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 퇴장…“윤, 듣기 싫은 말 ‘안 들을 준비’돼 있다 느껴”

정혁준 기자 2024. 3.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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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인터뷰 강성희·신민기
‘서민경제 살려달라’ ‘알앤디 복원’
“형식적으로라도 ‘알았다’고 할 줄…
“한 번이라도 사과하는 모습 보고 싶어”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왼쪽)과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지난 5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 광장에서 이른바 ‘입틀막 챌린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시작은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전북 전주을)이었다. 지난 1월18일 전주시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대통령님,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됩니다…”라고 말하자 곧바로 대통령경호처 직원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고 사지가 들린 채 퇴장당했다.

다음은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전산학부 14학번)씨였다.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기도 한 그는 지난달 16일 대전광역시 카이스트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알앤디(R&D, 연구·개발) 예산 복원하십시오. 생색내지 말고 알앤디…”라고 외치다, 마찬가지로 ‘입틀막’을 당한 뒤 내쫓김을 당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물론, 졸업식의 주인공인 학생까지 대통령 앞에서 그를 비판하면 현장에서 간단하게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달 새 반복된 오프라인 ‘입틀막’은 온라인상에서 챌린지로 확산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자들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고 찍은 사진을 올리는 ‘입틀막 챌린지’에 동참하며 현실을 풍자했다.

지난 5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강성희 의원과 신민기씨를 만났다. 윤석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입틀막’의 피해자들이다. 두 사람이 함께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지 들리니 저항조차 할 수 없어”

―‘입틀막’ 당일 윤 대통령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요?

강성희 현역 국회의원이다 보니 주민분들 얘기를 많이 들어요. 편의점 점주분들, 자영업 하시는 분들, 하나같이 너무 힘들다고 하세요. ‘하루 12시간 성실하게 일하면 밥이라도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냐’며 눈물 흘리시는 분들도 만납니다. ‘서민경제를 살려달라’는 주민들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신민기 정부의 알앤디 예산 삭감 때문에 연구 사업이 중단되고 인건비가 깎이면서 연구자들은 미래를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책임 있는 분에게 알리고 개선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국무총리가 온다고 들었는데, 당일 대통령이 왔습니다.

―대통령 경호원들이 입을 막을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강성희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황당했습니다. 대통령이 형식적이나마 ‘알겠습니다’ 정도로 답을 하거나 경호원이 ‘그만하시죠’ 정도로 살짝 말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일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일사천리로 사지가 들려 행사장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여기가 대한민국이냐’고 고함을 쳤지만, 그 말도 쉽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지 않으려고, 준비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민기 대통령과 거리가 떨어져 있어 경호원들이 그렇게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졸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저를 끌고 나가서, 처음엔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이 대통령 경호를 하러 왔는지, 졸업생을 통제하러 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지를 잡혀 끌려 나가면서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이 5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 인근 한 카페에서 1월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일어난 ‘입틀막’ 사건을 얘기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두 분은 서로의 ‘입틀막’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강성희 독재정권 때처럼 대통령 귀에 거슬리는 국민의 목소리는 아예 듣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목소리를 이런 식으로 막는다고 해서, 터져 나오는 민심을 계속 막을 수는 없습니다. 손으로 해를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닙니다. 자신들만 모르게 되는 것이죠.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도 이길 거라고 확신했고, 부산 엑스포 역시 유치를 확신했습니다. 모두 민심과 대의를 읽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신민기 시민이 뽑은 국회의원을 저런 식으로 끌어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을 떠나서도 ‘입틀막’은 인권침해입니다. 강 의원님이 들려 나갈 때 ‘건장한 분인데 저렇게 끌려 나갈 수 있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가 당해보니 저항조차 할 수 없었어요.

“매뉴얼대로? 독재국가 매뉴얼이냐”

―‘입틀막’ 사건 이후는 어땠습니까?

강성희 사건 이후 며칠 뒤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법적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진단서를 끊어달라고 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진료비는 안 받겠으니 진단서는 큰 병원에서 끊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처음엔 저를 응원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진단서를 끊어주면 정부 당국의 세무조사 등을 받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주눅 들고 자유롭지 못한 일면을 자주 보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신민기 당일 밖으로 끌려나간 뒤 30분 넘게 별도의 방에 감금당해야 했습니다. 이후 경찰이 저를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하겠다’며 경찰서로 연행했습니다. 경찰이 소환해 6일에도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대통령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 한 채 끌려 나간 게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될 정도의 범죄인가요?(신씨는 6일 대전 유성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입틀막’ 사건 뒤 주위에서 어떤 얘기를 들었나요?

강성희 처음엔 보수 언론 보도처럼 ‘왜 행사장에서 그래야 했냐’라는 얘기를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끌려나가는 걸 본 한 지역 기자는 급작스럽고 당황스러워 현장에선 항의를 못 했지만, ‘주먹이 쥐어지더라.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 영상 보고 밤새 잠을 못 잤다’, ‘너무 눈물이 났다.’, ‘전주시민을 끌어낸 거 같았다’, ‘내가 뽑아준 의원이 그런 수모를 당하는 게 치가 떨렸다’ 같은 말씀도 해주셨어요.

신민기 주변에선 ‘다친 데는 없나’고 물어봐 주시는 분도 많고요. 친구들은 알앤디 삭감의 직접적인 피해도 보고 불만도 높아 ‘잘했다’는 말도 해줬습니다. ‘그 상황에서 용기 내 소신 있게 잘 얘기했다’고 말해주는 분이 많았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의 대통령 ‘과잉 경호’ 지적에 “경호 매뉴얼에 따라 조처했다”고 밝혔는데요.

강성희 그 매뉴얼을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확인해줄지는 모르겠지만요. 만약 대통령에게 악수하고 짧게 조언한다고 해서 입을 틀어막고 행사장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게 매뉴얼이라면 그건 민주공화국 경호처의 매뉴얼이 아니라 독재국가의 매뉴얼일 것입니다.

신민기 강 의원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부에서 ‘진보당 의원이 위험해서 그렇게 했다’는 색깔론을 제기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경호처에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평화롭게 항의하는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고 사지를 잡아끌고 내동댕이치는 건, 인권 탄압과 다름없습니다. 인권 탄압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일 것입니다.

―보수 언론 등에선 대통령 경호 안전 확보를 위해서라거나, 두 분이 행사장에서 정치적 행동을 했다는 비판도 했는데요.

강성희 일부 언론이 제가 손을 잡아당겼다는 등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습니다.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영상을 보면 곧바로 사실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진실이 영상에 담겨 있어요. 우리 주민들은 언론들이 먼저 나서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해야 하지 않냐고 말씀하십니다. 언론이 왜 이리 입을 닫고 있는지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신민기 그날 제가 대통령 앞에서 한 항의는, 녹색정의당 당원으로서가 아니라 카이스트 졸업생으로 한 것입니다. 당에서는 사전에 알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당원이라는 걸 부각하며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알앤디 예산 삭감 반대’라는 주장은 정치적인 메시지여서 정치적이라고 한다면 저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를 위해 사전 준비된 메시지라는 데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강성희 민주사회에서 그런 정도의 의사 표현은 계속 나올 것인데 그럴 때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건지, 대통령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신민기 경호처의 우발적인 대응이 아니라 ‘이렇게 하도록 매뉴얼이 돼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는 왜 제대로 지키지 않는지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대통령을 보면서 모순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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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카이스트 졸업생)이 5일 오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 인근 한 카페에서, 2월16일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장에서 졸업생 자격으로 참석했다 벌어진 ‘입틀막’ 사건을 얘기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카이스트에도 사과하라”

―‘입틀막’ 챌린지가 확산하고 있는데요.

강성희 국민과 국회에서 사과를 요구해도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으니 국민이 풍자를 통해 ‘입틀막’을 희화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챌린지는 소극적인 저항의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국민이 좀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여 ‘입틀막’에 대해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냈으면 좋겠습니다.

신민기 많은 분이 동참하고 연대하고 분노하는 데 감사합니다. 풍자까지 나온다는 건 많은 사람이 ‘입틀막’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때문이죠. 다만 풍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알앤디 예산 복원에도 관심을 쏟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가 좀 더 개선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 의원님은 총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입틀막’과 관련해 시민 반응은 어떤가요?

강성희 시민 목소리를 전달하라고 뽑은 국회의원의 입을 틀어막았다는데 분노하는 분이 많습니다. ‘입틀막 강성희 의원이네. 쉽지 않은 일을 했다’며 반가이 맞아 주시는 주민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신 대변인님은 취업을 앞둔 상황에서 이번 일이 벌어졌는데요. 앞으로 계획과 카이스트 상황은 어떤가요?

신민기 저는 인공지능(AI)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약자와 사회를 이롭게 하는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일부에선 ‘왜 학생들이 이번 사건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는 말씀도 하십니다. 학생들은 사회초년생으로 첫발을 어디에 내디디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이런 일로 불이익을 받으면 다른 이보다 뒤처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정치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구조적으로 목소리가 억압된 것이지, 의식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들 역시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계시지만 제자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입틀막’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요?

강성희 많은 전주시민이 ‘그 이후 어떻게 마무리됐나요?’라며 저에게 묻습니다. 그때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 역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번 사건에 유감을 표했지만, 대통령 사과는 듣지 못했습니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에게 행한 대통령경호처의 행동으로 많은 국민이 놀랐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대통령에게 ‘경호처의 과잉 대응으로 일어났고, 유감스럽다’는 사과를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똑같이 대응하면 결국 대통령은 불행해질 것입니다.

신민기 이번 사건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입니다. 저한테만 사과하지 마시고 이런 사태를 목격해야 했던 졸업생들과 명예가 실추돼버린 카이스트에도 사과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알앤디 예산은 왜 삭감했는지도 이유를 밝혀주고 사과해주셨으면 합니다. 한번이라도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전주/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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