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결혼·출산은커녕 왜 연애도 안 하는가

어수웅 기자 2024. 3.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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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집만큼 중요한 저출생 원인
인스타그램엔 온통 선남선녀고 나 빼고는 다들 잘나간다는데…
왜곡된 평균의 압력부터 끊어라

“오마카세 사진 올리는 사람들 친구 끊을까 생각 중.”

소셜미디어에서 이 짧은 고민을 봤다. 초밥과 소고기에 이어 커피와 홍차, 심지어 순대 오마카세까지 등장한 세상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남들 대부분은 호사를 누리는데, 나는 분식집 필름 순대와 1500원 가성비 아메리카노가 일상이라면…. 그럴 수밖에.

한국의 출생률이 자신이 가진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와 기업의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는데도 작년 4분기는 0.65로 더 떨어졌다. 직원이 아이 낳으면 그때마다 1억원을 준다는 회사, 집 없는 부부에게 1% 이자로 5억원을 빌려주겠다는 정부 정책까지 나왔다. 물론 돈과 집은 출산과 육아를 장려하는 경제적 핵심 축. 하지만 백약 무효로 국가 소멸까지 우려하는 한국의 저출생에는, 우리가 체면 때문에 잘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지금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은커녕, 연애조차 잘 하지 않는다. 이 그늘엔 오프라인의 실제 삶보다 심하게 과대표된 온라인의 미남·미녀, 그리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마카세로 대표 되는 무기력과 허탈감은 스마트폰에서 비롯된다. 연예인 아닌데도 연예인보다 더 예쁘고 매력적인 남녀가 그 안에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AI 연인도 있다. 하지만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현타’가 시작된다. 진실의 시간. 그런 선남선녀는 오프라인 내 주변에 없다. 팔순 넘긴 아버지 세대의 결혼 이야기를 기억한다. 자신이 유년과 청년을 통과한 지방 소도시 마을에는 또래 ‘젊은 처자’가 딱 두 명 있었다는 것.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이며 정분이 났고, 결국 60년을 해로했다는 것. 지금 기준으로는 평균에도 미달하는 외모라고 농담을 했지만, 그 당시엔 안 보면 생각나고 생각나면 설렜다고 한다. 그 시절 TV와 스크린의 여배우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 나와는 상관없는 별나라 외계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가. 배우보다 더 매력적인 남녀가 늘 잡힐 듯 손 안에 있는데.

나는 이 ‘왜곡된 평균’이 한국인을 우울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평균 올려치기’ 혹은 ‘평균압’이라는 신조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한참 더 아래인데, 상위 10%의 외모와 라이프스타일이 평균인 것처럼 올려치고 압력을 가하는 분위기. 신혼집으로 신축 아파트 전세 정도는 평균 아니냐, 가전 빼고 결혼식 비용 7000만원이면 중산층 최저 아니냐, 대학 입학한 딸 선물로 명품 백은 기본 아니냐 이 ‘왜곡된 평균’이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를 위축시킨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한국인의 실제 평균은 당연히 미달한다는 것을. 통계청 최신 자료인 2022년 가구 중위소득은 연 3453만원. 그나마 명목소득이고 실질소득으로 기준을 바꾸면 3206만원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 신축 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하고 호텔에서 결혼하며 철마다 해외여행을 떠나겠는가. 대신 ‘나는 솔로’를 보며 대리 연애에 만족하고,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애 안 낳기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저출생은 OECD 국가 대부분의 고민이지만, 유난히 심한 우리의 세계기록은 이 ‘왜곡된 평균’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부디 스스로를 불행의 구덩이로 밀어넣는 악순환은 그만두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삶의 진실’이라는 짧은 글을 역시 인터넷에서 읽었다. “지잡대 가거나 대학 안 가도 인생 안 망함. 돈 없는데 결혼해도 인생 안 망함. 돈 없는데 애 낳아도 인생 안 망함. 나이 많은데 뭔가 시작해도 인생 안 망함. 대신 인터넷에서 남들 사는 거랑 비교하기 시작하면, 내 정신은 반드시 망함.”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할 묘책은 없겠지만, 일단 남들과 비교하는 소셜미디어부터 끊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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