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아파트 외관 색상이 시안과 다르다면?…입주 10개월만에 도색 다시 한 이곳[주住배틀]
※집은 일상의 평화를 담보하는 ‘살아가는 곳’이자, 생애 가장 큰 돈을 지불하는 ‘주거 상품’이기도 합니다. 경향신문 ‘주住배틀’은 집을 둘러싼 우리 주변의 복잡하고 다양한 분쟁을 전달함으로써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당신의 집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로 입주할 아파트의 외벽 색깔이 당초 협의한 시안과 다르다면?
대구 수성구의 더트루엘수성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해 1월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깜짝 놀랐다. 아파트의 외벽 색깔이 분양 받은 직후 협의했던 색깔과 달랐기 때문이다. 원래 시안의 외관 색상은 진회색과 진청록색이었다. 그러나 사전점검 때 마주한 아파트 외벽은 ‘흐렸다’. 진한 색깔을 기대했던 입주자들은 옅은 회색과 옅은 녹색의 아파트 외벽을 마주해야 했다. 입주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번 ‘주주(住)배틀’ 사연은 입주 10개월만에 아파트 외관 도색을 새로 한 대구 수성구의 신축 아파트 더트루엘수성 이야기다. 시공능력평가 65위 일성건설이 시공했다.
1차 사전점검 때 ‘오물테러’
건설사 “화물연대 등 파업 공정 늦어져 생긴 일”
지하 2층~지상25층 2개동(158세대)으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2022년 10월 사전점검 때부터 말이 많았다. 사전점검은 입주를 앞두고 분양받은 사람들이 다 지어진 아파트를 첫 대면하는 자리다. 설렘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이 날은 악몽이 되어 돌아왔다. 외벽 도장, 대리석 등 마감이 허술한 것은 물론 세대 내 발코니와 화장실 등에선 인부들 것으로 추정되는 인분이 발견됐다.
부실·날림시공은 최근 많은 사업장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공정 일정을 맞추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공사비 급등, 화물연대 파업 등 공정을 늦추는 외부 요인이 겹치자 여러 건설사가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사전점검부터 진행하게 된 것이다. 더트루엘수성도 1차 사전점검일 기준 공정률 수준이 87%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아파트는 입주 예정자들이 항의하면서 2022년 11월 2차 사전점검을 하기로 했다.
입주민 불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터졌다. 2차 사전점검을 앞둔 어느 날, 현장 안전펜스를 내리고 아파트 외관의 모습이 드러났다. 도색이 문제였다. 시안과 전혀 다른 색상이었다.
입주예정자들이 본 시안은 진회색과 청록색 조합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베일을 벗은 아파트는 상아색이 메인 색상이고, 옅은 회색과 초록색이 덧발라졌다.
입주자 카페에는 불만 글이 쇄도했다. 아파트 색이 왜 이렇게 연하냐는 문의 글부터 시안과 현장 사진을 비교하며 어느 부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꼬치꼬치 따지는 글도 올라왔다. 입주자 A씨가 말했다. “시공사에 문의하니 시안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입주예정자협의회에 이미 보냈다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보냈다는 시안도 완성된 아파트 색과 달랐고요.”
시안이 왜 바뀌었냐는 질문에 일성건설은 구청 심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일성건설 관계자는 “외부도색은 시공사에서 임의로 하는 게 아니라 구청 승인을 받고 정하는 것”이라며 “착공 전 수성구 경관 심의 때 색상이 다 정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구 10만명 이상 지자체는 경관법에 따라 권역별로 외벽색을 지정해두고 있다. 인구 40만명의 대구 수성구의 경우 주택건물 기조색으로 탁한 하늘색, 팥죽색, 상아색, 베이지 등을 쓰도록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모든 건축물이 구청 가이드라인을 꼭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경관심의는 인허가를 결정짓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심의에서 가이드라인 색상을 지정하더라도 추후에 입주자 원하면 변경 신청을 통해 색상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아파트 도색은 경관위가 아니라 입주자와 긴밀한 소통으로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색상은 입주자들에게 매우 예민한 문제”라며 “통상 건설사는 색을 칠하기 직전에 색상별 코드번호를 입주자와 재차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고 말했다.
재도색 확약받고도 계속된 기다림
입주자 단체행동 나서자 시공사 회유
입주민은 들끓었다. 이미 사전점검 때부터 발생한 부실 시공으로 건설사에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다. 2023년 1월 입주 후 3개월만에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됐다. 언론에 제보도 했다. 과거 ‘오물테러’ 사건으로 이 아파트에 관심을 갖는 언론사들이 많았다. 압박이 가해지자 시공사에선 4월 재도색 확약서를 써줬다. 하지만 공사는 순순히 진행되지 않았다. 시공사는 재도색에 대한 입장을 번복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재도색에도 비용이 든다. 심지어 재도색은 베이스를 한번 더 발라서 진행하기 때문에 기한이 더 걸리고 인건비가 그만큼 추가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신축에 3번을 덧칠한 기준으로 한 동에 1000~3000만원 선이 든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은 5월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일성건설이 공사 입찰을 따내려는 대구시내 인근 사업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겠다는 최후통첩 했다. 건설사는 그제서야 재도색을 해주겠다고 확답했다.
입주민들은 곧바로 디자인 회사를 지정해 새 시안을 만들었다. 본 시안보다 더 멋진 색상을 정하기로 하고 다른 아파트와 비교를 해보기 위해 며칠씩 서울 출장도 다녀왔다. 2023년 9월 재도색 작업이 진행됐고 그해 10월 현재 색상으로 탈바꿈했다. 입주한 지 딱 10개월만에 원하는 아파트 외관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니다
입주자들은 아직 일성건설과 다투고 있다. 여전히 아파트 여러 세대가 누수, 결로 등 하자로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은 아직도 누수로 비가 올 때는 깊은 웅덩이가 생기고, 출입구 천장에는 배관마다 곰팡이가 가득 껴있다. 세대 내에서는 결로로 창틀이 열리지 않는 일이 흔하다.
입주자들은 모든 보수가 완료되기까지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상’이라고 여기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과한 게 아니라 원래 시공사에게 받기로 한 것을 받는 일이에요. 내 돈을 주고 샀는데 페인트칠이 엉망, 공사가 엉망인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다른 아파트는 집값 내려간다고 쉬쉬할 수 있는데, 우리는 달라요. 158세대 중 148세대가 모두 실거주에요. 집값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사는 사람이 안전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게 중요하잖아요. 일성건설은 공용부 하자 문제에 대해서 겨울에는 눈 그치면 한다, 봄 되면 여름 되면 한다고 하면서 1년이 시간이 지났어요. 저희는 앞으로 더 전투적으로 싸울 거예요.”
일성건설은 하자보수와 관련한 경향신문 질문에 “주민들이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빨리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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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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