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우고 ‘나답게’ 가꾸는 5060 남성들
기대수명이 늘고 사회활동 연령이 높아지면서 지금의 5060 중년은 과거의 중년과는 달라졌다. 우리는 그들을 ‘신중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신중년의 개념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 교수 버니스 뉴가튼은 ‘능동적 시니어(Active senior)’ ‘젊은 노인(Young Old)’이라는 새로운 중장년의 개념을 정립했다. 이들은 젊은 시절 비축된 재원과 빠른 정보 수집 능력을 바탕으로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활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녔다. 활력 넘치는 라이프를 위한 외모 관리도 이들의 특징 중 하나다. 신중년의 외형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선거철을 맞아 한껏 기운찬 외모로 단장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중년 정치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쉽다.
자기관리가 삶의 질을 높인다
모 건설사의 임원으로 재직했던 건축가 박윤섭씨(64)는 퇴직 후 2019년 개인 건축설계 사무실을 열었다. 그것이 인생 2막이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헛헛했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그 당시 건축 경기가 좋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많았어요. 그러다 오랜 꿈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죠. 젊은 시절부터 ‘체격이 좋다’는 말을 종종 들었기에 ‘신체 조건을 한번 활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바로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했습니다.”
그는 패션쇼 런웨이부터 화보, 광고, 드라마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시니어 모델로 활동 중이다. 얼마 전에는 가수 코드쿤스트의 ‘꽃(flower)’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MZ세대에게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시니어 모델이 되고 자기관리에 힘쓰다 보니 건강도 따라왔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대표 신중년 박윤섭씨는 경쾌하게 런웨이를 누비듯 인생 2막을 걷는 중이다.
관리할 결심!
그렇게
인생 2막
런웨이에 섰다
“평소 의지가 약한 편인데 모델을 하게 되면서 일처럼 일주일에 2~3번씩 헬스장에 가야 했죠. 이게 건강관리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다른 관리라면, 햇빛이 강한 날에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발라요. 또 헤어와 수염은 제 트레이드마크라 정기적으로 단골 바버숍에서 케어를 받아요.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젊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외모를 가꾸는 남성을 ‘기생오라비’라 비하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자기관리에 적극적인 남성 그루밍족이 늘고 있다. ‘그루밍’이란 동물 세계 수컷이 짝짓기에 유리하도록 자신을 치장하는 행동이다. 퍼스널브랜딩그룹 YHMG 윤혜미 대표는 “중세시대 남성은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 하이힐과 화려한 모자를 착용했다. 과거 남성의 특권이었던 그루밍을 오랜 시간 여성에게 빼앗겼다. 이제 다시 남성이 가져갈 차례”라고 말한다.
신중년, 성형도 주체적으로
20·30대가 주 소비층이던 성형외과에서도 중년 환자가 새로운 고객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성형외과 전문병원마다 ‘중년 동안 케어’ 카테고리를 신설하며 경제력을 갖춘 그들에게 ‘10년 더 젊어질 수 있다’면서 손짓을 보내고 있다.
평생 공직에 몸담았던 한모씨(70)는 은퇴 후 큰 결심을 했다. 사기업 임원으로 가게 되면서 오랜 콤플렉스였던 눈 밑 지방 재배치와 안검하수(눈꺼풀처짐) 수술을 받았다. 한층 또렷해진 눈가로 젊어진 외모에 새로운 일터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단다.
“요즘 외모 좀 가꾸는 중년 남성 사이에서 은퇴 후 성형수술이 유행이에요. 제2의 인생의 시작점에서 ‘한바탕’하고 새 삶을 출발하시는 거죠.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60대 정도로 봐서 자연스레 일에 대한 활력도 생기는 것 같아요.”
문경민 원장(쥬얼리 성형외과)은 “과거 성형을 원하는 생애 기점을 ‘예비대학생’ ‘취업 전’ ‘결혼 적령기’로 분류했다면 지금은 한 세대가 더 추가됐다”고 말한다. 바로 중년이다. 그는 “눈꺼풀이 처지는 기능적인 부분을 보완하는 안검하수 수술을 받는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70대 환자가 눈에 진물이 나 차마 견딜 수 없을 때 방문했지만 요즘은 40대 중후반에 미리미리 신경 쓰는 이들이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시술에 관한 중년 남성들의 요구도 상세해졌다. 과거에는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알아서 해달라” 했던 그들이 이제는 참고 사진을 지참하거나 자신의 콤플렉스를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상담에 임한다.
“과거 성형수술은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중년이 미디어 속 동년배 연예인이나 중장년 정치인이 성형한 모습을 접하다 보니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심리적 변화가 온 거죠. 게다가 요즘 60대면 노령인구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니까 외모에도 신경 쓰게 됩니다.”
주의할 점은 있다. 얼굴 주름과 처짐을 없애는 안면 거상술(얼굴 전체의 주름을 개선하기 위해 얼굴 피부를 귀 뒤쪽으로 당기는 성형술)의 경우 얼굴 운동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정교함을 요하는 수술이라 숙련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또한 수술했다고 노화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운동,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금주, 금연은 ‘동안’을 유지하는 불멸의 진리다.
요즘 많이 하는 모발이식 수술도 마찬가지다. 머리카락을 심었다고 끝이 아니다. 모낭을 공격하는 DHT호르몬(다이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호르몬을 변화시키는 탈모약을 꾸준히 먹어야 시술 이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수술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관리는 꾸준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중년은 뚜껑 싸움? 털과의 전쟁
시니어 모델 박윤섭씨가 평소 관리에 많은 공을 들이는 부분을 ‘머리숱과 수염’이라 언급한 것처럼 중년의 자기관리는 털 관리에서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인이자 영화감독인 장항준씨도 말했다. “중년 이후 남자는 뚜껑 싸움”이라고.
‘인류를 위해 탈모 난제를 해결하는 과학자는 노벨 의학상감’이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탈모 관련 연구는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탈모의 마지막 보루라고 칭하는 가발 제작 업체도 1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유튜브 채널 ‘털UP’의 최윅씨의 체감 데이터다. 그도 17년 차 탈모인이다. 탈모는 심리적 우울감을 동반한다.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면서 불안, 초조감 등을 경험하고 이런 우울 상태가 높을수록 사회생활의 만족도는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간 1300여명의 탈모 고민을 상담해온 최씨는 “대부분의 중년 탈모 환자들은 털이 빠지는 증상 자체보다 심리적 위축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고 말한다. 탈모약, 치료, 모발이식 등이 신통치 않았던 이들에게 그는 가발을 권한다. “요즘 가발은 가볍고 티가 별로 나지 않아요. 바람이 불어 날아갈까 걱정되시나요? 저 가발 쓰고 스카이다이빙까지 해봤는데 끄떡없더라고요.”
당신의
겉보기 나이
‘뚜껑’이
결정한다
탈모 인구가 증가하면서 가발 관련 콘텐츠도 늘고 있다. 특히 유명인이 착용하는 ‘감쪽같은 가발’은 주요 관심사가 된다. 최근 최씨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모 정치인의 ‘너무 풍성해서 되레 인위적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의 진위다.
“제가 근거리에서 직접 본 적이 없어 단언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가발이든 아니든, 그분의 헤어스타일은 커팅(Cutting)이 잘못된 것 같아요. 만약 가발이라면 지금보다 숱을 과감하게 많이 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티가 안 나거든요.”
그는 중년 남성들에게 가발을 쓰더라도 머리를 완전히 밀고 접착제로 가발을 두피에 붙이는 ‘전체 가발’만은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전체 가발을 하면 2주마다 한 번씩 업체에 가서 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일부 업체가 3만원에서 5만원 상당의 관리비를 받기 위해 전체 가발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비용뿐 아니라 전체 가발이 두피에 심각한 자극과 손상을 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가발 업체를 방문하실 경우 가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꼼꼼하게 알아보고 가세요.”
또 하나의 털 관리, 인상을 또렷하게 해주는 눈썹 문신도 중년 남성의 대표 그루밍이다. 1시간 내로 비교적 간단하게 받을 수 있고 시간과 비용 대비 쏠쏠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들도 단골이라는 서울 강남의 한 브로숍은 “전체 고객의 20%가 중년 남성”이라고 밝힌다.
업체 측은 “눈썹 문신 하면 떠오르는 진한 짱구 눈썹의 시대는 지났다. 업체마다 자연스러움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과거 아내나 딸의 손에 이끌려 왔다면 요즘은 ‘리터칭할 때가 됐다’며 시기에 맞춰 혼자 오는 중년 남성 고객이 늘고 있다”고 전한다.
전양진 명지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연구 자료를 통해 “신중년의 외모가 전반적인 삶의 질에 유의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그는 50~70세 미만 전국 남녀 430명을 대상으로 삶의 질에 외모와 여가활동이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일상생활에서 외모 관리가 중요하다’ ‘외모는 내가 누구인지를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의견에 응답자의 70.1%가 ‘그렇다’고 동의했다.
전 교수는 “노년기 삶의 신체적 노화는 개선되기 어렵지만 외모 관리와 신체적 여가활동 참여를 통해 심리적, 사회적 외모 만족감을 증진할 수 있다”며 “노인층 삶의 질을 위해 외모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주민센터나 노인복지관 지자체 정책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 윤혜미 대표가 말하는 중년 그루밍 ‘이것만은 안 됩니다’
1. 짱구 눈썹은 못 말려
가끔 짱구 눈썹으로 다니는 중년 남성을 목격한다. 눈썹 문신을 하려면 자신이 원하는 눈썹 모양이 무엇인지, 어떤 이미지 효과를 줄 수 있는지 철저히 공부하고 자연스러운 시술법을 찾아야 한다.
2. 골프장 ‘알록달록룩’은 그만
일부 중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웨어 브랜드 의류를 풀 세팅으로 사서 지나치게 ‘원색’적으로 입는 경향이 있다. 골프장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모노톤이나 톤온톤 의상을 입는 것이 훨씬 감각 있어 보인다.
3. 사무실에서 등산복도 그만
어울림 여부를 떠나 근무지 TPO(의복을 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착용하는 것)에 어긋나는 일이다. 비즈니스 캐주얼룩이란 ‘하의는 자유롭지만 상의는 어깨 각이 살아 있는 재킷을 걸치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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