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9일!] "와~ 이겼다"… 인간의 위대함 일깨운 '신의 한수'

차화진 기자 2024. 3. 9.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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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
지난 2016년 3월9일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사진은 지난 2016년 3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알파고와 제4국을 펼치는 모습. /사진=구글
2016년 3월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우리나라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사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전 세계도 인간과 AI(인공지능)의 대결이라는 초유의 이슈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바둑계는 이세돌의 승리를 예상했고 한국 누리꾼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뛰어난 AI라고 해도 무한대 경우의 수를 지닌 바둑에서 인간을 능가하기 힘들다는 것이 대부분의 예상이었다. 이세돌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제1국에서 총 186수가 바둑판을 메웠을 때 승부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이세돌은 대국 3시간 반 만에 알파고에 항복을 선언했다. 모두 5경기를 치르기로 한 세기의 승부는 4승 1패를 거둔 알파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인간, AI에 무릎 꿇다"… 세기의 대국 시작


이세돌은 제1국에서 알파고를 상대로 186수 흑 불계패를 당했다. 사진은 이세돌이 지난 2016년 3월15일 제5국 대결 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는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운명의 첫 대국이 펼쳐진 3월9일. 이세돌은 "(내가 알파고에) 5대0으로 이길 확률이 가장 높다고 본다"며 자신만만하게 대국장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대국 중반으로 접어들며 흐름은 뒤집혔다. 딥마인드 직원 아자황의 손을 빌린 알파고는 예상을 벗어나는 수를 던지며 이세돌에 공격적으로 맞섰다. 이에 이세돌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알파고는 1분~1분30초 만에 칼같이 수를 두며 심리전에서도 앞섰다. 당시 공식 해설을 맡았던 김성룡 9단은 "알파고는 1분30초 안에는 무조건 수를 둔다"며 "인간은 점점 판이 어려워지면 길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알파고는 그러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장고 끝에 수를 둬도 알파고가 1분 만에 다시 수를 둘 경우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심리적으로 동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세돌은 대국 막판에 더 이상 승기가 보이지 않음을 인정하며 항복했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상대로 186수 백 불계승을 거뒀다. 불계승은 상대가 계가하지 않고 기권해 승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알파고는 2국에서 211수 흑 불계승, 3국에서는 176수 백 불계승을 거두며 이세돌을 제압했다.



"마침내 인간이 이겼다"… AI 꺾은 역사적 한판


이세돌은 제4국에서 마침내 알파고를 무너뜨렸다. 사진은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결을 마감한 지난 2016년 3월15일 오후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시상식이 열리는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총 다섯 번의 대국 중 네 번째 대결이 3월13일 펼쳐졌다. 백돌을 쥔 이세돌은 끝내 알파고를 무너뜨렸다. 이세돌은 대국 초중반까지 알파고에 흐름을 내주는 모습을 보였지만 중반 87수에서 알파고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자 판세를 뒤집었다.

이세돌은 알파고의 다음 수를 예측하며 판을 복잡하게 끌고 갔고 알파고는 당황한 듯 악수를 연달아 두는 등 실수를 거듭했다. 이날 공식 해설을 맡았던 송태곤 9단은 "알파고가 렉(용량 및 처리능력 부족)이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알파고는 끝내 컴퓨터 스크린에 '기권'(resigns) 메시지를 띄우며 항복을 선언했다. '3연패'라는 부담감을 극복한 이세돌은 180수 백 불계승으로 값진 1승을 거머쥐었다. 승리를 확정한 순간 대국장에서는 AI를 이긴 인간 이세돌을 향한 환호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날 대국 후 기자회견을 가진 이세돌은 "한 판을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받아본 건 처음인 것 같다"며 "오히려 3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까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1승"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초반은 알파고가 우세했으나 이세돌의 묘수와 복잡한 형세로 이어지면서 알파고의 실수가 나왔다"며 "오늘 이세돌은 다시 한번 대단한 바둑기사임을 입증했다"고 분석했다.



'알파고 쇼크' 후 7년… 계속 진화한 AI, 이제는 챗GPT 시대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국을 1승 4패로 마무리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3월15일 오후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자신의 서명을 전달하는 이세돌. /사진=머니투데이
이세돌은 이후 같은달 15일에 열린 제5국에서 280수 만에 불계패했다. 이로써 이세돌은 1승 4패로 대국을 마감했다. 이세돌은 "알파고의 기력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집중력 등의 측면에서 인간이 이기기 쉽지 않은 상대"라고 평가했다.

바둑 최강자였던 이세돌을 알파고가 이겼을 때 우리 모두는 놀라움과 함께 큰 불안감을 느꼈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경제·산업계는 물론 정치권도 인공지능이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왔다며 관련 대응책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제한 없이 발전할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우려와 기대는 7년이 흘러 지난해 챗GPT(GPT-3.5)의 등장으로 재연됐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 열풍은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압승했을 때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등장한 챗GPT는 이세돌을 이긴 AI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 능력이 가공할 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국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알파고가 AI의 잠재능력을 깨닫게 해줬다면 이세돌은 인간 지성의 위대함을 일깨웠다"고 총평을 내놨다. 이세돌은 비록 패했지만 도전정신 등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동을 줬다는 것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슈퍼컴퓨터 1202대가 연결된 최신 알고리즘 기술의 AI를 순수한 인간의 능력만으로 제압한 데 의미가 크다. 특히 제4국에서 알파고를 무너뜨린 이세돌의 백 78수는 기계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던 인간에게 희망을 안긴 '신의 한 수'였다.

차화진 기자 hj.cha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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