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막막할 땐, 옛 껍질을 벗어던져라”
[손관승의 영감의 길] 대문호의 그랜드투어 괴테 발자취 따라가기
3월이 찾아오면 괴테의 시 ‘미뇽의 노래’를 읽는다. “그대는 아는가, 저 레몬꽃 피는 나라를?” 남국에서 피는 레몬꽃과 금빛 오렌지 향기는 어둡고 추운 겨울을 견뎌야 했던 북유럽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날이 풀리면 알프스산맥 넘어 남쪽으로 달려가는 마차 행렬이 있었으니 그랜드투어였다. 한국 장년층에게 그랜드투어란 손자 손녀(grandchild)에게 줄 선물 챙기는 해외여행이라는 우스개가 있지만, 유럽에서 본뜻은 신선한 영감을 얻기 위한 장거리 여행이고 최종 목적지는 대개 로마였다.
그랜드투어의 상징인 ‘캄파니아의 괴테’(1787년 티슈바인 작)를 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를 찾았다. 유럽중앙은행의 소재지로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무제움스우퍼(Museumsufer)의 존재, 독일어로 ‘박물관 강변’이다. 마인강 따라 모여 있는 39개의 박물관과 산책길의 조화가 아름다운 장소다. 그중 슈테델 박물관은 군계일학. 유대인 사업가 슈테델이 평생 수집한 작품과 재산, 건물을 토대로 설립한 박물관인데 웅장하지는 않아도 훌륭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피렌체 미녀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그린 보티첼리의 초상화, 페르메이르의 ‘지리학자’, 고흐의 가셰 박사, 샤갈의 랍비, 피카소와 이브 클랭에 이르기까지 걸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렘브란트의 ‘눈먼 삼손’ 앞에 섰을 때 왜 저렇게 붓질했을까, 화가의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화가 나기도 하지만 렘브란트의 재치 있는 말을 수긍하기로 했다. “그림에 코를 너무 바짝 들이밀었다간 물감 냄새에 중독되고 말 것이다.” 창작은 예술가의 몫, 감상은 관람자의 몫인가?
미술 관람은 심미안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체력 싸움이다. 위대한 예술품보다 빈 의자에 눈길이 더 가고 명작의 감흥보다 카페의 커피 한 모금이 간절해질 즈음 접이식 의자에 앉은 나이 지긋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라파엘로의 교황 율리우스 2세 초상화. 로마의 르네상스를 이끈 두 주역이다. 응시와 스케치를 반복하며 그림에 푹 빠져 있는 남자.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행복의 조건으로 강조한 ‘플로(flow)’ 개념은 저 상태를 말하는 걸까? 시간과 주변을 잊은 완벽한 몰입 상태이다.
마침내 고대 로마의 폐허 위에 있는 괴테 그림 앞에 섰다. 괴테의 인생에는 두 번의 결정적 순간이 있다. 첫 번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성공과 변호사 경력을 뒤로하고 고향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바이마르 공국의 인재 초빙에 응한 26살의 도전이다. 두 번째는 10년간 궁정 생활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새벽 3시에 이탈리아로 떠난 마흔 직전의 여행을 말한다. 괴테는 왜 로마로 떠났을까? “즐기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마흔 고개를 넘기기 전에 나는 위대한 것에 전념하기 위해 배우고 발전시키기 위해 왔다.”
누군가에게 마흔은 낮은 오름을 오르는 기분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넘기 힘든 거대한 산맥이다. 나도 마흔으로 가는 길목에 이 그림을 처음 만났다. 이 작품을 두 번째로 만난 것은 50대 초반 퇴직자 신분일 때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심정으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자취를 따라가던 길이었다. 직장인의 옷을 벗고 새롭게 탈피해야 했다. 탈피는 괴테가 즐겨 하던 비유로, 이탈리아에서 ‘매일 옛 껍질을 벗어던지고 있다’고 했으며, ‘탈피하지 못하는 뱀이 죽는 것처럼 탈피하지 못한 인간도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라 강조하였다. 알프스산맥을 넘을 즈음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새로운 일자리가 났으니 빨리 귀국하라는 독촉이었다. 나는 필생의 버킷리스트를 완수하고 싶다고 했다. 수화기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너 미쳤니?” 그렇다, 나는 미쳐 있었다. 알프스가 아니라 마음속의 거대한 장벽을 힘겹게 넘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인생의 지름길 대신 우회로에서 헤맬 때도 있다. 괴테는 그런 이들에게 “인간은 노력하는 한, 길을 잃기 마련”이라고 따뜻하게 위로한다. 렌터카의 바퀴가 터져 큰 고난을 겪었으나 그 과정을 통해 리타이어(retire), 은퇴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헌 타이어를 교체하면 산뜻한 리타이어가 되는 것처럼, 퇴직자도 생각의 타이어를 바꿔보자는 다짐이었다. 그 체험을 책으로 냈다가 엉겁결에 글로생활자가 되었다. 직장을 잃은 대신 평생의 업(業)을, 안정을 포기한 대신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흘렀다. 나이에 따라 그림도 다르게 보이는 걸까? 괴테는 인생 3락(樂)으로 와인, 글쓰기, 여행을 꼽지만, 생활인으로서의 괴테를 주목하게 된다.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는 일자리뿐 아니라 2년 가까운 이탈리아 체류 비용도 후원해 주었다. 괴테는 촌구석 같았던 바이마르를 인재들이 몰려오는 문화 중심으로 만들고 평생 군주 곁을 떠나지 않았다. 군주가 숨지자 “시인의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것을 잘 이해해 주는 이는 나의 군주뿐”이라며 진심으로 애도하였다. 자신보다 뛰어난 부하를 시기하는 리더가 있고, 리더를 배신하는 부하도 적지 않지만,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동행을 하였다. 83세로 눈감기 1년 전, 괴테는 대작 ‘파우스트’에 마침표를 찍는다.
꿈의 폐활량에 비례해 인간은 성장하는 걸까? 나이 들어 어설프게 로망을 추구하면 노망이라지만, 로망은 인생을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동력이 아닐까? 그림 속의 괴테는 말없이 웃고 있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