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피해자의 삶 거부”… 그녀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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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짐을 짊어졌다."
2005년 '미투(Me too)' 운동을 처음 시작한 미국의 인권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신간 '해방'에서 생애 첫 성폭력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곱 살 소녀였던 버크는 자신이 '밖에서 놀 때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 것' 등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신간은 버크가 미투 운동에 이르게 된 인생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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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야기 당당히 드러내며, 상처 치유-세상 바꾸는 계기로
◇해방/타라나 버크 지음·김진원 옮김/344쪽·1만8800원·디플롯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김진주 지음/320쪽·1만8000원·얼룩소
2005년 ‘미투(Me too)’ 운동을 처음 시작한 미국의 인권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신간 ‘해방’에서 생애 첫 성폭력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곱 살 소녀였던 버크는 자신이 ‘밖에서 놀 때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 것’ 등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신간은 버크가 미투 운동에 이르게 된 인생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미투’ 해시태그가 사용됐다. 이 운동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책에는 침묵하던 어린 소녀가 세계 여성들에게 용기를 준 인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흑인 문학에 심취한 똑똑한 소녀였던 버크는 고교 시절 흑인 청소년 네트워크에서 활동한다. 청소년 캠프에서 ‘우리는 모두 리더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당찬 소녀였지만, 자신의 피해는 직면하려고 하지 않았다.
죄책감은 침묵을 깬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활동가가 된 버크는 캠프에서 열두 살 소녀 헤븐을 만난다. 헤븐은 버크에게 자신이 엄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버크는 어렸을 적 자신을 닮은 헤븐을 외면한다.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는 버크에게 여전히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을 후회하던 그는 흑인 공동체 지도자들이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묵인하는 상황을 목격하곤 각성한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허겁지겁 수첩을 꺼낸 뒤 두 음절을 적는다. ‘Me too.’
신간은 ‘피해자의 말하기’가 사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책하며 자신의 잘못을 곱씹는 대신 누군가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가해자의 잘못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폭력과 맞서며 내면을 다듬어가는 버크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다.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제외된 성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을 언론에 알린다. 또 1000쪽이 넘는 재판기록을 직접 뒤져 성범죄 정황을 발견한다. 결국 ‘살인미수’만 적용돼 12년에 그쳤던 1심 형량은 항소심에서 ‘강간 및 살인미수’로 변경돼 2심에서 20년으로 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저자는 스스로를 ‘가장 색채로운’ 피해자라고 말한다. 통념에 갇힌 피해자답게 우울해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걸 꺼리지도 않는다. 보복 범죄를 다짐하는 범인을 ‘잡범’이라고 일축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합의해 달라”는 뻔뻔한 범인의 태도에 “미친 것 아니야?”라며 분노한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성범죄 피해자들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그들과 연대하고자 한다. 국적도 나이도 다른 버크의 미투와 겹쳐 보이는 이유다.
사실 그의 말대로 위축되어야 할 인물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김진주가 더 이상 ‘색채로운’ 피해자가 아니기를 바란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당당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든 “내가 범죄를 당한다면 김진주처럼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이 책을 교과서처럼 집어 들 것 같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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