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보일라" 안전모에 꽁꽁…하루벌이 절박한 중국 '3억 농민공'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 3. 9.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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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침체에 농민공들 일자리 잃고 고향으로…
지방도시 일자리 태부족해 빈민화 심각한 문제…
양회, 1200만개 신규 일자리 대책 내놨지만 전망 어두워
(화이안 AFP=뉴스1) 강민경 기자 = 중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겪는 가운데 동부 장쑤성 화이안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인부들이 일하고 있다. 2024.1.21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화이안 AFP=뉴스1) 강민경 기자


베이징 양회(兩會) 현장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찬양의 박수소리가 우렁차지만, 지방도시 인력시장에서는 하루벌이 일자리라도 찾으려는 농민공(農民工)들의 아우성이 절박하다. 건설업 부진의 직격탄을 맞아 일자리를 잃은 농민공들이 고향으로 몰리면서 일자리 폭탄의 도화선에 다시 불이 붙는 분위기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8일 대표적 농민공 수출지역인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 새벽 인력시장 현장 상황을 보도하고 "날마다 물밀듯 밀려오고 흩어지는 수천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루 벌이로 겨우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새벽 4시 허페이시 바오허구 난페이허로와 통링교 교차로에 자발적으로 형성된 인력시장은 일자리를 찾는 농민공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일을 구한 농민공은 극소수다. 구직자를 찾는 삼륜차가 골목에 들어서자 농민공들은 다짜고짜 짐칸으로 몸을 던졌다. 가장 젊어보이는 이가 현장반장의 손가락 끝으로 낙점되자 다른 농민공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 후 해가 떴고 농민공들은 쓰레기들만 남기고 사라졌다. 무료급식이나 재활용 옷가지 등을 받으려는 소수만 남아있었다.

농민공은 사회주의 국가이자 농촌 중심 인구대국인 중국에 존재하는 독특한 근로형태다. 중국은 거주이전(호구이전)의 자유가 없다. 여행지는 물론 친척집에 방문하더라도 근처 공안(경찰)에 주숙등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중화학공업 위주 성장전략을 추진하면서 동쪽 해안 공업지역과 대도시에 일손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걸 메꾸기 위해 농민들의 도시 이주가 암묵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한 지방도시 인력시장에서 농민공들이 일용직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AP=뉴시스

농민공이 관리가 필요한 별도 계층으로 처음 존재감을 나타낸 것은 1989년 춘절로 기록된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국 기차역에 모여든 수백만명의 농민공으로 중국 주요 기차역의 운행이 동시에 마비됐다. 지금 농민공의 숫자는 당시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늘었다. 국가통계국의 2022년 집계에 따르면 전국 농민공 수는 2억9562만명. 집계되지 않은 숫자를 더하면 3억명이 넘는다.

13억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중국 인구의 약 23% 가량이 농민공이라는 얘기인데, 이 비율을 감안하면 안후이성의 농민공 비율은 놀라울 정도다. 중국의 제 7차 인구조사에 따르면 안후이성 인구는 6103만명 정도다. 그런 안후이성 출신 농민공만 1981만명에 이른다. 성 인구의 3분의 1이 농민공이다. 아이와 노인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 도시로 나가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안후이성은 현 상황의 바로미터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월 '2023 부동산 기본상황'에서 지난해 전국 부동산과 주택 개발 투자가 각각 9.6%, 9.3%씩 줄었다고 밝혔다. 새로 착공된 주택건축 면적은 20.9%나 감소했다. 건설현장 일자리를 잃은 농민공들이 고향으로 물밀듯 돌아온다. 사람은 넘쳐나고 일자리는 없다.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이들 중 상당수가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 응한 안후이성 거주 농민공 왕 모씨는 2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월세 200위안(약 3만8000원)짜리 집에 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첫주엔 사흘 간 일해 700위안(13만원)을 벌었는데 그 뒤로는 일자리가 더 없다"며 "흰머리가 보이면 채용되지 않기 때문에 안전모를 벗지 않고 외투 지퍼를 목 위까지 끌어올려 닫곤 한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 시내 한 오피스빌딩 리모델링 현장에서 현지 근로자들이 자재를 나르고 있다. 중국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주택 매매는 물론 리모델링 수요는 뚝 끊긴 상황이다. /사진=우경희

중국 건설사들은 사고 예방을 위해 50세 이상 여성, 60세 이상 남성 고용을 금지하는 등 현장근로자 연령제한을 두고 있다. 전체 농민공 중 50세 이상 숫자는 2022년 기준 전체의 29.2%에 달하는 약 8632만명으로 추정된다. 2018년에 비해 비율이 6.8%포인트 늘어났다. 고령자는 늘어나는데 아예 뽑지를 않는다. 고령 농민공들의 빈민화가 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건 이 때문이다.

농민공들의 문제는 중국 정치안정을 뒤흔들 수 있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시진핑 주석의 가장 큰 정치적 기반이 바로 농촌이다. 농촌민심이 안정된 가운데 시 주석은 반대파를 정리하며 3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농 간 소득격차 문제가 매년 과제로 지적되는 가운데 농촌 일자리부족과 빈곤문제까지 불거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국 정부는 올해 양회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 1200만개 신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세웠다. 지난해에도 전인대는 1200만개 신규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지만 지난 한 해 중국의 일자리 문제는 오히려 심각해졌고 중국 정부는 급기야 6월부터 청년실업률 발표를 중단하는 극약처방을 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했던 청년실업률은 21.3%, 전체 실업률은 5%였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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