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박지원이 풍자한 ‘얼어 죽을 놈의 열녀 타령’

허윤희 기자 2024. 3.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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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스캔들

유광수 지음|북플랫|320쪽|1만9000원

조선 실학자 박지원이 지은 ‘열녀함양박씨전’엔 두 열녀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병 있는 남편과 결혼한 중인(中人) 여자가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고 자살한 이야기. 또 하나는 젊어서 과부가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양반집 형제 이야기다. 형제가 ‘선조 중 과부가 있었는데 행실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떤 이의 관직을 막으려 하자, 어머니가 품속에서 엽전 한 닢을 꺼내며 말한다. “젊은 날 밤마다 혈기가 끓어오르면 엽전을 굴리고 잡으려 뛰어다니며 가라앉혔으니, 이 엽전은 네 어미를 살린 부적이나 다름없다.”

정절을 지켜 과부로 사는 것만 해도 엄청난 ‘열녀’인데, 남편을 따라 죽는 괴상한 현실을 가리켜 박지원은 ‘얼어 죽을 놈의 열녀 타령’이라고 꼬집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고전문학 해설가인 저자가 인간의 본성과 당시 시대상에 주목해 고전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선덕여왕을 흠모한 죄로 불귀신이 되어버린 역졸의 사연, 경남 밀양부사의 딸 아랑의 죽음에 얽힌 전설 등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기담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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