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프리즘] 권위 있거나 권위주의적인

권대익 2024. 3. 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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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중년의 남성이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뇌와 신체 기능에는 이상이 없는 상태여서 대화를 해보니 대기업 팀장이 된지 1년, 몇 달 전부터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울분과 분노 조절 문제가 주원인인 듯하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을 위해 팀이 만들어지고 신입 직원들도 여럿 받았는데, 이 친구들이 업무에 익숙하지도 않으면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각자 업무 영역을 정하긴 했지만 추가로 할 일도 많고 야근도 잦아서 피차 힘든 상황인데 일을 실수해도 미안할 줄 모르고, 배우려는 자세도 부족하다.

처음엔 좋은 말로 달래고 회식도 자주 했는데 그것도 싫어하더니 여러 명이 퇴사를 했단다. 최근에 합류한 2년차 직원에게는 좀 더 일을 잘 하라는 의미로 좀 세게 잔소리를 했는데 회사에 항의해 갑질로 조사받는 중이라 한다.

요즘은 일터와 가정에서 소위 기성 세대와 MZ 세대의 갈등이 자주 표출되는 것 같다. 선생님, 팀장, 사장, 교수 등 중년으로 대표되는 조직의 리더들은 젊은 직원을 설득하고 구슬려서 일을 잘 하게 하려고 부심한다.

하지만 정작 조카, 자녀와도 의미 있는 대화를 해 본적 없는 사람이 비슷한 나이대 부하들의 마음을 다스리려 하니 이해가 안 되고 헛발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인심을 잃거나 마음 고생을 하는 경우가 잦은 것이다. 소통 부재와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결책이 제안되곤 하지만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리더 중에는 무조건 잘 해주고 잘 보이려 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 가장 많은 모습은 권위적으로 할 일을 지시하고서 인센티브와 처벌로 이들을 다스리려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젊은 시절 그들에게는 통했을 수 있는 그 방법이 MZ 세대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클리닉에서 바라보면 불과 얼마전까지도 조직 내 규율과 규칙에 맞추려 노력하고 적응하지 못해 밀려나는 사람들은 자기 비하와 열등감, 무기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른 것 같다. 윗사람이 이건 꼭 해야 한다며 강제적으로 밀어붙이고 못 하는 사람을 못난 사람 취급하고 비난하면 많은 젊은이들은 이를 불공정함과 예의 없음, 억눌림으로 느낀다.

누구나 다 각자의 대의명분이 있고 일에 대한 소명과 가치를 가지고 살고 있는데, 배려 없는 권위주의적 지시는 나를 아예 무시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요즘 것들이 원래 이기적이라 그렇다’고 몰아붙이는 구세대 스타일 윗사람을 보게 된다면 (말이 안 통한다 판단하고) 눈 마주치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한다. 그저 떠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심리학 개론서나 행동 과학에서는 부모의 양육 태도를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혹은 권위 있는(authoritative) 태도로 나눈다. 무조건 허용적이거나 무관심한 부모는 논외로 하자.

자녀에게 무조건 내가 정한 규칙을 따르라 강요하거나 체벌하는 것이 권위주의적 태도이다. 이렇게 자란 사람들은 결국 창의적이거나 진취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성장한다. 순종적으로 규칙에 잘 따를 수 있지만, 폭력에 결사적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대조적으로 공감으로 미래를 같이 의논하고 할 일을 결정하면서도 때로는 안전을 위해 합의된 테두리를 엄하게 지키는 부모가 ‘권위 있는’ 양육자이다. 자율적이고 진취적인 삶의 태도와 미래를 결정하는 능력은 이렇게 자란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발현된다고 한다.

심리학자, 경영 멘토들이 권하는 좋은 리더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 주변의 의견을 경청하고 변하는 상황과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선입견과 감정적 동요, 흥분과 순간의 유혹을 경계하는 것이 현명한 리더의 모습인 것이다.

늘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때로는 과감함과 권위적인 결정을 원하면서도 리더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자원을 동원해 최대한 현명하고 이로운, 그리고 의로운 결정을 해 주기를 원한다.

너만 참으면 온 가족이 편안해진다고 어르고 달래거나 윽박질러서 될 일은 없다. 역사와 영화 속 지도자의 가장 공통된 특징은 집단 목적을 이루면서도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일 것이다.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권위주의적 다스림이 신세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거대한 사회 실험은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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