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보다 스카웃....연봉 몇 억 더 주고, 몇 조 남기는 장사

오진영 기자 2024. 3. 9.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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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의 오랜 골칫거리인 기술·인력 유출 문제가 또 터졌다.

SK하이닉스의 전직 연구원 A씨가 경쟁업체인 마이크론의 임원으로 이직하려다 적발됐다.

업계는 국내 기술을 빼가려는 경쟁업체의 시도가 더 빈번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가 추산하는 지난해 반도체 기술유출 피해액 예상치는 수조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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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속으로]
/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반도체 업계의 오랜 골칫거리인 기술·인력 유출 문제가 또 터졌다. SK하이닉스의 전직 연구원 A씨가 경쟁업체인 마이크론의 임원으로 이직하려다 적발됐다. 마이크론은 차세대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각축전을 벌이는 최대 경쟁자다. A씨는 4세대 HBM3 개발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한 전문가로, 업계는 이직 과정에서 기술과 노하우가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국내 기술을 빼가려는 경쟁업체의 시도가 더 빈번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 유출의 형태도 변화했다. 비밀을 캐내기 위해 잠입하거나, 정보망에 침입하는 것은 과거의 방식이다. 회사가 이직·퇴직에 개입하기 힘들다는 점을 노려 전·현직 임직원을 거액을 주고 영입한다. 핵심 연구진이나 공정 책임자를 데려오면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반도체 기술유출의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경쟁 기업이 제시하는 금액이 점점 커져서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대만 등지의 경쟁 기업이 국내 종사자에게 제안하는 영입 금액은 수년 전보다 2배 이상 많다. 데려가는 쪽은 수백억~수천억원이 필요한 공정 개발 대신, 인재 영입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퇴사자 관리도 문제다. 통상 퇴직자들은 2~3년간 동종 업계 근무를 금지하는 약정을 체결하는데, 감시에 한계가 있다. A씨도 SK하이닉스와 2년간 경쟁업체에 취업하지 않겠다는 약정서를 썼지만 마이크론으로 옮겼다. 업계 관계자는 "약정서는 사실상 '직업 윤리를 지켜달라'는 권고에 가깝다"며 "약정 위반 여부를 24시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피해 기업이 전직 금지 가처분을 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직금지 기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면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경우도 잦다. 승소율도 낮다. 특허청이 집계한 특허·영업비밀 관련 소송의 승소율은 7.5~7.7% 수준으로, 일반 민사소송(54.8%)의 8분의 1이다.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더라도 처벌하지 않거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유혹은 느는데 솜방망이 처벌은 계속되다 보니 유출 피해는 더 커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 등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20년간 발생한 기술유출의 피해 규모는 100조원 정도다. 이 중 상당수가 반도체 업종이다. 지난해 적발된 기술유출 23건 중 15건(65%)이 반도체 관련 기술유출이었다. 업계가 추산하는 지난해 반도체 기술유출 피해액 예상치는 수조원이 넘는다.

업계는 당분간 국내 반도체 업계 종사자를 노린 이직 제의가 잇따를 것으로 내다본다. 한 반도체 기업 핵심 관계자는 "정부와 사법기관이 양형기준을 정비하고 적극 수사에 나서고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퇴직자의 정보 파악이 어렵다"며 "강력한 법적 제재 등 대책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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