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를 찬사로 바꾼 이정후의 아름다운 일주일[스한 위클리]
[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이정후의 6년 1억1300만달러(약 1501억원), 최악의 FA 계약 2위'
미국 매체 디애슬레틱은 지난달 22일(이하 한국시간) 메이저리그(MLB) 전·현직 구단 임원, 감독, 코치, 스카우트 등 총 31명을 상대로 지난 오프시즌을 평가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최악의 FA 계약을 선정했다. 이정후(25)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6년 1억1300만달러(약 1500억원) 계약은 총 7표를 받아 2위에 올랐다.
하지만 시범경기 시작과 함께 이정후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는 중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이정후다.
1억1300만달러의 무게감
이정후는 2024시즌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6년 1억1300만달러 블록버스터급 계약을 맺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 LA다저스와 맺은 6년 3600만달러, 김하성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의 4년 보장액 2800만달러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일본 야수들도 훌쩍 넘었다. 스즈키 세이야의 5년 8500만달러, 요시다 마사타카의 5년 9000만달러, 센가 코다이의 5년 7500만달러를 모두 앞지르며 아시아 야수 역대 포스팅 최고 금액을 경신했다.
2019시즌 내셔널리그 MVP 출신이자 이번 스토브리그 FA 외야수 최대어였던 코디 벨린저도 제쳤다. 벨린저는 3년 총액 8000만달러에 시카고 컵스 잔류를 선택했다. 연평균금액에서는 이정후에게 앞섰으나 총액 규모에서는 뒤졌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에게 거액을 안긴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이정후의 정교한 콘택트 능력을 믿은 것이다.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7시즌간 통산 타율 0.340을 기록했다. 2023시즌 삼진 비율은 5.9, 스윙 스트라이크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최근 3할타자가 확연히 줄어든 메이저리그에서 희소성을 갖고 있는 교타자였다.
하지만 이 계약은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불러왔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공을 경험하지도 않은 KBO리그 출신 타자에게 샌프란시스코가 너무 많은 돈을 안겨줬다는 의견들이 줄을 이었다.
비거리 127m, 타구속도 시속 176.5km
이정후는 지난달 28일 첫 시범경기에 나섰다. 팀이 0-2로 뒤진 1회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우완투수 조지 커비를 마주했다. 커비는 빅리그 2년차였던 지난해 31경기(190.2이닝) 13승10패 평균자책점 3.35 탈삼진 172개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1.04로 활약하며 올스타에 선정된 특급 투수였다.
이정후는 볼카운트 0볼-2스트라이크에서 3구 몸쪽으로 붙은 변화구를 잡아당겨 1루수 옆을 스치는 우전 안타를 터뜨렸다. 낯선 상대였고 올스타 투수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안타를 뽑아냈다. 자신의 정교한 타격을 첫 타석부터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정후의 파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았다. 이정후는 두 번째 시범경기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잠재웠다. 이정후는 지난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1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2루타를 터뜨렸다. 0볼-2스트라이크에서 낮게 떨어지는 우완투수 라인 넬슨의 커브를 걷어올려 우익수 키를 넘긴 2루타.
기세를 탄 이정후는 0-2로 뒤진 3회초 2사 후 넬슨과 다시 맞붙었다. 유리한 볼카운트(2볼-1스트라이크)를 만든 후 4구째 시속 152.4km 패스트볼을 받아쳐 우중월 솔로포를 작렬했다.
미국 매체 야후스포츠의 메이저리그 분석가 제이크 민츠는 지난 6일 "일부는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상대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는 시범경기 초반부터 홈런을 때려냈다. 이정후의 홈런 타구 속도는 시속 176.5km였고, 그가 최소한 메이저리그 평균 정도의 파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정후의 파워를 호평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 5안타, 우려가 찬사로 바뀌었다
이정후는 홈런을 기록한 다음에도 맹타를 이어갔다. 2일 텍사스 레인저스전, 4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 5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안타를 추가했다. 5경기 연속 안타, 시범경기 데뷔 후 일주일간 나선 모든 경기에서 안타를 뽑아냈다. 마치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교타자 스즈키 이치로를 연상시키는 활약이었다.
이정후의 안타는 특별함도 갖추고 있었다. 홈런 타구를 제외하고 모두 2스트라이크 이후 안타를 생산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정후는 2023시즌 KBO리그 0볼-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타율 0.409를 기록했다. 낯선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러한 장점을 유지했다.
2스트라이크 후 대처능력이 좋을수록 삼진 비율은 낮아지고 타율은 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이정후는 시범경기 일주일간 타율 0.462, OPS(출루율+장타율) 1.302를 기록했다.
이정후의 2스트라이크 후 타격 모습에 현지 중계진도 놀랐다. 샌프란시스코와 텍사스의 맞대결을 중계한 캐스터는 이정후의 안타를 지켜본 뒤 "2스트라이크 이후의 대처 능력이 돋보인다. 인플레이 타구를 잘 만들어내는 강점이 새로운 리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며 이정후의 천재성에 찬사를 보냈다.
1억1300만달러의 거액을 받는 만큼 우려의 시선도 많이 받은 이정후. 하지만 시범경기 일주일 만에 정교함과 파워를 보여주며 자신의 평가를 칭찬일색으로 바꿨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서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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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2jch42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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