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이 너무해

정상혁 기자 2024. 3. 9.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최저액 1원 이용한
황당 사건 천태만상

티끌 모아 태산, 인간의 의지를 응원하는 속담이다.

1원 모아 목돈, 이렇게 바꿔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1원 인증’으로 10만원을 받아 간 의지의 한국인이 포착된 것이다. ‘1원 인증’은 요즘 금융권의 비대면 실명 인증 방식. 자신의 타행 계좌에 해당 금융사가 1원을 송금하면, 송금자명(매번 달라짐)을 입력하도록 해 본인이 맞는지 검증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최근 어느 은행에서 ‘1원 인증’용으로 일주일 동안 한 계좌로만 10만원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누군가 인증만 10만 번했다는 얘기다. 1회당 10초로 잡아도 100만초. 11일 13시간 46분 40초가 걸린다. 은행 측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 유사 시도를 방지하기 위해 횟수 제한을 걸었다고 한다.

그래픽=송윤혜

현행 액면 최저가, 1원이 꼼수의 수단이 되고 있다. 한국인 특유의 잔머리에 집착이 가미된 결과라고나 할까.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20대 여성은 휴대전화로 입금 알림을 받았다. 황당한 건 입금액이 1원이었고, 알림이 120번 연속으로 울렸다는 것. 내역을 확인한 여성은 기겁했다. ‘송금 메모’란이 협박으로 가득했다. ‘전화받아’ ‘지금간다’ ‘집앞이야’ ‘당장나와’ ‘내손에’ ‘죽고싶어’…. 헤어진 남자 친구의 짓이었다. 문자메시지나 소셜미디어와는 달리 입금 메시지는 ‘차단’이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꾸역꾸역 받을 수밖에 없는, 줘도 안 받을 돈. 배우 곽진영 등 유명인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엄연한 스토킹 범죄다.

눈 나쁘면 당한다. 남성 김모(26)씨는 약 1년간 서울 송파·강남·용산, 경기 의정부·구리·남양주 일대에서 택시를 자주 탔다. 택시비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계좌 이체 할게요.” 수법은 단순하고도 대범했다. 이를테면 송금자 이름에 ‘15700′을 입력해 마치 송금액이 1만5700원인 것처럼 속이고, 실제로는 1원이나 100원 등 소액을 입금하는 눈속임이었다. 바쁜 택시 기사들이 이를 자세히 확인하지 않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렇게 편취한 택시비는 약 55만원. 결국 지난해 경찰에 붙잡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없는 사람 더 울리는 1원. 그래서 토스뱅크의 경우 헷갈리지 말라고 1원 입금 시 “받은 돈은 1원이에요”라는 한글 안내 문구를 띄운다. “보낸 사람 이름에 실제 송금액과 다른 금액을 적어서 받은 사람을 착각하게 만드는 금융 사기 수법이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1원씩 송금하며 협박성 메시지로 전(前) 애인에게 질척거린 한 남성의 흔적. /서울시 스토킹 피해자 원스톱지원 사업단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1000원도 1원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서울 중구에 사는 오종춘씨는 ‘1보 1원’ 기부를 결심하고 한 해 동안 걸은 577만4344보를 돈으로 환산한 577만4344원을 지난달 중구청에 전달했다. 세종시에서 마라톤 동호회를 운영하는 전영민씨는 자신이 뛴 거리 1m당 1원씩 적립해 45만4490원을 지난달 세종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지난해 임직원이 1억5000만보를 걸어 모은 1억5000만원을 취약 계층 세 곳에 기부한 한국가스공사뿐 아니라 대한적십자사, 한국피자헛 등 여러 기업 및 단체들도 매년 부지런히 발바닥을 움직인다. 사회의 일원(一員)이기 때문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