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44] 싫어하는 마음의 힘
2024년 금연하겠다는 결심을 친구들 앞에게 공개적으로 선포한 후,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약속을 어긴 친구에게 내가 아는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독일 68세대의 일원으로 반나치 운동가였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이야기인데, 그는 처칠처럼 온 종일 담배를 피우는 헤비 스모커였다. 평생 남들의 금연 충고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고집스러운 그는 어떻게 ‘단박에’ 담배를 끊을 수 있었을까? 내가 부정적 감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도 그의 사례를 본 후였다.
금연, 금주, 단약, 다이어트는 누구나 지키기 힘든 결심이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를 믿는 대신 ‘벌금’을 선택한다. 결심을 지키지 못할 때 자신이 약속한 돈을 누군가에게 지불한다고 공개 선언하는 것이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금연하고 야식의 유혹을 이기려는 전략이다.
그런데 약속 불이행 시 내는 이런 벌금과 관련된 한층 더 진화된 사고 실험이 있다. 만약 내가 금연하지 못해서 낸 벌금이 평소 자신이 혐오하는 반인권 단체나 정치 단체에 간다면 어떨까. 흥미로운 건 자신이 낸 벌금이 독거 노인이나 결식 아동, 미혼모 등 자신이 후원하고 싶어하는 단체에 간다고 고지한 사람보다, 자신이 싫어하는 총기협회나 특정 종교, 정치 단체에 지불된다고 고지한 참여자의 미션 성공률이 훨씬 높았다. 이 경우, 혐오가 사랑을 이긴 셈이다.
빌리 브란트는 자신이 피운 담배의 세금이 곧 전쟁세에 지원될 거라는 뉴스를 듣고 한 번에 담배를 끊었다. 전쟁에 대한 극도의 혐오가 평생 이어진 흡연 습관마저 이긴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는 때로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더 선명해진다. 총선의 계절,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전화와 문자를 보여주며 친구에게 말했다. 만약 이번에도 금연에 실패하면 스스로 가장 혐오하는 후보에게 정치 후원금이 가도록 즉각 조치하라고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당장 친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싫어하는 마음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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