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조국을 호주대사로 보냈다면, '검사 윤석열'은 어떤 반응 보였을까?
이건 아주 간단한 문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출국금지하고 수사하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 금지를 해제해 줬다면, '정의로운 검사' 윤석열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다. 해병대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출국 금지'를 당하고도 유유히 호주로 떠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사 임명장을 받고 외교관 여권을 지참한 채로. 애초에 출국 금지 같은 건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 것처럼. 심지어 일국의 법무부장관이 "개인적인 용무나 도주가 아니라 공적 업무를 수행하러 간다고 봤다"며 친절하게 항변해 준다. 한국을 대표하러 떠날 외교관의 '도주' 여부가 화제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국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일이다.
일반 동료 시민들은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하면 벌벌 떤다. 자녀들은 '왜 우린 해외에 갈 수 없는거냐'라고 아빠, 혹은 엄마에게 묻는다. 출국 금지 조치를 하는 과정도 엄격하다. '별장 성접대' 사건의 김학의를 긴급출국금지한 법무부 관리와 검사들이 '절차 미비'로 줄줄이 엮여 재판정에 서는 치욕까지 겪었다. 인신을 제한하는 출국 금지는 함부로 아무나에게 조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 출국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면 그만큼 중대한 사유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공용서류 무효 혐의를 받고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자체가,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이 해병대 수사단(박정훈 단장)의 '임성근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조사 결과를 최종 결재한 뒤 하루 만에 뒤집고 언론 브리핑 취소,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공수처는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지난해 이 전 장관이 언론브리핑 취소를 지시하기 직전, 가입자명 '대통령실'의 일반전화를 받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지난 지난해 8월 공개한 진술서를 통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브이아이피(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수사 독립성'을 무기로 '스타 검사-대통령'이 된 윤 대통령이, '수사 독립성'을 침해했을 수 있다는 중대한 의혹이다. 그리고 그 핵심 피의자는 이종섭 전 장관이다. 법무부령에 규정된 출국금지 대상자는 "범죄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거나 "출국 시 국가안보 또는 외교관계를 현저하게 해칠 염려가 있다고 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사람"이다.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고"있어서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한 사람이, 국가를 대표해 외국으로 파견된다면 그건 '외교관계를 현저히 해칠 염려'가 있는 자가 되는 것 아닌가? 출국 금지된 자에게 외교관 신분을 부여해 출국시키는 것은 일종의 권력 남용이다. 이종섭 전 장관의 주장대로 스스로 무고하다면, 법정에서 무죄를 밝힌 후 호주 대사든 미국 대사든 가면 되는 일이다.
따지고보면 국방부장관 교체가 발표된 지난해 9월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 없는 호주 대사 임명까지 뭔가 짜여진 각본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야당은 이 전 장관 탄핵 소추를 추진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을 전격 교체했다. 국방 전문가인 김종대 전 의원은 국방부장관 교체가 발표된 지난해 9월 13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특검 수사가 지금 고발이 되어 가지고 곧 진행될 걸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만일 이종섭 장관한테 중동이나 아프리카 대사 자리나 문화원장 자리 줘서 내보내 버리면 완전히 이거는 정면으로 의혹에 대해서 은폐 내지는 꼬리 자르기거든요. 또 설령 그런 일 없이 민간인 신분으로 있다 하더라도 용산이나 국방부에서 나름대로 여기서 또 외압이나 개입이 있다면 그러면 민간인 신분이면서 수사를 회피할 수도 있는 거고. 이런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의혹의 대상자가 가장 진상규명이 필요한 시기에 물러났다. 이 점에서는 무언가 좀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김종대 전 의원이 틀렸다. 중동이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호주였다. 하지만 그걸 빼면 이 엉성한 시나리오가 놀랍게도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격'도 맞지 않다. 현재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주한 호주 대사관의 제프 로빈슨 대사는 부임하기 전 '차관보'(Assistant Secretary)가 최종 경력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한국은 호주 주재 대사로 '차관급'도 아니고 '장관급'을 보내는 셈이다. 현직인 김완중 호주 대사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1급) 출신이다. 그 자리는 정말 '전 국방부장관'에게 적격인 자리인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둘까.
대통령실은 공수처가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직업 외교관이 아니라 특임공관장으로 가는 이종섭 호주 대사 인사 검증은 법무부의 업무이고, 이종섭 피의자에 대한 출국 금지도 법무부의 업무다. 김학의 출국 금지 땐 디테일한 절차를 꼼꼼히 검증했던 유능한 법무부가 갑자기 능력을 상실한 바보가 됐다면 누가 믿겠는가.
법치와 공정을 추구한다는 검사들이 잡은 정권에서 3류 조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시나리오가 들어맞고 있다. 출국 금지된 자가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가 되어 유유히 공항에서 떠난다는 식의 설정을 하면 작가가 현실 감각이 없다고 욕을 먹을 일이다. 희한한 일들은 더 있다.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인사들인 신범철 국방차관과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은 각각 국민의힘 충남 천안갑, 경북 영주‧영양‧봉화에 단수공천을 받았다.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은 국방대 총장으로 영전했다. '고발사주' 사건도 그렇다. 최근에 유죄 판결을 받은 손준성 검사는 기소된 상태에서도 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행해지는 이유가 뭘까. 검찰총장의 리더십은 '암막의 리더십'이다. 서초동의 폐쇄적 구조는 검찰총장이 '검사동일체'의 정점에서 감시자의 눈에 노출되지 않은 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서초동을 벗어나 용산에 들어오면 얘기가 다르다. 대통령직은 '투명한 리더십'을 요구받는다. '검찰총장의 리더십'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을 수행하면 온갖 무리수가 투명한 시스템에 의해 적나라하게 '동료 시민들'에게 노출된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벌어져 공수처를 허수아비 기관으로 만들었는데, 전국 2000명의 검사들은 단 한명도 문제 의식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인가? 검찰의 일이 아니라서인가? 문재인 정부 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최근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그에 비례해 대통령은 더 과감해지고 있으며, 국가 시스템은 한없이 무뎌지고 있다. 이런 건 '오만(Hubris)'의 징조다. 그것은 보통 역풍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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