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속 세상읽기 - 소비의 변천사...나음, 다름, 다움
하지만 영상 90%는 조회수 1,000회도 안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기를 끄는 동영상 속 비밀이 있겠죠.
또, 인기 동영상이 말하는 우리 사회 트렌드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트렌드를 읽어보시죠.
3월 8일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를 차지한 애니메이션 영상입니다. 디즈니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해 그림이 화려하지도 않고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웹툰 습작에 가까운 그림체입니다.
스토리도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듯한 두 남녀가 한강 공원에 놀러나가 있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왜 인기지?'라고 고개를 갸웃할 법 하지만 실은 이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확고부동한 팬층을 갖춘 먹방러입니다.
지친 몸으로 퇴근해 뭔가를 해 먹기 귀찮아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음식을 먹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열광합니다.
유튜브에서 많은 실제 먹방 컨텐츠가 차력쇼를 하듯 엄청난 양을 먹어치우던가 아주아주 매운 요리를 먹는 컨텐츠와 다르죠.
일상 속 내 모습 같은 두 남녀 만화 주인공에 동질 의식을 갖게 되고 팬층이 형성됐습니다.
게다가 내가 열렬히 응원하는 두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를 한다니 클릭할 만 하겠죠.
이 영상 뒷부분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영상 주인공과 관련된 굿즈를 파는 '팝업스토어'가 열린다는 홍보 문구가 등장합니다.
요즘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홍보 방법은 TV나 유튜브 등 동영상 광고가 아닙니다. 바로 팝업스토어 입니다.
팝업스토어는 말 그대로 계속 영구적으로 존재하는 가게가 아니라 한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곳입니다.
과거 닷새마다 장마당이 열렸던 오일장도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생겼다가 사라지는 팝업스토어이고 폭탄세일을 한다며 상가에 며칠 동안 옷을 팔던 곳도 팝업스토어 개념입니다.
과거에는 계속 장사를 할 형편이 못될 때 '팝업스토어'를 열고 잠깐 물건을 파는 용도였다면, 요즘 팝업스토어는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며칠 장사하다가 문닫을 곳인데 정말 정성들여 꾸밉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멋지게 인테리어를 하고 심지어 배를 타고 입장을 하거나 커다란 LED 화면으로 다양한 영상을 트는 등 색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여러가지 체험으로 좋은 경험을 만들어 주면 해당 브랜드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고, 결국 충성도 높은 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한시성이 팝업 스토어에서 파는 물건은 '한정 판매 상품' 으로 받아들여져 더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게 됩니다.
멋지게 꾸민 매장 앞에서 다채로운 물건을 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소비자가 긍정적인 평가를 자발적으로 올려준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팝업 스토어'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수 없겠죠.
사실 '팝업스토어'가 젊은 층에 대한 마케팅 대세로 등장한 이면에는 소비를 결정하는 방식이 바뀐 이유가 큽니다.
과거에는 소비를 결정할 때 가장 큰 기준은 '나음'이었습니다.
같은 돈을 줬을 때 더 기능이 많은 것, 더 많이 주는 것 그리고 더 튼튼한 것 등이었죠.
다른 상품보다 나아지는 것과 나아보이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광고에서도 주로 강조하는 부분이 '다른 제품보다 더 싸고, 많고, 튼튼하다' 였습니다.
기술 발달이 진행되며 상품이 특별히 더 싸고, 더 많고, 더 튼튼하기 어려운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소비 기준도 '나음'을 찾기보다는 '다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좀 다른 계층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물건이 날개 돋힌 듯 팔리기 시작합니다.
매스티지(Masstige)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시대였죠.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을 조합한 말로 명품의 대중화 현상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정도 수준 상품을 소비하는 소득 계층이라고 보여주고 서로 동질감과 사회적 경쟁에서 우위에 서 있다는 기분이 우선시 된 겁니다. 당시 광고도 대부분 '다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난 '다른' 계층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던 소비가 최근에는 급격하게 나 '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조금 더 비싼 '브랜드' 커피를 마시는 소비로 나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공정무역'으로 수입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환경 보호를 위해 '텀블러'에 담아 마시는 소비로 '나'를 표현합니다.
팝업스토어에 긴 줄을 참고 기다려 한정판 굿즈를 구입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것은 나는 어릴적 봤던 '슬램덩크'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고, 긴 줄을 기다릴 정도로 그 마음에 진심이라는 '나'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나음에서 다름을 거쳐 나 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지갑을 연다는 뜻이죠.
흔히 사람의 욕구가 점차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는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설을 보면 '나음'을 추구했던 소비가 생리적, 안전 욕구에 부합했다면 '다름'을 추구했던 소비는 사랑과 소속 그리고 존중 욕구와 맞아 떨어집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 중심의 '다움'을 채우기 위한 소비야 말로 '자기 실현 욕구'의 표현이겠죠.
또 다른 사람들은 '부모 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위험이 있는 청년 세대들이 취업난과 주거난 속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소비는 '다움'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건 이제 소유보다는 경험을 더 추구하고 스토리가 없는 상품은 외면 받는 시대입니다. 돈 쓴 게 뚝뚝 떨어지는 화려함 보다 더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가 차곡히 쌓여있는 상품과 브랜드를 추구하는 요즘은 '진심' 없이는 정말 성공하기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성철 기자 / fola5@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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