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자유주의 외면한 당정, 의료개혁 끌지말고 끝장을
의대증원 "단기처방"→"필수조치" 돌변에 격하
尹 "개인자유 침해 방치, 공동체 위협" 잊은 듯
자유시민 '의사만 빼고'…급여의료 자유 있었나
총선용 아니면 불확실성 지우고 결과로 책임을
"허위논문(허위 저자등재), 조작된 표창장, 조작된 경력 등을 이용해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 부정한 방법들이 동원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예비 의사의 신분을 유지하고…." 2019년 9월18일부터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주도로 조국 당시 법무장관의 딸 조민씨의 부산대 의전원 퇴교를 촉구한 시국선언문 일부다. 현직 의사 6000명 이상의 온라인 연명으로 이어졌다. 정권교체로 이어진 '조국 사태'의 파괴력을 높인 한 장면이었다.
"코로나는 코로 나온다", "(확진자가 다녀가면) 제 입장에선 좀 쉬고 싶은데". 중국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 직후인 2020년 2월14일, 강남 한 대학병원의 젊은 정신건강의학 교수가 의학분야 유튜브에 출연해 꺼냈던 농담이다. 그 다음달 여론의 화를 돋궈 여당의 공개사과로 이어졌다.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재난안전대책위원장 아들이 장본인이어서다. 고려대 생명환경공학대 졸업 후 부산대 의전원을 거친 이력도 덩달아 회자됐다.
'의사' 타이틀을 단 유력 정치인 자제가 잇따라 자질 논란에 휩싸였었다. 한국 의료가 '양' 보다 '질'을 논하는 단계라는 방증이었던 셈이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은 2020년 의료진 방역 총동원의 와중에 지방 공공의전원 신설과 의대 증원, 한방 첩약급여화 등을 추진하다 의사파업, 의대생 국시거부에 부딪혔고 '의사-비의사 갈라치기' 논란도 불렀다. 공공의대 입학생 추천·선발에 시민단체가 관여케 한다는 구상에 '현대판 음서제'란 구설까지.
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을 넘보는 의석을 획득한 '공룡여당'이었지만, 결국 치킨게임을 피했을 만큼 코로나19 방역 상황은 엄중했다. 게다가 '세계적인 K-방역'이 귀에 못이 박히게 홍보됐듯이 한국 의료진은 전국적으로 사망자 수 최소화와 국민건강 관리에 '실력'을 보였다.
약 4년 전 여론이 '음서제 의사' 걱정이 컸을지언정, '의대 정원'도 쟁점 중 하나였다고 기억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의대 2000명 증원'을 앞세운 의정(醫政)충돌은 급작스럽다. 지난해 10월 유력 보수일간지가 "낙수효과" 운운하고 대통령실발로 증원규모 발표설이 돌더니, 올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터뜨렸다. 필수의료 현장에서 의사가 떠나게 만드는 부조리를 정부여당이 신중히 다루는줄 알았더니, 4·10 총선 직전 의사혐오만 끌어올렸다.
코로나19 방역 끝물이던 지난해 2월21일, 성일종 당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원내회의에서 의사들을 기습 성토했다. '의료붕괴 상황'이라며 "절대적인 공급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며 "필수의료에 대한 낮은 수가체계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론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의 결과"라고 했다. 이튿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 언론매체에 "의대 쏠림과 관련해 대학 정원을 늘리는 '단기처방'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여당 일각의 돌출발언인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정부·정치권발 '응급실 뺑뺑이' 공론화 시도도 이때부터지만, '의료붕괴'와 '의사과학자 양성'을 동시에 이야기한다거나, 수험생 의대 쏠림은 문제라거나 '중구난방'이었다. '아무튼 의대증원'을 뒷받침할 일관된 근거같진 않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단기처방"이라던 그것을 윤 대통령이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적 조치"라고 못 박고 나서니, '의도'도 '결과'도 궁금하다.
공론장에서도 의료의 질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은 없고 '양'에 치우친 느낌이다. OECD 통계에서 '1000명당 의사 수'만 편식하고 전문의 비율 등 의료접근성 지표는 잘 보이지 않거나, 의대 입학정원 3058명으로 연 2500명 이상 의사 배출로 꾸준히 의사가 증가했다는 점은 간과하는 것 같다. '월급쟁이' 근로소득과 '사장님' 사업소득을 동일선상서 비교하지 않는 상식을 유독 의사라면 봉직의·개업의 구분없이 얘기하거나 출처도 없는 '35세 전문의 연 3~4억, 생애소득 140억'이 나돌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정작 그 스승의 이름만 빌린 제자들의 의료지식 담합적 선언이고, 밀튼 프리드먼이 '선택할 자유'에서 이를 짚었지만 정부가 의료부문을 차지해버리는 의료 사회화(Socialized Medicine)를 가장 비판·경고했음은 다뤄지지도 않는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이라면 반(反)지성주의라고 성토했겠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시민…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나와 우리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게 된다"는 건 취임사 내용이었다.
의대 65% 증원과 이른바 개혁 패키지에 낙담한 MZ세대 수련 전공의 약 9000명이 직을 포기했다. 이들에게 '명령, 구속수사 원칙'이라는 위협성 발언이 나오고, '낸 사직서 받지말라, 취직 마라, 급여도 안 준다'고 한다. 신원미상 익명글만 골라 띄우며 가해자로 모는 관제여론전도 횡행한다. 현재·미래 의사들은 '의새(의사+해로운 새)', '염전노예'라고 자조하고 있다. 자유시민에서 '의사만 빼고'인가. 국민의힘이 "민주당만 빼고" 유행어에 안주하다 170석 이상을 내 준 게 4년 전 총선이다.
의사 집회를 본 윤 대통령이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생전의 선친이 "자유란 건 독립을 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의존을 해서도 안된다"며 용돈을 끊었던 때를 떠올렸다고 한다. 다만 책임져야 할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먼저 침해했을 때다. 2000명 싸움은 정치가 만들었고, 의사들이 '자유'와 '독립' 상태였는지도 돌아볼 일이다. 내·외·산·소 필수의료 증발은 '원가 미만'의 의료수가와 '소송남발·무과실 배상' 사법리스크가 근본원인이란 반론은 허언이 아니다.
내가 판 물건·서비스 값을 구매자에게 직접, 온전히 못 받고 시장 총액은 묶인 경제활동이 있다면? 의료수가가 그렇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로 동일한 의료행위에 정부기관(심평원)이 책정한 값(급여)만 받게 한다. 급여화한 필수의료로는 환자 본인부담금 약간, 공단(건강보험)부담금을 받지만 원가보전율 70%대 안팎이다. 수가가 전부 의사 몫인 것도 아니다. 공단부담금 지급을 건보재정 누수로 여기는 관(官)을 상대로 일일이 심사받고 깎이기까지.
급여행위가 거의 전부인 필수의료 분야가 봉직의 고용이든 개원이든 자력으로 유지가 어려운 까닭이 있다. 시간당 인건비를 극단적으로 낮추고 근로시간은 '줄여도 주 78시간'인 전공의가 대형병원에 상당비중 채용되고 인력 대체가 불가한 점도 마찬가지다. 필수의료의 '파이'는 3년 내 총수입도 총지출도 100조원 돌파, 적자 전환이 온다는 건보재정에 묶여 있다. 총액이 정해져 있는데 머릿수만 늘리면 필수의료 종사자 간 가치창출 경쟁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을 시킬 뿐이다.
급여행위는 박리다매식으로 적자폭을 줄이려 하고, 실질적으로 비급여 시장에 수익을 의탁해온 의료 현실이 '자유'와 '독립'인가. 비급여와의 혼합진료 금지, 개원 '신고제→면허제 전환' 규제, 이미 피소한 의사에게 조건부 보험상품 권하는 특례법 패키지가 해결책인가. 애초 가격과 규모 '통제'가 없는 시장이라면 의대 정원 개념도 필요없이 무한경쟁을 유도했으면 될 것이다. 족쇄같은 건보이지만 폐지는 곤란하니, 필수의료 수가에서 '원가 미만' 딱지를 떼주고 소송리스크를 0에 가깝게 줄이는 데 '선택과 집중'이라도 하고, 그 뒤 정원을 논했어야야 하지 않나.
이미 '야당으로 돌아간' 비례대표 신청 임상 비전문가 학자와 '여당 비례신청이 알려지자 철회'한 국립대 총장 등 진정성 의심을 초래한 사건이 겹쳤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이치를 빵집 주인 등의 박애심이 아닌 이기심으로 설명했지만, 지금 여론은 '복종·희생 강요'로 흐르고 있다.정부·여당은 어차피 타협 생각이 없다면, 볼썽사나운 선전전보다 전공의 9000명을 즉각 처분하고 의료개혁 불확실성을 없애 선거에서 심판받길 바란다.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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