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자연을 초대한 거장…물 위와 언덕, 그 여백에 스민 [ESC]
일본 홋카이도 ‘건축 여행’
“생각의 자유” 강조한 안도 다다오
냇물 끌어와 ‘물 위의 교회’ 짓고
대형불상은 지붕 없는 곳에 안치
“지역 주민들이 의지할 곳이기를”
일본 출신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예술가다. 1995년에 독학으로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됐다. 1941년생인 그는 17살에 권투를 시작했지만, 당시 일본 권투계의 스타 하라다 마사히코의 뛰어난 역량을 보고 꿈을 접는다. 고교 졸업 뒤 작은 가게 인테리어 설계 등을 맡아 생계를 잇던 그는 현대건축의 기초를 다진 르코르뷔지에(1887~1965)의 작품집을 보고 감동한다. 르코르뷔지에를 샅샅이 연구하고 엄청난 양의 독서와 세계여행을 통해 실력을 닦은 그는 1969년 ‘안도 다다오 건축 연구소’를 차려 건축가의 길을 걷는다.
그는 한국에도 팬이 많다. 지난해 4월 강원 원주 ‘뮤지엄 산’ 개관 10돌 기획전 ‘안도 다다오-청춘’에는 수십만명의 관람객이 몰려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 그해 7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강연회는 2000석이 넘는 좌석이 모두 매진될 정도로 성황이었다. ‘뮤지엄 산’, 제주 ‘본태미술관’과 ‘글라스 하우스’, 서울 강서구 엘지(LG)아트센터 등이 그가 빚은 건축물이다.
컬러가 지배하는 세상에 ‘흑백 신전’
‘건축 투어’는 요즘 주목받는 여행 장르다. ‘안도 다다오 건축 여행’만한 게 없다. 더구나 일본에서 하는 여행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일본 북쪽 홋카이도에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물의 교회’와 ‘부처의 언덕’이 있다. 일본 정부 관광국 자료를 보면, 홋카이도는 지난해 12월 한달간 방문한 한국인 수가 6만1000명에 이르는 인기 여행지다. 설경과 라벤더 풍광 등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여행에서 하루 이틀은 ‘안도 다다오’에게 할애해도 좋을 터. 지난달 21일부터 2일간 홋카이도에서 안도 다다오 건축을 만났다.
홋카이도 신치토세공항에서 차로 약 1시간30분, 아사이카와공항에서는 약 2시간 거리에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가 있다.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서는 약 2시간 거리다.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에 안도가 1988년 9월 완공한 ‘물의 교회’가 있다. 안도는 상상을 실제 건축물로 구현해내는 데 탁월하다. 그는 자서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생각의 자유를 잃지 않는 것”을 중시한다고 했다. ‘물의 교회’는 그런 철학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1980년대 중반 고베 롯코산 위에 교회를 지은 그는 ‘물 위에도 교회를 지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면과 모형 등을 제작해 1987년 봄 건축전람회에 전시했더니 뜻밖에 행운이 찾아왔다. ‘알파 리조트 토마무’(호시노 리조트 토마무의 옛 이름) 당시 대표가 이 전시를 보고 대뜸 “내 땅에 짓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다. 대표와 함께 지금의 ‘물의 교회’ 터로 간 그는 인근에 냇물을 발견하고, 그 물을 끌어와 인공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교회를 지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의 교회’ 탄생사다.
지난달 21일 저녁 8시30분과 다음날 낮 2시께 ‘물의 교회’를 방문했다. 대지면적 6730㎡, 건축면적 344.94㎡, 연면적 520.04㎡ 규모. 엘(L)자형 콘크리트 담과 자작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물의 교회’는 구조물 두개가 겹쳐져 지어진 꼴이다. 이 구조물 앞에 인공 연못이 펼쳐져 있는데, 수심 15㎝에 박은 십자가가 물 위로 드러나 있다. 옥상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4개의 십자가가 마주 보며 신을 향해 인간의 행복한 삶을 기원한다.
둥글게 휘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예배당에 도착했다. 100여명 앉을 만한 나무 의자가 보였다. 예배당 전면은 가로·세로 각각 15m인 개방형 유리문으로 돼 있다. 겨울에만 열지 않는다. 유리문 밖에는 어둠을 친구 삼은 십자가와 자작나무 숲이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컬러’가 지배하는 세상에 ‘흑백 신전’을 세운 듯했다. 움직일 때마다 연못 위 십자가와 유리문 가운데 설치한 십자 모양의 틀이 겹치는 듯하다가 어긋나며 여행객의 눈을 유혹한다.
‘물의 교회’ 낮 풍경은 달랐다. 궁금했던 연못은 볼 수가 없었다. 꽝꽝 언 연못에는 하얀 설탕 같은 눈이 덮여 있었다. 안도 건축의 핵심이 곳곳에 드러났다. 회색빛 ‘노출 콘크리트’의 지나치리만큼 풍성한 절제미와 기하학적인 구조 등이 눈을 사로잡았다. 벽과 벽을 어긋나게 구성해 생긴 틈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빛이 들이치고 어둠이 깔리다가 해 질 녘 황혼 색으로 물든다. 자연이 건축물 안으로 스며든다. 자연경관을 건축 속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은 그가 구사하는 대표적인 건축 기법이다.
‘빛의 교회’(오사카), ‘바람의 교회’(효고)와 함께 안도 다다오 교회 3부작인 ‘물의 교회’ 내부 관람 시간은 저녁 8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낮에는 예식장으로 활용된다. 관람 시간은 15분. 입장료는 없다. 교회 맞은편 둔덕에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신치토세공항역에서 토마무역에서 하차해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부처의 언덕’ 13.5m 두대불상
안도가 지은 건축물 목록에 교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1년에 그가 완공한 ‘물의 절’(오사카 아와지시마섬)은 연꽃이 핀 연못 아래 법당을 지어 높게 평가받은 건축물이다. ‘물의 절’과 함께 자주 회자되는 ‘부처의 언덕’도 그가 지었다. 삿포로에서 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지난달 21일 오전 9시30분께 삿포로 시내를 빠져나온 차는 눈 덮인 도로를 달렸다. 이윽고 도착한 ‘마코마나이 다키노 묘원’. 이곳에 ‘부처의 언덕’이 있다. ‘마코마나이 다키노 묘원’은 홋카이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추모공원이다. 죽음과 맞닿은 곳에 인간을 형상화한 부처가 있다. 정문에선 한줄로 도열한 모아이 석상 20여좌가 제일 먼저 반긴다. 성인 남자 키 2~3배는 돼 보이는 석상 앞에는 중국 등에서 온 여행객들이 몰려있었다. 바람이 휘릭 스치고 갈 때면 석상 위 쌓인 눈이 후드득 떨어졌다. 석상처럼 생경한 조형물이 곳곳에 있었다.
‘부처의 언덕’은 묘원이 개장 30돌을 맞아 안도에게 의뢰해 2010년대 중반에 완공된 건축물이다. 거대한 ‘부처의 언덕’ 안쪽 통로를 지나면 두대불상(아타마 다이부쓰)이 위용을 자랑한다. 13.5m 높이에 1500t 무게로 거대하다. 돌 4000t을 고르고 골라 가공해 만들었다고 한다. 불상 머리 위 지붕은 가위로 둥글게 오려낸 것처럼 뚫려 있다. 빛과 구름과 별과 바람이 교대로 그 뚫린 공간을 채운다. 밖에서 보면 불상 머리가 언덕 중간에 튀어나와 있는 꼴이다. 겨울에는 눈 때문에 순백색이지만, 여름이 되면 라벤더로 진풍경을 연출한다. 4월부터 10월까지 묘원 관람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 11월부터 3월까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두대불상 관람 시간은 4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11월부터 3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마코마나이역에서 하차해 묘원행 버스에 오르면 된다. 20여분 걸린다.
안도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불교건축 철학을 밝혔다. “권위적인 대형 지붕이라는 전통적 이미지에 연연하며 여러 종파 규범을 따르기보다 지역 주민들에게 특별한 성역, 마음의 의지처로 오래 계승될 곳”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부처의 언덕’이야말로 그의 철학이 녹아든 건축이다. 자신의 삶도 술회했다. 고졸인 그는 학벌 사회 일본에서 “늘 역경 속에 있었고, 그 역경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를 궁리하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라고 했다. 암 투병으로 장기를 5개나 절제한 그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필사적인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의 건축 상징인 ’쏟아지는 빛’처럼 그는 환하고 밝다. 그의 건축 여행이 감동을 주는 이유다.
※참고문헌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안그라픽스)
홋카이도/박미향 기자 mh@hani.co.kr
보드라운 눈밭에 실내 파도풀까지
‘물의 교회’ 있는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
안도 다다오 건축물 ‘물의 교회’가 있는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는 어떤 곳일까. 해발 1239m 도마무산을 끼고 있는 리조트는 이른바 ‘파우더 스노 리조트’로 유명한 곳이다. ‘파우더 스노’는 파우더 같은 눈가루를 말한다. 신치토세공항과 아사히카와공항, 오비히로 공항에서 차로 90분에서 2시간 안팎 거리에 있다. 요즘 한국 스키 마니아들과 가족 여행자들 사이에서 힙한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숙박시설 이외에 다양한 놀 거리와 맛집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너른 평야에 삐죽하게 세워진 4개의 건물이 중심이다. 평형과 예약 시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때를 잘 맞추면 더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고급·초급자용 스키장까지 합쳐 25개 스키 코스를 갖춘 이곳에는 ‘아이스 빌리지’가 있다. 9개의 얼음으로 만든 작은 돔에서 ‘얼음 칵테일’과 ‘불멍’ 등을 즐길 수 있다. 의자와 탁자 모두 얼음으로 만들었다. 12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만 연다.
곤돌라를 타고 20여분 ‘무빙 테라스’ 존에 오르면 ‘운카이 클라우드 바’와 ‘운카이 테라스 클라우드 워크’ 등의 시설을 만난다. 고도 1088m에 있는 클라우드 바에는 성인 키 두배 높이의 철제 의자가 설치돼있어 이 지역 설경과 구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클라우드 워크는 구름 모양으로 돼 있는 57m의 걷기 좋은 철제 데크다. 무빙 테라스 존에는 ‘클라우드 카페’도 있다. 구름 모양의 우유 아이스크림, 마카롱, 커피 등을 판다. 리조트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생산하는 우유를 재료로 쓴다. 눈밭을 달리는 승마체험, 바나나 보트 체험, 썰매 타기 등 놀 거리도 있다. 눈밭을 달리는 바나나 보트에 ‘파우더 스노’가 달려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천장이 온통 유리로 구성된, 일본 최대 규모의 실내 파도 풀 ‘미나미나 비치’도 있다. 아이들과 부모가 언 몸을 녹이며 놀 수 있다.
‘호타루 스트리트’는 12개의 맛집 천국이다. 특히 뷔페 레스토랑 ‘할’은 인기가 많다. 신선한 제철 가리비 관자와 대게가 산처럼 쌓여 있다. 지난달 22일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요리사 김정재(30)씨는 “재료들이 신선하다”고 자랑했다. 리조트는 오는 4월 한달간 문을 닫는다. 하지만 리조트 직원은 “봄·여름에도 풍광이 색달라서 찾는 이가 많고, 겨울 시즌 예약을 지금 하는 이도 많다. 미리 하면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국어를 하는 직원이나 한국인 직원이 있고 최근 한국인 방문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누가 와요?” 이종섭 도망친 출국장엔 아이돌 팬 함성만 [포토]
- 금감원 “홍콩 ELS 불완전 판매…투자손실 20∼60% 배상”
- 이강인 불렀다…황선홍 “팀 문제 운동장에서 푸는 게 제일 좋아”
- 승부처 수도권 “정부 심판” 53% “정부 지원” 41%
- “이마트 주가·경영 나락인데…정용진, 회장 승진이라니”
- [단독] 쿠팡이츠 배달완료 뒤 ‘아묻따’ 환불…점주들 ‘발칵’
- ‘오펜하이머’ 아카데미 작품·감독상…7개 부문 석권
- 14차례 주가 반토막 났던 엔비디아, 지금 사도 돼?
- ‘전공의 블랙리스트 의협 지시’ 의혹에…온라인 커뮤니티 압수수색
- 윤 대통령 19번째 ‘관권토론회’는 강원도…“올해 내내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