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돼지뼈 묻고 아내 죽었다며 보험금 청구
1933년 5월 경성 관훈동에 사는 55세 남자 송옹섭이 아내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든 뒤 아내가 죽었다며 보험금 5000원을 청구했다.아내와 짜고 한 짓이었다. 송씨는 허위 사망 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장사까지 치렀다. ‘종로 6정목 장의사로부터 관을 사가지고 동대문 밖 김모방으로부터 도야지뼈 1원50전어치를 사들여 담요에 싸가지고는 이것을 관속에 넣고 못을 친 후에 이것을 방안에 안치하고는 그날밤은 권솔(식구)수대로 도야지뼈 든 관 앞에서 통야(通夜·밤을 지새움)까지 한 후 그 이튿날은 동소문 밖 미아리 화장터에 운상(?)하여다가 화장까지 하였다.’(조선일보 1933년6월26일)
이 남자는 보험회사(安田생명보험사)에 즉각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나름 의심을 품고 조사를 폈던 듯하다. 그러다 아내를 독살했다는 소문까지 나자 경찰이 개입했다. 경찰의 ‘엄중취조’에 범행을 자백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기사 제목은 ‘보험금 사취, 넌센스 범죄’였다.
◇'문명이 낳은 범죄’
100년 전 신문에는 ‘보험 사기’가 종종 등장한다. 화재보험이나 생명보험 사기가 잦았던 듯하다. ‘평양남도 용강군 지운면 진지동에서는 자동차 운전수 임영걸(26)은 김진광과 김덕한이라는 사람과 공동 경영으로 신흥상회란 상점을 경영하여 왔으나 근자에 업적이 좋지 못하고 달리 구정도 없음으로 보험금을 사기할 목적으로 작년 12월1일에 상점과 자기 자동차 등을 걸고 대정(大正)화재 보험회사에 3000원에 가입하고 금년 1월4일 새벽3시경 자동차고에 방화하야 차고를 태우고 근처 현능현의 집까지 태웠었는데 그간 범죄 사실이 발각되어…,’(‘보험금 먹고저 自家에 방화’, 조선일보 1931년 1월17일)
보험 가입 한달만에 화재사고가 났으니 보험회사와 경찰이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탄로날 게 뻔한 일인데도 보험금이 탐났던지 쇠고랑을 차는 자충수를 택했다. 당시 신문은 보험 사기를 ‘문명이 낳은 범죄’로 불렀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근대 보험제도를 악용해 이득을 취하는 사기였기 때문이다.
◇'富豪 아내 급사사건’
병약한 환자 대신 건강한 사람을 대리로 진단받게 하고 생명보험에 가입해 환자가 사망한 뒤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피의자 최종수는 그의 아내 오동복(41)이 연래로 위장병이 있던 중에 지난 8월에 그 장남이 병으로 죽은 후에 밤낮으로 번민속에 잠겨 있어서 그 역명(曆命·목숨)이 길지 못한 것을 짐작하고 시내 영락정 복덕생명보험회사 경성지부 권유원인 시외 아현리에 사는 박석배와 의논하고, 보험금 5000원에 전기 복덕생명보험회사에 오동복을 가입시키기로 하고…’(조선일보 1933년12월26일)
1933년 경성 익선동에 사는 최종수는 보험모집인 박석배와 짜고 병약한 아내를 보험에 가입시켰다. 박석배는 최종수 아내 대신 건강한 자기 처형을 대신 진단받게 하고 5000원짜리 생명보험에 가입시켰다. 보험금 일부를 나누기로 공모했을 것이다.
경찰은 먼저 박석배와 그의 처형을 체포해 범행을 자백받고 최종수도 범행을 인정했다. 최종수는 재산이 꽤 있는 집안이었던 듯한데, 보험 사기에 가담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기사엔 ‘부호 처(富豪 妻) 급사(急死)사건, 보험금 사기로 판명’이란 제목이 달렸다. 부자도 ‘보험 사기’에 뛰어들고 보험회사 직원까지 공모할 만큼 생명보험금을 ‘눈 먼 돈’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신의주에서도 흙으로 만든 인형에 옷을 입혀 관에 넣어 묻은 뒤, 사람이 죽었다며 보험료를 청구한 사건이 있었다.(‘흙으로 만든 인형에 메리야쓰를 입혀’, 조선일보 1934년10월30일)
◇보험금 노린 親父 청부살인까지
보험금을 노린 살인까지 발생했다. ‘패륜의 保險魔! 김인우에 사형구형’(조선일보 1936년 7월5일) 보험금을 노리고 친형, 아내, 장모 셋을 죽이고 장인까지 죽이려다 검거된 희대의 ‘패륜적 보험마’가 사형 구형을 받았다는 보도였다. 일주일뒤 김인우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는 속보가 실렸다.
1929년 7월엔 평양 외율리면장을 지낸 지방유지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밤중에 검은 보자기를 쓴 괴한이 방에 들어와 식칼로 가슴과 온몸을 난자한 뒤 달아나버렸는데, 범인은 3년 넘도록 오리무중이었다. 1933년11월 피살자의 장남이 보험금을 노리고 청부살인을 시도한 혐의로 취조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의문의 살인사건 참살범인은 實子?, 조선일보 1932년11월29일)
이 사건은 1935년 4월 최종심에서 사형판결이 나올 때까지 공판 상황이 지상중계됐다. ‘패륜 범죄’에 대한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한 장남이 아버지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아버지의 생명 보험금 2만원과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요지였다.
◇'지능범 보험광(狂)’
멀쩡한 사람을 사망자로 속이거나 살인까지 해서 보험료를 노리는 보험사기는 20세기 들어 이 땅에 등장한 신종 범죄였다. 당시 신문은 보험 사기를 ‘문명이 낳은 범죄’라고 불렀다. ‘지능범 보험광(狂)’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들어온 보험사기 범죄 적발금액이 2023년 1조1000억원을 넘었다는 금융감독원 발표가 나왔다. 절반(5476억원)이 자동차 보험사기다. 자가용이나 렌터카를 이용, 진로 변경차량이나 교차로 진입 차량에 고의로 사고를 유발해 보험금을 가로채는 식이다. 해마다 이런 범죄는 증가추세인데다 20~30대 젊은이들이 많이 뛰어든다고 한다.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지 오래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인 국가로만 따지면 7위(2022년 기준)다. 그런데도 이런 보험 사기범죄는 끊임없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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