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만 나이 안씁니다” 청년 울리는 결혼정보회사의 불안 마케팅
가짜 만남 주선까지
삐뚤어진 상술 주의보
결혼 적령기 딸을 둔 A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딸의 배필을 찾기 위해 결혼정보회사에 회원 가입 상담을 했는데, 회원의 나이를 정부에서 시행한 만 나이 대신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치는 ‘세는 나이’로 간주한다는 말을 들은 것. A씨는 “상담사에게 항의하니 ‘경영 방침이라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가입한 사람의 나이를 한 살이라도 부풀려 결혼을 서두르게 하려는 얄팍한 상술 아니냐”고 했다.
아무리 비혼·저출산이 절정이라지만, 청년들의 빈 옆구리는 여전히 시리다. 당차게 ‘대충 결혼하고 고생하느니 그냥 혼자 살겠다’고 외치는 청년이 늘었지만, 연애와 결혼은 여전히 지상 최대의 고민이자 난제. 각종 커뮤니티에는 남녀불문 “더 늦기 전에 결혼하고 싶은데 마땅한 짝을 찾지 못해 너무 답답하고 괴롭다”는 고민 상담글이 쉼 없이 올라온다.
과장이 아닌 게 노총각·노처녀가 유부남·유부녀보다 훨씬 많은 시대가 됐다. 작년 말 기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당시 만 40세이던 1983년생 국민 71만명의 혼인율은 71%인 반면, 만 35세이던 1988년생 국민 59만5000여 명의 혼인율은 49.2%로 나타났다. 결혼했거나 한 번이라도 결혼했다가 ‘돌싱’이 된 사람이 미혼자보다 적어진 것.
사회 진출이 늦어지고 배우자를 찾는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역설적으로 저혼 시대에 결혼정보회사는 더 활황을 맞은 상황. 2012년 국내 결혼정보회사가 1200여 곳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얄팍한 상술도 점점 늘고 있다. 현재 국내 결혼정보회사는 약 900여 곳이 성업 중이다.
A씨의 딸처럼 결혼정보회사가 마음대로 나이를 부풀리는 건 애교 수준. 일부 업체는 ‘전문직에 집안 좋은 배우자감을 소개해주겠다”며 일반 회원보다 더 높은 비용의 프리미업 회원 가입을 유도한 뒤, 가짜 배우자감을 섭외해 소개하며 데이트 횟수만 채우는 꼼수를 부린다. 사실상 사기지만, 당사자가 침묵하면 상대방은 알아챌 방법이 없다.
30대 변호사 B씨는 “사법연수원 시절 친구 중에 결혼정보회사에서 ‘그냥 호텔에서 식사만 하고 오면 된다’며 가짜 맞선에 나가 주말에 10만~15만원씩 버는 경우를 몇 번 봤다. 만약 상대가 마음에 든다고 표현해도 당사자가 싫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라며 “커플매니저들이 그런 식으로 의사나 한의사를 섭외해서 가입 회원 상대로 데이트 횟수만 채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문직이거나 외모가 괜찮은 회원은 커플 매니저로부터 만남을 강권당하기도 한다. 작년에 결혼정보업체를 이용한 30대 직장인 C씨는 “커플매니저에게 마음에 드는 상대가 아니라고 했는데도 ‘정말 괜찮은 분이니 꼭 만나보라’는 설득을 반복해 어쩔 수 없이 상대방과 데이트를 했다”며 “나중에 이런 만남도 계약상 정해진 소개 횟수에서 차감했다는 걸 알고 화가 나 항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부당한 환불 약정을 이용해 계약금을 뜯어내는 수법도 기승을 부린다. 소셜미디어 등에 ‘개인 정보만 입력하면 무료로 1회 소개팅을 시켜준다’며 이벤트성 광고를 한 뒤 이에 응하는 소비자에게 연락해 할인 혜택 등을 제시하며 회원 가입을 유도한다. 그리고 ‘호갱’이 된 걸 깨닫고 가입 해제 후 환불을 요구하면 ‘당일 계약을 해지해도 계약금의 80%만 환불해준다’는 약정을 내밀며 가입비의 20%를 떼어가는 식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작년 6월까지 소비자원에 접수된 결혼중개서비스 관련 피해 구제 신청은 1083건. 계약 해지를 거부하거나 과도한 해지 위약금을 요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의 절반 가까운 46%가 계약 금액이 200만~400만원으로, 영세 업체와 계약을 했다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피해 신고 중 약 20%는 계약 불이행. 전문직인 배우자감을 소개해주겠다고 해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상대가 나타나지 않아 바람을 맞고 집에 돌아와 항의하니 ‘좀 늦게 갔는데 왜 그냥 가셨냐’며 횟수를 차감하거나, 상대 회원과 카톡을 주고받은 뒤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는데도 소개 횟수에서 떼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전문직, 고소득을 사칭한 배우자감을 소개해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가입 시 과다한 위약금은 없는지, 서비스 내용이나 이용료는 어떻게 책정되고 구체적으로 계약서에 명시됐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은커녕 결혼정보회사 찾기도 험난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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