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 쓰는데 월 370만원"…'돌봄지옥' 빠진 대한민국[이슈Repaly]

박광범 기자 2024. 3. 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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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범의 이슈 Replay]
[편집자주] 지난 한 주 동안 우리 경제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머니투데이가 꼭 알아야 할 '핵심 이슈'만 선별해 알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가사와 간병 등 돌봄서비스 인력난 완화를 위한 외국인 노동자 도입 논의가 불붙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이 돌봄서비스 분야에 외국인 노동자 도입을 확대하고 이들에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자는 제안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외국인 인력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이미 높아진 비용 탓에 돌봄부담을 낮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가입돼 있는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은 동일 업무를 하는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어 한은의 정책 제언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입니다. 당장 이주단체들도 반발하고 있어 한동안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간병비 월 370만원…임금 28% 오를 때 간병비 50% 비싸졌다
한은이 이런 제언을 내놓은 건 우리나라의 돌봄부담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은이 지난 5일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돌봄서비스직 구직자 1명당 빈일자리수 비율은 1.23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못따라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돌봄 인력을 구하려고 할 때 한 달 이내에 구할 확률은 코로나19(COVID-19) 이전 80% 이상에서 최근 50% 이하로 낮아졌습니다.

노동공급 부족 규모는 향후 더 급증할 전망입니다. 2022년 기준 돌봄서비스직 노동공급 부족 규모는 19만명이었습니다. 이 규모는 고령화 등으로 급속하게 늘어 2032년 38만~71만명, 2042년 61만~155만명으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관적 상황을 가정하면 2042년 돌봄서비스직 노동공급이 수요의 약 30%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돌봄 인력의 미스매치가 심화하면서 비용도 덩달아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요양병원 등에서 개인 간병인을 고용할 때 필요한 비용은 월 370만원 수준입니다. 2016년보다 50% 상승한 수준입니다. 같은기간 명목임금 상승률(28%)을 크게 상회합니다.

65세 이상 고령 가구 중위소득(224만원)의 1.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기도 합니다. 고령가구가 간병비를 부담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또 40대와 50대 중위소득(588만원)의 60%를 넘는 수준으로 자녀가구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가사 및 육아 도우미 급여도 같은 상황입니다. 가사도우미료는 2016년 대비 37% 증가해 지난해 월평균 264만원(하루 10시간 이상 전일제 기준)으로 나타났습니다. 30대 가구 중위소득(509만원)의 50%를 상회합니다.

'돌봄인력을 쓰느니 일을 그만두고 직접 육아를 하거나 간병을 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한은의 제안…최저임금 낮은 외국인 돌봄노동자 도입
자료=한국은행
하지만 비용부담으로 가족이 간병이나 육아에 뛰어들면 국가 경제 전체에 손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함으로써 생산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입니다.

대안으로 외국인 인력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은은 두가지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개별 가구가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럴 경우 사적 계약에 해당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돼 비용부담을 낮출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외국인에 대한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추가적으로 비용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이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식입니다.

두가지 방안의 핵심은 외국인 돌봄서비스 노동자 고용에 따른 비용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봄서비스 비용이 높으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상대적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활발한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은 우리나라에 비해 가사도우미 임금이 저렴한 편입니다. 물론 이들 나라는 최저임금제도가 없거나 ILO 미가입국입니다.

현실가능성은 '글쎄'…이주단체 반발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4년 한국은행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은행
문제는 현실성입니다. 현행법과 ILO 협약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외국인 돌봄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자는 게 한은 방안이지만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많다는 노동당국 안팎의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개별가구의 사적 계약 방안은 현재도 대다수의 돌봄 노동자가 같은 방식의 계약으로 고용돼있기 때문에 차별성을 두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사업체와 달리 개별가구의 사적계약은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탓에 인권, 고용환경 보장이 쉽지 않고 그에 따른 부작용 사례도 적지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별도 최저시급을 책정하는 안 역시 돌봄노동 종사자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ILO 협약은 내외국인 간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탓에 전체 돌봄노동자에 대한 임금 하락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저임금법은 개별업종에 대한 별도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차등 최저임금이 적용된 것은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1988년 단 한 차례에 불과합니다. 이 때도 제조업과 비제조업 등 큰 범주에서 최저임금을 구분했던 점을 고려하면 특정업종에 대한 별도 최저임금 산정사례는 사실상 없다는 설명입니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역시 매년 업종별 최저임금 논의를 하지만 결과물로 나온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당장 이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민센터 친구 등으로 구성된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6일 성명을 내고 "국가 공적 기관이 이주노동자 차별과 착취를 제안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즉각 철회하라"고 비판했습니다.

한은도 보고서 발표에 따른 논란을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논란을 피하자고 구조개혁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게 한은의 판단입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보고서를 발표한 지난 5일 노동시장 세미나 환영사에서 "구조개혁 과정에서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를 도출하기는 어려우며 단기적인 고통이나 희생이 수반된다"며 "구조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알을 깨는 고통이 수반된다는 각오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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