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이슈 읽기] ‘세계 여성의 날’ 제정 116년… 아직도 여성의 몸은 소외됐다

곽아람 기자 2024. 3. 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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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 맞아 페미니즘 신간 쏟아져

8일은 제116회 세계여성의 날. 서점가에 페미니즘 관련 신간들이 쏟아졌다. 그중 3권을 골라 소개한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뉴욕 여성 노동자들이 화재 사고로 숨진 여성들을 추모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시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유엔은 1977년 3월 8일부터 이날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해방

타라나 버크 지음|김지원 옮김|디플롯|334쪽|1만8800원

◇'미투 운동 창시자’가 쓴 회고록

“그리고 모두 #미투(me, too)를 달고 있었다.”

2017년 가을 어느 토요일, 타라나 버크(당시 44세)는 쉬지 않고 울리는 휴대전화 진동음에 잠을 깬다. ‘#미투’가 달린 수십 만 개의 트윗, 페이스북 게시물 알림음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에 분노한 이들이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미투’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2005년부터 미투 운동을 이어가고 있던 버크는 당황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백인들을 위한 플랫폼이지 자신 같은 흑인 여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영향력 있는 백인 여성들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들의 성과를 가져가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그에게 친구가 말했다. “너를 아는 모두가 ‘미투’는 네 거라는 걸 알아. 네가 오랫동안 그 활동에 매달려온 모습을 지켜봤잖아. 요즘 같은 시대엔 영수증을 내밀면 돼. 그러니, 네 영수증을 보여줘. 미투 운동이 이미 존재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 버크는 2014년 어느 행사에서 미투 운동에 대한 연설을 하는 자신의 동영상을 찾아 미투의 의미에 대한 글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미투 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의 회고록 ‘해방’은 흑인, 노동계급, 여성이라는 세 부류 소수자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부터 거듭 성폭행을 당했던 아프리카계 여성이 “나도 당했다” 고백하며 유색인종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대학 졸업 후 청소년 인권 및 시민권 운동가로 활약하던 버크는 운동권 집단 내 권력자들이 서로의 성추문을 눈감아주는 현실에 회의를 느껴 독립적인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버크가 흑인 가수 R.켈리의 아동 성추행 사실을 공표했을 때 흑인 공동체 내 남성들이 ‘같은 편끼리 총질하면 어떡하냐’는 식으로 그에게 가한 압박은, 우리 사회의 몇몇 단면들과도 겹쳐 보인다. 원제 Unbound.

자궁 이야기

리어 해저드 지음|김명주 옮김|김영사|492쪽|2만4800원

버자이너

레이철 E. 그로스 지음|제효영 옮김|휴머니스트|488쪽|2만7000원

◇여성의 몸은 ‘비표준’이 아니다

최근 여성주의 의·과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시도는 백인 남성의 신체를 표준으로 삼고 예외적인 것들은 ‘비표준’으로 삼아온 오래된 연구 관행을 지적하는 것이다. 남성 위주의 의·과학계가 우울증 등 여성 발병 비율이 높은 질환을 ‘유별나고 예민한 현상’ 정도로 치부해 왔으며, 자궁을 비롯한 여성 생식기 역시 성적인 대상으로만 여겨져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 소속 조산사인 리어 해저드의 ‘자궁 이야기’(원제 Womb)와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 레이철 E. 그로스의 ‘버자이너’(원제 Vagina Obscura)는 모두 이런 갈래에 속하는 책이다.

‘자궁 이야기’는 “자궁이 ‘인간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장기’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배아의 수정 과정은 정자의 힘과 활력에 의존하며, 자궁경부의 역할은 ‘수동적인 그릇’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생식과학 연구자인 의사 바츨라프 인슬러의 연구에 따르면 “자궁경부는 가장 질 좋고 생존력이 강한 정자를 저장했다가 자궁 본체로 적극적으로 방출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버자이너’는 ‘과학의 아버지들’이 여성을 의·과학에서 소외시킨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윈은 암컷과 여성을 수동적이고 아둔한 존재로 여겼다. 프로이트는 여성을 ‘남근이 없는 작은 존재’로 정의했다. 이런 고정관념은 현대의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1960년대만 해도 해부학 실습 시간에 “’여성에게만 있는 기관’인 유방은 불필요한 부속물이라 메스로 대충 몇 번 그어 제거한 후 근육계부터 상세히 살펴보는” 일이 잦았다. 호주 출신 비뇨기과 의사 헬렌 오코넬에 따르면 30여 년 전만 해도 “남성 환자가 전립선 수술을 받을 때면 성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신경과 혈관을 건드리지 않으려 주의하면서, 여성의 생식기는 어떤 신경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성편향을 지적하지만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 책의 미덕. 저자는 “성별을 넘어 모든 ‘몸’을 위한 과학 연구의 가능성이 열려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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