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집에 안 간다는 딸, 엄마의 변칙 공격에 허를 찔리다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지난 설날 연휴, 처음으로 본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첫 문장에서부터 전국 어르신들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용기를 잃지 않겠다. 작년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원고 작업과 글쓰기 수업으로 심신이 지쳐 있었기에 단 며칠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치 육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 너만 간절하냐?!”
과거의 명절은 지금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만나 안부를 주고받고 그동안 맛보기 힘들었던 귀한 음식을 나눠 먹었다. ‘설빔’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일 년에 한 번 새 옷을 선물받기도 했고, 보고 싶은 친척들 얼굴만큼이나 세뱃돈을 기다렸다. 하지만 요즘은 배달 음식 앱을 이용해 언제든 원하는 음식을 찾을 수 있고, 계좌이체로 용돈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소셜 미디어나 영상통화로 다른 나라에 사는 친척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시대의 명절은 신·구세대의 가치관이 엇갈리는 시기다. 어르신들에게 명절은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명절은 ‘연휴’에 더 큰 방점이 찍힌다. 즉, ‘연이어 쉴 수 있는 날’인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여전히 명절을 기대하신다. 명절 전부터 온갖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자식들과 손주들 오기를 기다리신다. 하지만 내 마음은 조금 다르다. 부모님을 뵙고 싶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웬일인지 수입은 줄었다. 매일 쥐어짜듯 글을 써 책을 내고 있지만, 책은 점점 더 팔리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이지만 잔액은 쌓이지 않는 미스터리. 프리랜서로서 수입이 늘 불안정하기에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께 드릴 용돈을 마련하지 못해 멋쩍을 때도 많다. 부모님은 “돈이 뭐가 중요하냐, 얼굴 보는 게 중요하지”라고 말씀하지만, 얼굴 보는 일만큼 돈도 중요하다. 내 사정이 어려운 만큼 부모님도 힘드시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가족 모두가 편안한 명절을 보내기를 바랐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서 무겁게 장 보고 음식하시느라 고생하지 않는, 자식들은 주머니 사정이나 일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연휴였으면 했다. 그래서 올 설은 혼자서 보내겠다고, 이참에 두 분도 오랜만에 푹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산뜻하게 알겠다고 하셨다. 엄마 아빠는 알아서 잘 보낼 테니, 너도 좋은 연휴 되라며 훈훈하게 통화를 마쳤다. 그런데.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엄마는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첫날은 “언니네 식구들이 오는데 너도 같이 올래?”라는 제안이었다. “갈비도 재워 놓고 너 좋아하는 봄동 김치도 해놓고 나물도 잡채도 다 만들어 놨는데.” 하지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번엔 혼자 있겠다고 했다. 둘째 날이 되니, 엄마는 음식을 싸서 우리 집에 오겠다고 하셨다. 나는 미리 장을 봐두어 먹을 게 충분하니 먼 길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셋째 날에는 엄마가 집 앞에 먹을 걸 두고 가겠다는 문자를 보내셨다. 똑같은 말을 녹음기 틀듯 사흘 연속으로 하다 보니 칠순 넘은 엄마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여쭈었다. “엄마, 혹시 저랑 통화하신 거 기억 못 하시는 거 아, 니, 죠…?”
하지만 이어진 엄마의 말씀에 마음이 조금 촉촉해졌다. “명절에 혼자 음식도 못 챙겨 먹고 있을까 봐 짠해서. 네 생각이 자꾸 나서.” 나는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한 손으로는 냉장고를 열어 그 안에 미어터지듯 들어 있는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엄마. 너무 잘 먹고 있어요.” 방금 배달 음식까지 시켰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연휴 다음 날, 엄마가 줄줄이 읊으시던 음식이 여전히 본가 냉장고에 머물고 있을까 마음이 쓰여 전화를 드렸다. “엄마, 나 봄동 김치만 좀 주세요. 지금 집에 갈게요.” 엄마는 언제든지 오라며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집에 도착할 즈음 우연히 아빠를 만났는데, 아빠는 방금 마트에서 산 봄동 다발을 한아름 안고 계셨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에게 여쭸다. “봄동 김치 있다면서요? 있는 거 받아 가려고 했는데 다 드셨어요?” 엄마는 대답하셨다. “봄동 김치는 없어. 근데 없다고 하면 네가 안 올까 봐 있다고 했지.” 그리고 신속하게 아빠가 사 오신 봄동을 씻어 그 자리에서 겉절이를 만드셨다. “금방 해. 이거 가지고 가면 된다.”
내가 방패라면 엄마는 창이다. 절묘하게 딸의 빈틈을 찾아 찌르고 또 찔러 어떻게든 얼굴을 마주하게 하신다. 나의 방패는 엄마 앞에서 영 맥을 못 춘다. 그 덕에 이번 설에도 부모님 얼굴을 뵐 수 있었다. 부족하나마 주머니에 용돈도 넣어드렸다. “다음에 돈 많이 벌면 더 많이 드릴게요.” 과연 그날이 올까. 엄마의 빨간(?) 거짓말 공격에 이은 나의 하얀 거짓말 방어였다.
그날 나는 엄마의 하루 지난 명절 음식을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음식들을 지금까지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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