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물가 뛰고 임금 올라 웃지만…근본적 체질 개선은 미지수
‘닛케이 4만 시대’ 계기로 본 일본 경제
일본 정부가 2001년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공식화한 이후 23년 만에 ‘디플레이션 탈피’를 선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 등 일정 정도 ‘선순환’ 흐름이 만들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일본은행(BOJ)이 내달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정부와 BOJ는 일본 경제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면 2% 이상의 물가 상승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 등으로 크게 상승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대비 3.1% 상승하며 1982년 이후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저로 인한 기업 수출 증가와 함께 임금 인상도 이어져 1990년대 자산 거품 붕괴 이후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에 빠져들게 했던 초기 요인이 하나 둘 해소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 적지 않다며 섣부른 기대감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실질임금은 22개월 연속 하락
엔저 효과로 수출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내수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있어 기업 경영환경은 좋지 않은 편이다. 이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 인상이 부담스러운 상황인데 기업도 ‘소비→투자→경기 회복’ 사이클을 되살려야 한다는 판단에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임금과 함께 물가가 상승한 만큼 일본의 실질임금은 22개월 연속 하락했다. 그러나 물가만 뛴 한국과 달리 물가·임금이 동시에 오르면서 일본 경제에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 증시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것도 임금 인상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살림살이에 여유가 생기면서 개인 투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증시 투자 환경도 좋아졌다. 지난해 시행한 기업 밸류업 상승 프로그램이 본격화하고 있고, 올해 1월에는 소액투자비과세제도(신NISA)가 개편돼 세제 혜택 폭도 커졌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3개월간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최상위)시장의 매매 동향을 보면 개인 투자비중이 19%에서 25%로 증가했다”며 “NISA 관련 거래대금은 지난해 11월 5조 엔 수준에서 올 1월 61조 엔 규모로 대폭 늘어났다”고 전했다.
일 “2027년까지 10만개 스타트업 창출”
저출산·초고령화 등으로 일본의 노동생산성이 바닥권을 맴돌고 있는 것도 전문가들이 일본 경제를 낙관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2022년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0위로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1980년대까지만 해도 4%대였던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23년 0.25%까지 떨어졌다. 요미우리신문은 7일 “일본 정부가 출산율, 노인 노동 참가율 등이 오르지 않으면 내년부터 2060년까지 실질 GDP 성장률이 연평균 0.2%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고강도 저출산·초고령화 대책을 시행 중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7일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출생아 수(속보치)는 전년보다 5.1% 감소한 75만863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까지 8년 연속 감소하면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주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가 ‘이제는 (생산인구 부족)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노동 인구 증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일본은 특히 외국인 노동자 중 고임금 인재뿐만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까지 정착해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향후 일본 경제가 얼마나 살아나고,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관건”이라면서도 “일본 경제가 살아난다는 건 거꾸로 한국 경제가 위기라는 뜻이기 때문에 (일본 경제 회복을) 지켜만 보고 있어선 안된다”고 설명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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