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권도형 이번엔 한국행… 美 “포기 안해”
가상 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3) 테라폼랩스 대표에 대해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이 7일(현지 시각) ‘한국 송환’ 결정을 내렸다. 지난달 21일 내린 ‘미국 인도(引渡)’ 결정을 보름 만에 뒤집은 것이다. 권씨는 미국에서 재판받게 되면 징역 100년 형(刑)도 선고받을 수 있지만 한국으로 온다면 징역 40년 형에 그칠 수 있다.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이 결정을 번복한 것은 지난 5일 항소법원이 “미국 인도 결정은 무효”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고등법원은 지난달 21일 “미국 정부 공문이 한국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다”며 권씨를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권씨는 상급심인 항소법원에 다시 심리해 달라고 했다.
항소법원은 “한국과 미국 중 누가 먼저 범죄인 인도 요청서를 제출했는지에 관한 (고등법원) 결정에 근거가 없다”고 했다. 이어 “한국 법무부가 작년 3월 24일 영문 이메일로, 3월 26일 몬테네그로어(語) 이메일로 권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서를 각각 송부했다”면서 “미국 공문은 작년 3월 27일 도착했는데 (범죄인 인도 요청서가 아니라) 임시 구금을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공문 발송 순서와 내용에 따라 권씨를 보낼 나라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고등법원이 권씨를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권씨는 지난 2022년 5월 폭락한 가상 자산 테라·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다. 당시 폭락으로 세계 각국 투자자들이 50조원 이상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권씨는 폭락 직전 국외로 나갔다가 작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한국 송환’ 결정이 그대로 확정되면 권씨가 이르면 이달 안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씨의 범죄인 인도 결정을 위한 구금 기간(8개월)은 지난달 15일 이미 만료됐고,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선고받은 징역 4개월의 형기도 오는 23일 종료된다. 작년 3월 권씨와 함께 검거된 한창준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는 몬테네그로 법원의 한국 송환 결정 후 일주일 내에 국내로 들어왔다.
권씨가 송환되면 서울남부지검의 수사를 받게 된다. 남부지검은 지난 2022년 9월 권씨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사기, 배임 등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받아뒀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이날 “(권씨 송환에 대해) 향후 정식 통보를 받게 되면 외교부, 몬테네그로 당국 등과 협의해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변수는 남아 있다. 범죄인 인도에 대한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몬테네그로 법무 장관은 권씨를 미국으로 보내겠다는 입장이다. 몬테네그로는 미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고 있지만 2000만달러 사기 혐의를 받은 미국인 2명을 지난 2022년 미국에 송환한 바 있다. 미 법무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관련 국제 협약과 미국과 몬테네그로의 양자 간 협약, 몬테네그로 법에 따라 권씨의 인도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씨는 미국에서 증권 사기, 시세 조작 등 8개 혐의로 기소돼 있다.
그동안 권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결정은 세 차례 항소를 거치며 엎치락뒤치락했다. 이는 몬테네그로 정치 상황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 6월 몬테네그로 총선을 앞두고 권씨의 자필 편지가 논란이 됐다. 권씨가 당시 야당이던 ‘지금 유럽(Europe Now Movement)’의 밀로코 스파이치 대표와 2018년부터 인연을 맺고 정치 자금을 건넸다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당시 여당 소속이던 드리탄 아바조비치 전 총리가 권씨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공개했다. 야당은 “‘지금 유럽’의 총선 승리를 막기 위해 조작된 음모론”이라며 반박했다. 이후 총선에서 ‘지금 유럽’이 압승하면서 정권 교체가 이뤄졌고 야당 대표이던 스파이치가 현재 몬테네그로 총리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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