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네르기파!" '드래곤볼' 찾으러 떠난 토리야마 아키라 [한승곤의 문화수첩]
전 세계 20여개 언어로 2억6000만부 팔려
"내 만화 역할은 오락에 철저한 것" 철학
원피스 나루토 등 동료 작가 "드래곤볼은 내게 구원이었다"
"드래곤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본 만화 '드래곤볼' '닥터슬럼프' 등을 그려낸 만화계의 큰 별,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明)가 사망했다. 향년 68세.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토리야마 작가의 작품을 언급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또 각계각층에서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아울러 일본 출판업계에 따르면 토리야마 작가(이하 편의상 존칭 생략)의 작품을 구매하고 추모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 유튜브에서는 실시간 생방송으로 그를 추모하는 방송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 일본 네티즌은 유튜브 댓글로 "큰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토리야마"라고 애도했다.
9일 NHK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토리야마는 지난 1일 급성 경막하혈종으로 세상을 등졌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전날(8일) 그의 사망 소식과 관련해 "(토리야마 작가는) `닥터슬럼프`, `드래곤볼` 등 국내외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게임 `드래곤 퀘스트`의 캐릭터 디자인 등 만화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또 "개인적으로 닥터슬럼프를 깊게 추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토리야마 업적에 대해서는 "일본 콘텐츠가 세계에서 폭 넓게 인정받고, 일본 관광객의 증가로도 이어졌다"라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도 고인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밝혔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토리야마 선생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유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은 저명한 만화가로,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도 깊은 환영을 받았다”며 “나는 적지 않은 중국 네티즌 역시 그의 별세에 애도를 표했다는 데 주목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일본의 더 많은 식견 있는 사람이 중일 문화 교류와 양국의 우호적인 사업에 적극 뛰어들 것이라 기대하고, 그렇게 믿는다”고 덧붙였다.
또 토리야마 아키라 스튜디오 측은 고인의 부고 소식을 알리며 "그는 열심히 하던 일도 있었고 아직 이루고 싶은 일도 많았을 것이다. 정말 안타깝다"고 전했다. 아울러 "토리야마 아키라는 전 세계 팬들이 지지해준 덕분에 45년 넘게 창작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그의 작품 세계가 오랫동안 여러분에게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고인이 오랜 시간 연재했던 슈에이샤(집영사)의 주간 만화잡지 '소년 점프'는 이날(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본지에 많은 작품을 발표했던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며 "선생이 그린 만화는 국경을 넘어 세계에서 읽혔고 사랑받았다. 그가 만들어낸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과 압도적인 디자인 센스는 많은 만화가와 창작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며 추모했다.
게임 제작사 '스퀘어 에닉스'는 자사의 게임 '드래곤 퀘스트' 캐릭터 디자인을 토리야마가 긴 시간 담당했다면서 자사 사이트에 추모의 글을 게재했다.
'드래곤 퀘스트' 팀은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은 오랜 세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다"면서 "광대한 모험의 세계를 그려 냈습니다. 슬라임을 비롯한 마물(몬스터)이면서도 어딘가 사랑스러운 몬스터들은 '드래곤 퀘스트'의 세계에 따뜻함을 주셨습니다. 그가 만든 캐릭터와 세계관은 앞으로도 '드래곤 퀘스트'에서 숨쉴 것 입니다"라며 추모했다.
외신도 그의 죽음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는 "그의 만화는 많은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게임에 영감을 줬다"면서 "폭넓은 세대의 만화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전했다. 영국 BBC는 "전 세계 팬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의 일부가 된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토리야마 씨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현지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한편, 토리야마는 어린 시절 자신의 추억을 빛내준 작가라며 애도하고 있다. 특히 원피스, 나루토 등 인기 작가들은 그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는 한편, 일부는 부고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8일 아시히신문 홈페이지에는 해당 신문사 소속 한 기자가 토리야마 아키라 부고 소식을 전한 기사에 직접 댓글을 달아 그를 추모했다. 그는 "저는 올해 50세가 되었습니다. 드래곤볼, 닥터슬럼프를 읽은 세대입니다. 슬라임(극 중 몬스터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했다.
그는 "지금 우리 자녀들은 드래곤볼 애니메이션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함께 보고 있으면 세대에 관계없이 역시 재미있는 작품은 언제의 시대도 재미있는 것 같아, 토리야마 씨, 멋진 작품, 멋진 게임 캐릭터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추모했다.
또 같은 매체에 따르면 '원피스' 작가 오다 에이치로는 토리야마 아키라가 만화를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옵니다"라며 "어린 시절부터 너무 동경하고 있어 처음으로 이름 불린 날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며 그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이어 "'만화를 읽으면 바보가 된다'는 시대부터 '어른도 아이도 만화를 읽고 즐기는 시대'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라고 토리야마를 평가했다.
'나루토'의 작가 기시모토 마사시 씨는 그의 부고 소식에 "갑작스런 일로 무엇을 어떻게 (부고 글을) 쓰면 좋을지 솔직히 모릅니다"라며 "다만 지금은 토리야마 선생님에게 언젠가 듣고 싶었던 일, 생각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닥터슬럼프, 드래곤볼 등 선생님의 만화와 함께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무것도 없었던 시골의 소년에게 매주 드래곤볼을 만날 수 있던 것은 구원이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선생님은 항상 내 지침이었습니다. 동경했습니다."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거듭 "선생님께 전하고 싶은 이 문장도 제대로 쓸 수 있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라며 토리야마 아키라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어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 45년 동안 많은 즐거운 작품에 감사드립니다. 고마워요.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의 편안한 잠을 기원합니다"라고 애도했다.
1955년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태어난 토리야마 작가는 천재 만화가로 꼽힌다. 하지만 처음부터 만화가나 만화 문하생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타고난 재능은 있었지만, 아예 다른 직업을 선택해, 먼 길을 돌아왔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졸업 후, 디자인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3년 만에 퇴직하고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잡지에 투고작을 보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스타워즈 같은 SF 장르를 좋아해 이를 토대로 작품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의 만화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점프'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 눈에 띄어 새로운 원고를 가져와 보라고 권유받아 본격적으로 만화계에 입문한다. 토리시마는 그의 그림 실력이나 스토리가 아닌 만화 효과음 등을 영어로 표현한 토리야마의 센스가 마음에 들어 그를 발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토리시마는 스토리가 엉성하거나 그림이 이상하면 바로 수정을 요구하는 소위 '호랑이 편집자'였다고 한다.
그렇게 토리야마는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뒤 1978년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할 수 있었다. 이 작품과 관련 토리시마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독자 반응을 언급하며 "최악이었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실제로 해당 작품의 인기순위는 최하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렇게 무명 작가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1980년 사람과 로봇, 외계인이 공존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장편 만화 '닥터슬럼프'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비로소 토리야마는 만화계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인은 이 작품으로 1981년 출판사 쇼가쿠칸(小學館) 만화상을 받았다.
1984년 토리야마는 `드래곤볼` 연재를 시작한다. 이와 관련 드래곤볼 탄생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있다.
1989년 소년점프 10·18호에 게제된 인터뷰에 따르면 닥터슬럼프를 연재하고 있던 1980년 중반, 토리야마는 성룡(재키 찬)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이때 성룡의 영화들에 깊이 매료되어서 `기룡 소년 드래곤 보이` 라는 캐릭터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해당 작품은 드래곤볼의 원형이 되었던 단편집이다. 기룡 소년의 캐릭터 정체성은 고스란히 손오공 캐릭터로 옮겨갔고, 서유기 분위기에 7개의 구슬을 찾아다니는 설정을 넣어 드래곤볼을 탄생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이 '기륭 소년'이 예상 외의 호평을 받아, 이를 계기로 소재가 고갈됐던 닥터 슬럼프를 끝내고 쿵푸 느낌의 만화를 새로 연재하기로 했다"고 당시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훗날 성룡과 토리야마는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과시한다.
1984년 성공적으로 연재하던 닥터슬럼프는 홍콩에서도 큰 히트를 기록했고 이를 계기로 홍콩에서 성룡도 이 만화의 팬이 된다. 성룡이 출연한 영화 'My lucky star'에서는 닥터 슬럼프의 주인공 아라레 캐릭터도 등장한다. 이후 1986년 성룡이 영화 촬영으로 일본을 방문하는데, 이때 토리야마를 만난다.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은 한 잡지에 실리면서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성룡은 "저는 닥터슬럼프의 영향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토리야마는 "저는 성룡 영화를 참고하여 드래곤볼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드래곤볼에서 쿵푸 등 각종 권법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성룡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시작한 드래곤볼은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토리시마와 토리야마가 연구한 끝에, 각종 캐릭터의 성격을 부여하고 '천하제일무술대회' 이벤트, 피콜로 대마왕 등 다양한 캐릭터까지 탄생시키며, 이 만화는 그야말로 메가 히트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이 있는데 닥터슬럼프, 드래곤볼 등 토리야마 작품은 먹칠과 펜화만으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불구하고 입체감을 잘 살렸다고 호평을 받는다.
이런 배경에는 깐깐한 편집자 토리시마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토리야마에게 재수정을 계속 요구하며 고인은 1년간 500쪽 이상의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나온 독특한 화풍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화풍은 원피스, 나루토 작가 등 일본 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드래곤볼 단행본은 20개 넘는 언어로 번역됐으며, 약 2억 6000만부가 간행됐다. 드래곤볼이 콘텐츠 산업 등 경제 가치는 세계 시장에서 2020년 기준 약 2500억엔(약 2조 767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때문에 정부 관료까지 나서서 드래곤볼의 연재 종료를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에네르기파' 라는 극 중 대사도 유행했다. 이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거북선류 권법의 필살기이자, 드래곤볼을 상징하는 기술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지만, 드래곤볼에는 교훈적 메시지나, 토리야마 개인의 철학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해 고인은 2013년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만화에 메시지가 없다'는 질문에 "제 만화의 역할은 오락에 철저한 것"이라며 "(독자가)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무엇도 남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식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후 토리야마는 자신의 작품으로 일본 콘텐츠 업계에 큰 획을 긋는다. 2004년 제4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인터랙티브 부문 대상(드래곤 퀘스트 VII: 에덴의 전사들), 2006년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 만화 부문 3위 선출(드래곤볼), 2013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40주년 특별상, 2019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등을 수상했다.
한편 일본 언론에 따르면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대표작인 닥터슬럼프, 드래곤볼을 구매하겠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도쿄의 한 서점은 아예 토리야마의 작품 특별관을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고인은 생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어쩌면 이미 완결이 있는 드래곤볼의 또 다른 시작을 염두한 말은 아니였을까.
"한 번 더 나 자신으로 태어나고 싶다. 더 재능 있고 싶다." - 토리야마 아키라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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