐을 사용했는데, 이때 작업을 했던 소녀들이 이후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되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바쉐론 콘스탄틴, 항공시계 GMT마스터, 달에 간 시계로 유명한 오메가 문워치와 스와치가 콜라보로 제작해 화재가 된 문스와치, 이탈리아 해군시계로 유명하고 유일하게 팬클럽이 존재하는 시계 파네라이.

- 달에 간 시계로 유명한 오메가 문워치와 스와치가 콜라보로 제작해 화제가 된 문스와치.

- 항공시계 GMT마스터.

- 하이엔드 브랜드 금통 바쉐론 콘스탄틴.

▲왼쪽부터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함께한 익스플로러, 최초로 도버해엽을 헤엄쳐 건넌 여성이 그때 착용했던 다이버워치 서브마리너, 기능이 디자인을 지배하는 바우하우스 정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독일시계 노모스.

이 시계는 가격이 중형 승용차와 맞먹습니다.

유 씨는 집안에 쇼케이스를 마련해두고 6개월을 주기로 시계를 바꿔가며 감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처음엔 그의 호화스러운(?) 취미 생활에 불만이 컸지만 이제는 이해하며 함께 즐기는 동호인이 됐다고 합니다.

유 씨는 "시계는 인간이 쇠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물건"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계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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