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 레전드 열전] 소생 확률 2% 뚫고 일어선 '영록바'... 또 다른 기적 꿈꾸다
촉망받던 국가대표 공격수
2011년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지고도 기적 회생
지난해엔 낙상사고로 2시간 30분 재건수술
지도자 꿈꾸며 묵묵히 재활 중인 '기적의 아이콘'
편집자주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스포츠 스타들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찍어낸 전설들의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과 현재의 삶을 조명하고 은퇴 후 제2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만의 건강 관리법 등을 함께 들어봅니다.
‘불행 중 다행’ ‘불운 속 기적’. 상투적이지만 2011년 5월 8일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다. 당시 대구FC와 K리그 경기를 펼치고 있던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 신영록(당시 24세)은 경기종료 직전 슈팅을 날린 후 그라운드 위에 쓰러졌다. 부정맥으로 인한 급성심장마비였다. 촉망받던 국가대표 공격수에게 찾아온 불행이었다.
다행히 여러 도움과 기적이 맞물렸다. 상대팀 수비수 안재훈(부산교통공사)이 즉시 신영록의 기도를 확보했고, 구단 의료진이 재빨리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이날 경기가 제주월드컵경기장이 아닌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것도 천운이었다. 당시 제주에서 심장병 관련 대처능력이 가장 뛰어난 의료기관은 제주한라병원이었는데, 제주종합경기장과는 약 3㎞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약 44㎞가 떨어져 있는 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렸다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 덕분에 7분 만에 병원으로 이송된 신영록은 50여 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소생 가능성 2%의 희박한 확률을 뚫고 일어선 ‘기적의 아이콘’ 신영록(37)을 지난달 16일 서울 강서구 솔병원에서 만났다.
13년 이어진 재활치료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
“안녕하세요. 신영록입니다. 반갑습니다.”
신영록은 천천히, 그러나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며 인사를 건넸다. 약 13년이 지났지만, 그의 몸 상태는 아직 사고 전으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했다. 뇌병변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그는 걷기와 말하기 등의 일상생활에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매주 월, 목요일에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금요일에는 솔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이날도 그는 약 40분간 물리치료를 소화했다. 오전 10시 40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브리지 자세를 취한 후 팔과 다리를 접었다 펴며 코어근육을 활성화했고, 이어 균형측정시스템을 활용한 훈련을 진행했다. 이후 다리를 옆과 뒤로 뻗는 동작을 반복하며 걷기에 필요한 균형감각을 키웠다.
매주 반복되는 치료가 버겁고 지겨울 법도 하지만 그는 미소를 띤 채 “힘들지 않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신영록은 집에서도 매일 자체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러닝머신을 2.5속도로 맞춰 40분씩 걷고 있다”며 “운동을 끝내고 나면 티셔츠가 땀으로 젖을 정도”라고 말했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기록의 사나이'
지난한 재활치료를 10년 넘게 이어올 수 있는 건 국가대표 출신 특유의 정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강한 정신력은 신영록이 현역시절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연령별 대표팀에 모두 월반 승선하며 2003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 2005·2007 U-20 월드컵, 2008 베이징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U-20 월드컵 2회 연속 득점(2005년 대회 1골, 2007년 대회 2골)에 성공했고, 2006년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청소년대회에서는 득점왕(5골)과 최우수선수상(MVP)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프로무대에서도 그는 도드라진 모습을 보였다. 2003년 수원 삼성에 입단한 그는 같은 해 10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당시 기준 역대 최연소 출장 3위(만 16세 7개월 2일)에 이름을 올렸다. 또 2005년 10월 30일 부천 SK(현 제주)전에 터트린 데뷔골로 당시 K리그 최연소 득점 9위(현재 13위)에 올랐다.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해외 이적에도 성공, 2009~10년에는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의 부르사스포르에서 뛰었다.
현재 신영록은 전성기 시절의 매 순간을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몇 장면만큼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가 꼽은 본인 최고 골은 2004년 말레이시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나왔다. 신영록은 “(당시 대회 8강)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오버헤드킥으로 넣은 결승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프로무대로 눈을 돌리면 “(2008년) FC서울과 경기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었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답했다. 당시 수원 소속이던 그는 4월 13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슈퍼매치에서 홀로 2골을 터트리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현역시절 자신의 강점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몸 싸움 하나는 자신 있었다”는 신영록은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영록바’”라고 말했다. 이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디디에 드로그바와 비슷하다고 팬들이 지어준 별명”이라고 부연했다.
재활의 원동력 된 새로운 꿈 '지도자'
신영록은 최근 또 한 번 큰 사고를 겪었다.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자택 계단에서 낙상사고를 당했다. 아들과 함께 취재진을 만난 아버지 신덕현(67)씨는 “몸에 경련이 일어나 계단 7개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광대뼈가 함몰돼 세브란스 병원에서 2시간 30분에 걸친 재건수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당시 사고는 후유증을 낳았다. 신덕현씨는 “심적으로 위축됐는지 (조금씩 호전되던 상태가) 약간 (과거로) 돌아갔다”며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재활치료를 받는 아들이 놀랍고 대견하다”고 전했다.
신영록이 묵묵히 재활치료에 매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그리고 있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쑥스러운 듯 “그런데 잘 모르겠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그는 천천히 제2의 축구인생을 준비 중이다. 재활치료 외에도 꾸준히 글쓰기, 책 읽기 등을 하며 일상생활에 적응하고 있고, 국가대항전 등 굵직한 대회와 축구 관련 뉴스도 챙겨본다.
지도자를 꿈꾸는 그에게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 대한 총평을 부탁하자 웃으며 “후배들이 더 열심히 해서 국민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는 말로 대답을 갈음했다. 친정팀 수원이 K리그2(2부리그)로 강등된 것과 관련해서는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아쉽다”고 전했다. 이어 “올 시즌 바로 K리그1으로 올라와 빨리 슈퍼매치를 다시 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며 “후배들아, 좀 잘 해라”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신영록의 버팀목... 가족·동료들과의 동행
우직한 성격의 신영록이지만, 오랜 세월 재활을 이어가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늘 그의 곁에서 버팀목이 돼주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선경기를 통해 재활치료에 도움을 준 1987년 생 '에잇 세븐' 멤버들과 이근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에 함께 나선 차두리, 국가대표 시절 연을 맺어 현재도 그의 치료를 돕고 있는 나영무 솔병원 원장 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부모님과 남동생에 대한 고마움이 가장 크다. 특히 아버지 신덕현씨는 사고 후 사업을 접고 아들의 재활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신덕현씨는 “(재활치료가) 장기전이 되다 보니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힘이 들긴 하지만, 영록이의 의지가 강한 만큼 당연히 옆에서 도와주고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조금씩이지만 몸 상태가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어 굉장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신영록은 “내가 빨리 낫는 게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부자의 동행은 재활치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흐릿해진 과거를 함께 되짚으며 기억의 퍼즐도 함께 맞춘다. 신덕현씨가 “영록이가 튀르키예 부르사스포르를 떠나기로 한 후 또 다른 명문 구단에서 이적 제의가 있었다”면서도 해당 팀 명을 기억하지 못하자 신영록이 “페네르바체와 갈라타사라이”라고 귀띔해주는 식이다.
인터뷰를 마친 부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갓길에 올랐다. 신덕현씨는 “지하철 9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이동한다”며 “40~45분 걸리는데, 재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걷고 있다”고 말했다. 신영록도 자신처럼 몸이 불편한 독자들에게 “러닝머신 위에서라도 꾸준히 걷는 게 제일 도움이 된다”며 걷기 운동을 적극 추천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신영록은 “빨리 회복해서 지도자로 그라운드에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신덕현씨는 “아들이 드로그바 같은 파워풀한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면 좋겠다”며 웃었다. 각자의 소망을 전한 두 부자는 천천히 보조를 맞추며 동행을 이어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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