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첫 여성 경호관 출신 배우 “욕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배우 이수련 2024. 3.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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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무튼, 봄’ 희망 편지] (9)
이수련은 청와대 최초의 여성 경호관으로 10년간 VIP를 경호한 뒤 33세에 배우로 데뷔했다. /이수련 제공

대한민국 1호 여성 대통령 경호관이라는 경력을 가진 탓에, 배우가 된 지 비슷한 시간이 흘러도 내게는 ‘청와대를 떠난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감내한 시간만큼 감사한 평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다양한 강연에 초청받기도 하는데, 이맘때는 풋풋한 새내기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설레는 내 마음과 다르게 요새 20대들이 털어놓는 고민은 가볍지 않다.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나요?”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새롭게 마주한 관계에서 받는 상처와 그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두려워하는 이가 많다. 그저 내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쟤 번개맨이야! 가슴에 벼락 맞은 흉터 있어!” “조폭 마누라다. 칼빵 살벌하네!”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 가슴 한복판에 17㎝ 길이 심장 수술 자국(성장과 더불어 길어졌다)이 있는 탓에 온갖 별명을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 남자아이들의 조롱은 꽤 깊은 비수가 되어, 학창 시절엔 수술 자국이 감춰지는 교복이 고마웠다. 대학생이 되자 또 다른 종류의 말들이 나를 찔렀다. “한 번도 외국에 가본 적이 없어?” “어떻게 넌 요새 브랜드 하나를 몰라?”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경호관 10년을 뒤로하고 배우를 시작하자 날 선 말들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빨리 아기나 낳으시지, 무슨 배우를 한다고?” “공무원 그만두고 배우를 한다고?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두근두근 첫발을 들이민 세상에서는 ‘잘될 거다. 잘하고 있다’는 응원보다 폄하하는 말들이 나를 막아섰다. 출연작이 쌓인 지금은? 범위는 커지고 수위는 높아졌다. 이제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비난과 평가를 늘어놓는다. 큰 세상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는 더 차가운 시선과 더 높은 수위의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2023년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넷플릭스 ‘사이렌: 불의 섬’이 작품상을 받을 때는 이수련이 대표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쉽다. 안전한 집에 틀어박혀 혼자만의 삶을 누리면 된다. 소셜 미디어에도, 나를 향한 의견에도 신경을 끄면 된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세상을 좁히는 것만큼 손해 보는 장사가 또 있을까? 내가 나를 알리고 공감을 이끄는 배우의 길을 택한 이상, 사람들의 관심은 마땅히 따라올 부산물이기에 감내해야 한다. 부정적인 의견이 두려워 포기하거나 내 세상을 좁힐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나는 기왕 먹을 욕, 맛있게 먹기로 했다. ‘맛있게 욕먹는 방법’을 공개한다. 첫째, 누군가 내게 부정적 의견을 던지면 생각한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깎아내리는 게 목적인 비난인지, 귀담아들을 소중한 비판인지. 둘째, 그것을 판단할 만한 합리적 주관을 갖도록 노력한다. 불합리한 비난에 숙일 필요도 없지만, 애정이 담긴 의견에 귀를 닫는 것 또한 내 성장을 방해한다.

당장 내 앞의 비난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그다음 중요한 가족이나 친구,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조연이라면, 내게 부정적인 대사 한마디를 던지고 가는 이들은 스쳐가는 단역일 뿐이라고. 일일이 리액션하기엔 러닝타임이 짧다. 내 시간을 어떤 영화로 만들어 갈지 방향을 정하는 작가이자 감독, 제작자는 바로 나다.

이쯤 되면 학생들이 신뢰가 짙어진 눈으로 다시 묻는다. “늘 1호라는 타이틀로 걸어왔기에 외롭고 막막하진 않았나요?” 그랬다. 다만 예기치 않게 마주한 따뜻한 관계들이 있어 잘 딛고 지나왔다. 나는 요즘도 쉴 새 없이 흔들리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다만 그 와중에 뿌리가 좀 더 깊어지고 굵어져 일어서는 속도가 빨라졌다. 1호로 살아왔기에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겪은 이야기로 힘이 되어주는 진짜 어른,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려 한다.

그래도 막막할 때면 이렇게 생각한다. 정치부터 연예, 스포츠,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의견이 갈리기 마련인데 세상이 나에게만 호의적이라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저 내가 너무 귀여운 탓이려니.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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