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만난 ASML CEO “성장할 수 없다면 네덜란드 떠날 것”

이청아 기자 2024. 3. 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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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이 자국 정책에 반발해 외국 이전 가능성을 시사한 뒤 총리까지 회사 수뇌부와 만났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로이터통신과 네덜란드 RTL뉴스 등에 따르면 6일(현지 시간)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회동한 뒤 "산업계와 정치계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에서 '상당한 격차(considerable gap)'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네덜란드에서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면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여러 곳 찾아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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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정치권 인식 상당한 격차”
실제 외국 이전 여부엔 의견 분분
“외국인노동자 확보用 압박” 평가도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이 자국 정책에 반발해 외국 이전 가능성을 시사한 뒤 총리까지 회사 수뇌부와 만났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기업인 ASML은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 필수 기술을 보유해 최근 각국이 반도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네덜란드 RTL뉴스 등에 따르면 6일(현지 시간)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회동한 뒤 “산업계와 정치계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에서 ‘상당한 격차(considerable gap)’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네덜란드에서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면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여러 곳 찾아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베닝크 CEO는 “지금 당장 떠날 계획은 없다”며 “내각과 ASML이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전 계획을 현실화하는 건 일단 배제했지만 향후 성장을 둘러싼 이슈의 해결에는 양측이 도달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매체 NL타임스에 따르면 정치권과 ASML 간의 팽팽한 신경전은 총리 회동 직전에도 드러났다. 같은 날 오전 ASML이 기술 스타트업 유치를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했는데, 참석이 예정됐던 현직 의원 6명 중 5명이 당일 아침 갑자기 일정을 번복했다. NL타임스는 “산업계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하자는 압력이 커지자 정치권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베닝크 CEO는 이에 대해 “정치권이 혁신 기업 유치 및 성장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현지에선 ASML이 실제로 본사를 외국으로 옮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인싱어르힐리선 은행의 수석 애널리스트 요스 페르스테이흐는 RTL뉴스에 “ASML이 공장 전체를 외국으로 옮기거나, 외국에 새로 투자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며 “외국인 숙련 노동자 확보를 위해 정치권을 압박하는 카드”라고 평가했다. 현재도 신규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ASML이 직원 2만3000명을 외국으로 이주시키거나 새로운 직원을 찾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유럽 최대 증권거래소인 유로넥스트의 전 이사인 짐 테후푸링은 “단순히 반이민 이슈뿐만이 아니라 최근 네덜란드는 ASML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정책들들 펼쳐 왔다”며 “몇 년간 정부가 법인소득세를 인상하고, 중국 수출을 제한한 점 등을 풀지 않으면 외국으로 이전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전 결정이 나더라도 점진적으로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해야 하므로 수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네덜란드 유력지 더텔레흐라프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최근 ASML을 붙잡기 위해 태스크포스(TF) ‘베토벤’팀을 꾸렸으며, 뤼터 총리가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을 만큼 이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네덜란드 의회는 지난해 총선에서 반(反)이민 극우 정당이 승리한 뒤 외국인 숙련 노동자에게 부여하던 비과세 혜택을 점차 삭감하고 유학생 수를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직원 40% 이상이 외국인인 ASML은 여러 차례 우려를 표시해 왔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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