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죄? 심리학으로 분석한 아이돌 연애의 법칙

이혜운 기자 2024. 3.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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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지난 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프라다 패션쇼에서 나란히 앉은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오른쪽)와 배우 이재욱. 둘은 이날 행사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팬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지난 5일 아이돌그룹 ‘에스파’의 리더 카리나가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흔히 택하는 사죄 방법이다. 그녀가 늦은 밤에 긴 사과 편지를 올린 이유는 배우 이재욱과의 열애 때문이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작가 노희경)라고 했지만, 아이돌 그룹은 사랑하면 유죄다. 그들의 연애는 기획사의 최대 리스크. 지난달 27일 카리나의 열애를 기점으로 소속사인 SM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영국 BBC 방송도 “열애설로 사과문까지 써야 하는 것이 K팝 산업의 현실”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팝스타는 압박으로 악명 높은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이돌 공개 연애의 시초 격인 그룹 god의 리더 박준형은 한고은과의 공개 연애로 사죄 기자회견까지 열어야 했다. 그가 당시 울먹이며 한 말 “나 서른두 살이에요. 여자친구 있어야죠”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카리나는 스물넷, 연애하는 것이 당연한 나이다. 그런데 팬들은 왜 분노하는 것일까.

영국 BBC는 “카리나가 남자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배신’이란 비난을 받고 비굴한(grovelling) 사과를 했다”고 보도했다.

◇팬을 두고 연애하면 ‘불륜’

아이돌 산업은 ‘유사 연애 감정’, 심리학 용어로 ‘유사 사회관계’에 기반한다. 실제 사회관계가 아님에도, 수용자로 하여금 사회관계를 형성한 것처럼 경험되는 관계다. 여느 사회관계와 달리 한 방향의 관계만 존재하며, 상대방은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함에도 미디어를 통해 흥미나 감정이 발현되고 유지돼 온 결과다.

아이돌 멤버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앱 ‘버블’,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 ‘위버스’ 등이 이를 통한 수익 구조다. 영국 BBC 방송도 “K팝 스타의 소속사들은 그들을 ‘연애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아이돌로 세일즈하고 싶어 한다”며 “10년 전만 해도 K팝 기획사들 사이에서는 신인의 데이트나 개인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하는 게 관례였다”고 보도했다.

공연장마다 유서 깊은 플래카드 ‘남편’이 이런 감정의 대표적 표출이다. 이런 관계로 맺어진 상대방이 연애한다는 사실을 접하는 순간, 소위 ‘불륜’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경상대 연구진이 한국금융공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로맨스 루머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주가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소속 연예인에 대한 로맨스 루머가 보도된 경우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주가에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의 상품성은 대중의 욕구에 부합하는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런 기대 수요를 충족해 줄 때만 연예인의 가치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돌 산업만이 아니라 대중문화 밑에 저류처럼 흐르는 감정이기도 하다. 세계 3대 학술지인 네이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망하자 영국은 물론 세계인들이 슬퍼하는 감정 역시 유사 사회관계”라고 분석했다. 여왕을 만난 적도 없고, 여왕이 나를 알고 있지도 않지만, 세계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것처럼 슬픔에 잠긴다는 뜻이다. 물론, 유사 사회관계는 한 번이라도 보고, 접촉이 있을 경우 더욱 증폭된다.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유권자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악수를 하는 것은 유사 사회관계 감정을 자극하고 싶어서다.

◇제니와 오타니는 왜 다른가

그러나 이번 ‘에스파’ 카리나 열애 파문은 유사 연애 감정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앞에서 진행된 트럭 시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붙었다.

“응원했던 카리나의 빛나는 미래, 같은 꿈을 꾸는 줄 알았던 건 팬들의 착각.”

두 번째 아이돌 산업을 움직이는 감정은 ‘대리 만족’, 심리학 용어로 ‘팀 동일시’다. 팀 동일시는 프로 스포츠 산업을 움직이는 기본 감정이다. 좋아하는 프로 야구팀 또는 선수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애착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함께하려는 심리적 상태다. 나와 직접 관련이 없음에도 좋아하는 스포츠팀을 응원하고, 유니폼을 사고, 올스타전에 투표하는 것 모두 팀 동일시에 따른 행위다.

최근 아이돌 산업은 프로 스포츠 산업과 유사한 측면을 보이고 있다. 앨범을 많이 사 초동(음반 발매 후 최초 1주일간의 판매량) 수치를 높이고, 스밍(실시간으로 음원을 듣는 것)을 통해 음원 순위를 높인다. 홈마(홈페이지 마스터)가 돼 사진과 영상을 찍어 배포하며, 팬 영입을 늘린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아이돌 그룹의 경우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내가 키운 그룹’이라는 것이다.

최근 이 경쟁은 세계 시장으로 확장됐다. 빌보드 차트에서 몇 위인지, 해외 공연을 몇 나라에서 했는지, 몇 명의 관객이 들었는지도 팬들의 자부심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블랙핑크’ 제니와 ‘방탄소년단’ 뷔의 열애(설)는 파장이 작았다. 영미권에서 수퍼스타 간의 열애는 몸값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젊은 혈기의 청춘 남녀가 연애를 안 할 리는 없는 법. 아이돌 연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티 내지 말 것”이다. 모범 사례로 꼽히는 것이 ‘동방신기’ 멤버 최강창민이다. 그는 2020년 비연예인 여자친구와 결혼했고, 첫 아들도 품에 안았지만, 사진 한 장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최근 일본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결혼 발표와도 비슷하다. 모두가 알지만 흐린 눈을 하고 있으니, 굳이 팬들을 자극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0번째 원칙이 있다. “들키지 마라”다. 2022년 일본 아이돌 그룹 AKB48 오카다 나나 열애 당시 일본 개그 콤비 트렌디 엔젤의 타카시가 말했다. “아이돌 산업은 돈을 지불해 꿈을 사는 것이다. 나는 남의 여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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