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두 딸과 국경 넘은 34살 엄마의 꿈…“들려줘서 감사합니다”
정우성이 만난 남미 ‘강제실향민’
콜롬비아·에콰도르, 이주민 등 수용
‘함께 살기’ 배우며 꿈꾸는 미래
“눈 맞추고 경청하며 나누는 교감”
3개국 아이들 다니는 학교선 통합교육
유엔난민기구(UNHCR)는 난민과 실향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대응을 주도하고 조정할 권리를 부여받은 유엔 기구다. 1949년 12월 유엔 총회가 창설을 의결하고, 이듬해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출범했다. 2023년 기준 세계 135개국에 대표부와 사무소를 두고 1억명이 넘는 난민과 강제실향민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1954년과 1981년 두차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유엔난민기구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유명 문화예술인과 스포츠 선수를 친선대사로 위촉해 기구의 활동과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기금 모금에도 도움을 받고 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40명의 친선대사가 활동 중이다. 한국인 친선대사는 영화배우 정우성씨가 유일하다. 한겨레는 지난달 18일부터 23일(이하 현지시각)까지 엿새간 정우성 친선대사의 콜롬비아·에콰도르 현장 방문을 단독 동행취재했다. 유엔난민기구 현지 사무소들이 지원하는 시설들은 강제실향민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시련과 사회통합의 현장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정우성 인터뷰 “아기 분유 타려고 구한 물로 차 대접받아…눈물 왈칵”
난민·국내실향민 포함하는 ‘강제실향민’
콜롬비아는 남미 대륙의 맨 위쪽에 있다. 육로를 통해 중미와 북미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다. 남쪽으로 에콰도르·페루·브라질, 서쪽으로는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댄다. 남미 3위의 경제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콜롬비아 남단의 국경도시 이피알레스는 깊은 협곡을 자연 경계로 삼아 에콰도르와 접한다. 루미차카 다리를 건너면 나라가 바뀐다. 다리 양쪽 진입로에는 각각 두 나라의 출입국 관리청 사무소가 있다. 출입국을 위해선 이곳에서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적어도 두 나라 국민의 왕래는 범죄 혐의가 없는 한 자유로워 보였다. 콜롬비아 쪽 진입로 근처에는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정보·지원 센터’(PAO·파오)가 있다. 유엔난민기구 콜롬비아 대표부가 협력기관인 옵시온 레갈을 통해 운영하는 센터로, 콜롬비아에 머무르거나 이곳을 통과하는 강제실향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안전한 체류·통과·귀환을 돕는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1951년)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로 국적국 밖에 있으면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 보호를 원하지 않는 자”로 규정한다. 범죄·폭력을 피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국경을 넘지 않은 이들은 ‘국내실향민’(IDPs)으로 분류된다. 유엔난민기구는 난민뿐 아니라 난민 신청자, 국내실향민과 무국적자도 보호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이들을 통칭하는 개념이 ‘강제실향민’이다.
지난달 21일 오전, 베티아나(가명·34)가 루미차카 다리 근처에 서 있었다. 아직 미성년인 두 딸과 함께였다. 이제 막 에콰도르에서 콜롬비아로 넘어왔다. 정우성 대사가 베티아나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말을 붙였다. 처음 잠깐 머뭇거리던 베티아나는 이내 막혔던 물꼬가 터진 듯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스페인어-한국어 통역 지원자가 바빠졌다. 베티아나는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6년 전 고향을 떠나왔다고 했다.
“베네수엘라에선 왜 나왔어요?”
“망고 노점상을 했어요. 그런데 정부가 노점상이 불법이라며 단속하는 바람에 생계가 막막해졌어요. 길거리 행상을 하던 사람들이 베네수엘라를 떠나기 시작했죠. 왜 떠나느냐 물었더니, 콜롬비아에는 기회가 더 많다고 했어요. 나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져 갈등하다가 결심했어요. 남편한테나 정부한테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거든요.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났어요. 고국의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있다는 걸 생각하면 슬프고 속상해요. 하지만 나와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이 가장 중요해요.”
“온 가족이 다 왔나요?”
“나와 아들, 그리고 두 딸. 베네수엘라에서 살던 집에는 친정아버지가 살아요. 남편은 없어요.(같이 살지 않는다는 뜻) 지금껏 내가 아이들을 다 키웠어요. 아들(17살)은 에콰도르에서 일해요.”
“친정아버지와는 자주 연락하나요?”
“날마다 연락하죠. 아버지도 생활이 많이 힘들고 건강도 안 좋으세요. 고향에선 사람들이 서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며 사는데, 갈수록 경제 상황이 나빠져서 남을 도울 형편이 못 돼요.”
“6년 동안 어디에서 지냈나요?”
“에콰도르 전역을 떠돌았어요. 닥치는 대로 일했죠. 머리를 잘라서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했어요. 최근엔 에콰도르에 사는 친구 집에서 지내다가 큰딸이 병원에 가야 해서 콜롬비아로 왔어요.”
“따님이 어디 아픈가요?”
“14살인데, 임신을 했어요. 이곳 이피알레스에서 더 좋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왔어요. 여기에서 값싼 월셋집이나 숙소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 파오에 알아보려 해요.”
오는 5월 출산 예정이라는 소녀의 배가 제법 부풀어 있었다. 정 대사도, 기자도, 겨우 8살 때 엄마를 따라 나선 14살 딸이 어쩌다가 임신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베티아나는 “베네수엘라는 참 아름다운 나라다. 석유도 많이 나온다. 부유한 나라가 될 수도 있는데, 지금은 너무 가난한 나라가 돼버려서 마음이 아프다. 우리 가족을 받아주고 기회를 준 콜롬비아에 감사한다. 콜롬비아가 아니었으면 나는 여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꿈이 있다. 콜롬비아에서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나와 가족 모두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기회를 주고 싶다”고도 했다. 정 대사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감사하다”며 격려의 뜻을 전했다. 베티아나는 “내 말에 귀 기울여주어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지만 극복해왔다. 앞으로도 잘해나갈 자신감이 있다”는 말이 귓전에 오래 남았다.
베티아나가 20분 넘게 스페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동안, 그리고 통역 지원자가 중간중간 그의 말을 한국어로 옮기는 동안에도 정 대사는 베티아나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고 줄곧 눈을 맞췄다. 베티아나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엿새 일정 동안 수많은 난민과 실향민을 만나는 내내 그의 눈길은 상대의 눈에 머물렀다. 정 대사는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지만, 스페인어는 전혀 모르는데도 그랬다. 반면, 그가 만난 강제실향민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몰랐다.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표시죠. 상대에게 관심이 있고 교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고 믿어요. 눈을 맞추고 집중하다 보면 전혀 모르는 단어들인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는 것 같아요.”
미국 넘어가려는 사람도 콜롬비아로
베티아나 가족은 최근 10년 새 극심한 경제난과 그 밖에 다른 이유로 베네수엘라를 떠나온 770만명의 실향민 중 하나일 뿐이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의 산유국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국제유가에 석유 수출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경제 제재까지 겹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탄지경이다. 2023년 기준 베네수엘라 인구(약 2900만명)의 25%가 나라 바깥을 떠돌게 된 이유다. 그 대다수는 멀리 가지 못하고 남미 인접국에 머문다. 일부는 북미로 향하거나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현재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의 강제실향민 290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다. 콜롬비아 정부는 2021년부터 이들의 신분 확인을 거쳐 자국의 고용, 교육, 의료, 금융 서비스 등을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임시보호 지위’(TPS)를 부여하고 있다. 현재 약 200만명이 그 지위를 인정받았고, 39만명은 해당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전혀 없이 입국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보호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이피알레스의 파오에서 일하는 활동가는 “최근 이피알레스로 입국하는 난민과 실향민이 급증하고 있다. 하루 최대 5천명, 2021년부터 최근까지 3년 동안에만 약 95만명이 들어왔다. 베네수엘라 실향민이 가장 많다. 또 콜롬비아 북부 국경과 파나마를 잇는 정글 지대인 ‘다리엔 갭’을 통해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몰려드는데, 그 과정에서 실종자도 많이 생긴다. 우리는 그런 이동 과정의 위험 요소들에 대해서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보호자 미동반 아이들이 국경을 넘는 경우도 많은데, 무장단체가 그들을 조직원으로 ‘모집’해갈 위험도 있어 보호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에 다른 나라의 난민과 이주민만 몰려드는 건 아니다. 오랜 내전과 마약·범죄 조직의 폭력을 피해 고향을 떠난 국내실향민도 무려 690만명에 이른다. 무장 충돌이 잦은 산악 지대에는 치안 부재와 신변 위협 탓에 외부와 단절된 마을 주민들도 많다. 정부와 유엔난민기구가 이들을 다 보호하기엔 재정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콜롬비아는 1966년 이후 지금껏 반세기가 넘도록 좌파 무장 반군 세력과의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콜롬비아 정부는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평화협정을 맺고 싸움을 끝냈지만, 또 다른 무장분파인 민족해방군(ELN)은 여전히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콜롬비아 정부는 이들과 6개월 휴전 만료를 앞두고 6개월 휴전 연장에 합의했다. 그러나 근본적 갈등의 해결이 미봉된 휴전은 위태로운 평화일 뿐이다. 콜롬비아는 마약(코카인)의 주요 생산지이자 유통지로, 마약 카르텔들의 폭력과 범죄도 심각하다. 무장 반군과 우익 민병대가 마약 범죄에 가담하고, 신규 조직원 확충을 위해 어린이들을 납치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여자아이들은 성폭행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함께 운전하기’로 일자리 갈등 해소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외곽의 폰티본 지역 버스 종합터미널은 육로 교통의 중심지라 강제실향민의 왕래가 많다. 이곳에 있는 파오는 보고타 시장실 직속으로 운영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강제실향민 정책 관련 기관과 유엔난민기구·국제이주기구(IOM) 등 국제기구들이 상주하면서 강제실향민들에게 법적 지원, 임시 피난처 연결, 보호 모니터링, 사례 관리, 현금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루에 80~150명이 찾아온다. 지난달 19일 오전, 베네수엘라 출신의 카타리나(가명·32)는 일자리 정보와 지원 정책을 알아보려 파오를 방문했다.
“7년 전에 혼자 콜롬비아로 왔어요. 당시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학비를 낼 수 없게 돼 휴학하고 학비를 벌려고 왔어요.” 카타리나는 그동안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겨우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벌었는데, 길게는 하루 16시간씩 일하느라 무릎에 탈까지 났다고 했다. 바지 위로 여전히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건축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도 충분한 학비를 마련하지 못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콜롬비아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이곳에서 살고 싶어요.”
콜롬비아에 베네수엘라 출신 강제실향민이 몰리면서, 콜롬비아 지역 주민과 일자리를 두고 갈등도 없지 않다. 유엔난민기구와 콜롬비아 정부는 이들의 보호와 연착륙, 사회통합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보고타시의 ‘함께 운전하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대중교통 버스 회사 ‘라 롤리타’는 모범적 사례 중 하나다. 2022년 설립해 190대의 전기버스를 운행하는 이 회사의 운전기사 중 45명은 베네수엘라 출신 여성이다. 회사가 유급으로 운전 교육과 면허 취득, 실습을 지원하고 채용까지 했다. 이날 현재 운전 연수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 여성들만 120명가량 된다고 했다. 라 롤리타의 버스를 운전한 지 석달째라는 다니엘라는 “전에는 세차, 신문 배달, 길거리 음식 판매 등으로 근근이 살았고 운전면허도 없었다”며 “지금은 인생이 바뀌었다. 가족과 여행도 하고 보험 혜택도 누린다. 이런 기회를 준 라 롤리타와 콜롬비아에 너무나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피알레스의 식료품 시장에서 일하는 베네수엘라 출신 이주민들도 생활공동체 성격의 조합을 만들어 자립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자녀 6명을 부양하기 위해 6년 전 이곳에 왔다는 로베르토(36)는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 다 적응했다. 콜롬비아 친구들도 사귀고 가족처럼 지낸다. 처음엔 차별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없다. 삶이 훨씬 좋아졌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평생 이 시장에서 일했다는 콜롬비아 주민 알바(62)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처음 들어왔을 땐 내 일자리가 위협받을까 봐 걱정했는데, 막상 함께 살아보니 다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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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카 사란세 학교의 ‘파르치스’ 놀이
콜롬비아·에콰도르·베네수엘라가 강제실향민의 왕래 문턱이 낮고 포용적인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본디 세 나라는 ‘콜롬비아 공화국’이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졌다. 지금의 콜롬비아와 구별하기 위해 ‘그란 콜롬비아’(1819~1831)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당시 영토는 오늘날 콜롬비아를 비롯해, 베네수엘라·에콰도르·파나마 전체와 코스타리카, 페루, 브라질, 가이아나의 영토까지 일부 포함했다.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 해방과 독립의 선구자인 시몬 볼리바르(1783~1830)가 스페인의 지배에 개별적으로 저항하던 세력을 통합해 미국처럼 연방제로 운영되는 대통합 국가를 꿈꾸며 건국을 선포했다. 볼리바르는 그란 콜롬비아와 볼리비아의 초대 대통령, 페루의 4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러나 연방주의와 분리주의 세력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고, 볼리바르가 사망한 이듬해에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잇따라 분리 독립을 선포하면서 해체되고 말았다. 오늘날 세 나라의 국기는 모두 노랑·빨강·파랑 삼색기가 기본으로, 그란 콜롬비아 국기를 조금씩 변형한 형태다.
에콰도르도 베네수엘라 출신 실향민 47만명과 콜롬비아 난민 7만6천명을 수용하고 있다. 에콰도르 북부 도시 오타발로에는 우리나라의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지원하는 ‘사란세 학교’(Unidad Educativa Sarance)가 있다. 초·중·고등 통합 12년제 학교인데, 에콰도르 아이들뿐 아니라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온 강제실향민 아이들도 함께 다닌다. 외국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대응하고 포용의 가치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난달 23일 오전 정 대사 등 유엔난민기구 일행이 이곳을 찾았을 때, 탁 트인 잔디 운동장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파르치스’라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네모 놀이판의 각 변에는 다양성, 사회변화, 정의, 정체성이라는 글자가 쓰였고, 커다란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눈의 수에 따라 문답 풀이를 하는 놀이였다. 아이들은 그렇게 함께 살아가기의 가치를 자연스레 터득하고 있었다. 콜롬비아 실향민인 사라(13)는 2021년에 친할머니와 함께 에콰도르에 왔다. 부모는 콜롬비아에 남았다. 사라는 “이곳에서 여러 나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국적이 다른 친구들과 그 문화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정 대사는 콜롬비아에서 인디오 선주민 전통 학교, 에콰도르에서 실향민 긴급 지원센터 ‘푼토 워시’, 재활용 쓰레기 분리 수거 회사를 만든 베네수엘라 실향민 공동체, 보호자 미동반 아동 보호시설을 방문하고 ‘다양성’을 주제로 만든 단편영화 상영회에도 참석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일정을 마친 마지막날, 그는 남미 현장 방문의 소감을 묻자 “세 나라가 역사적으로 특수한 이해관계이다 보니 강제실향민 사태도 매우 이상적인 방법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학교에서 하는 이주민 통합 교육은 강제실향민이나 난민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아니더라도 어느 사회에서나 현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며 “다른 곳의 난민 수용 지역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에콰도르/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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