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일시 중단” 내걸린 헌혈 카페…의사파업에 ‘목숨 같은 피’ 내버릴 판
최근 수술중단에 수요 ‘뚝’
제때 사용 못하면 처분해야
수급조절 위해 헌혈도 제한
8일 서울 시내 한 헌혈의 집에서 만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이곳에서 4명이 헌혈을 하고 있었다. 해당 직원은 “혈소판은 보존기간이 불과 5일로 짧기 때문에 제 때 사용되지 않으면 폐기될 수 있다”며 “의사 파업 등 영향으로 혈액 출고량이 줄었고 혈액량 수급 조절을 위해 채혈량을 일시적으로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성부족에 시달리는 혈액이 최근 수요보다 더 많이 공급되고 있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병원이 멈춰서고 수술마저 취소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병원에 전달되는 혈액량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8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국가 혈액사업을 수행하는 한마음혈액원의 헌혈카페는 최근 헌혈자들에게 한때 ‘혈소판 채혈 중단’을 안내했다. 헌혈을 하게 될 경우 헌혈 방식을 정할 수 있다. 흔히 알고 있는 헌혈은 모든 혈액 성분을 채혈하는 전혈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혈구, 혈소판 등 일정 성분만 채혈하는 성분헌혈을 하는 경우도 많다. 냉장과 냉동 보관을 하더라도 적혈구의 유효기간은 35일인 반면 혈소판은 5일 정도에 불과하다.
혈액원 관계자는 “전공의 파업과 환자 퇴원 및 수술 연기로 혈액 사용이 감소해 유효기간이 짧은 혈소판이 폐기될 우려가 있다”며 “혈소판 헌혈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안내했다. 그럼에도 혈액 공급이 늘자 혈액원 측은 헌혈 예약제까지 도입했다. 수시로 방문해 혈소판 헌혈을 할 수 있던 것과 달리 주말과 공휴일의 경우 100% 예약제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헌혈의집 관계자도 “사회적 이슈로 인해 채혈량을 제한하다보니 일부 헌혈 참여가 제한됐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혈액원 관계자는 “혈액은 병원과 협의해 출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요청 자체가 줄었다”며 “환자에게 필요한 시기에 적절히 수혈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혈액 보유량이 가파르게 늘어난 건 전공의 파업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혈액 부족이 해소된 시점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해 의료 현장이 정상 가동되지 못하는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한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6일까지 대한적십자사가 병원에 출고한 혈액량은 16만2232유닛으로, 전년 대비 7.3% 감소했다. 혈장의 경우 같은 기간 공급량이 24.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혈액은 만성적 부족 현상을 보여왔다. 혈액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60대 이상 고령층은 늘고 있는 반면 헌혈을 하는 주 연령대인 10~20대가 전체 헌혈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실제 헌혈 건수는 2014년 305만건에서 2022년 265만건으로 8년 새 40만건 감소했다. 게다가 단체 헌혈이 드물게 이뤄지고 계절 요인으로 개인 헌혈자도 줄어드는 1~3월은 대표적인 ‘헌혈 보릿고개’이기도 하다.
실제 대한적십자사 혈액공급실적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월(27만443단위)이 연중 혈액 공급이 최저였다. 3월(32만4258단위)이 그 다음으로 적었다.
헌혈에 95회 참여했다는 박 모씨는 “위급한 환자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주기적으로 헌혈을 해왔는데 의사 파업으로 필요한 환자들에게 쓰이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며 “헌혈자들의 봉사심이 빛을 낼 수 있게 의료 현장이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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