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곳"이 직장이라면? 국립중앙박물관 33년 직원이 말하는 박물관의 힘
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 인터뷰
한국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박물관·미술관 장기 근속자들이 있다. 그중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에서 33년간 일하고 있는 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58)을 중앙SUNDAY가 만났다. “지금 국박에서 일하고 있는 학예사 포함해 모든 분들 중에 저보다 오래 일한 사람은 없습니다. 국박이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할 때 지금 (중앙통로) ‘역사의 길’에 우뚝 서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이 유물 중 첫째로 설치되는 것도 보았고, (프랑스군에 약탈당했다가) 145년 만인 2011년에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가 수장고로 들어가는 장면도 보았지요.”
박물관의 역사와 장소 구석구석에 대해 막힘 없이 말하는 이 경력관에게서 박물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배우 배용준의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2009), 방탄소년단(BTS)의 '디어 클래스 오브 2020' 영상 촬영(2020) 등 국박이 첨단 한류와 만나는 과정과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 국박에서 일하시게 된 계기는요.
A : “원래는 시나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하고 대학도 국문과를 나왔어요. 그러다 국박의 ‘박물관 신문’ 담당자로 들어온 거죠. 일을 하다 보니 박물관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박물관 내에서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서 PR을 공부했고, 국박이 용산으로 이전 재개관하면서 홍보팀이 생겨서 홍보 전문이 된 것이지요.”
Q : 사진을 찍게 되신 것도 박물관 업무와 관련이 있나요.
A : “카메라를 사게 된 계기는 99년에 아이가 태어나서 육아일기를 쓰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사진기를 구비하고 나서 출근을 하니 박물관 정원이 너무 예뻐서 찍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자연에서 힐링을 많이 받아요. 전시실에 가서 치유를 받을 때도 주로 회화실에 가서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바라봅니다. 홍보직은 학예직과 행정직을 연결해 주는 섬과 같은 존재인데, 그게 또 외로울 때도 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박물관 정원에 나가 이곳저곳에서 꽃을 찍습니다. 그리고 출근할 때마다 어제 찍은 예쁜 꽃 사진을 하나 골라서 마음을 다잡는 문구를 하나씩 넣어 매일매일 소셜미디어에 올리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 분 두 분 팬들이 생기고 그 분들이 자신이 연 갤러리에서 초대해 주셔서 전시도 하고, 출판사 대표를 소개해 주셔서 책을 내게 됐어요.(『빛, 내리다(2018)』『보고, 쉬고, 간직하다(2023)』) 물론 유물도 찍습니다. 놓치기 쉬운 불상의 뒷모습 등을 찍곤 해요. 거기서 힐링을 받기도 하고요.”
Q : 국박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공간들은요.
A : “개편된 2층 ‘기증Ⅰ’실을 좋아합니다. 관람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요. 한 벽에 가득 기증된 유물들이 보이고, 그 앞에는 현대미술가의 그림을 모티프로 한 소파와 테이블이 있습니다. 그 파란 그림은 김선형 작가의 작품인데, 마침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이거든요. 또한 조건 없이 자신들의 소장품을 기증한 분들의 영상이 나오는데 제가 박물관에서 일하며 직접 인연이 닿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그리고 2층의 제일 안쪽에 사랑방으로 꾸며진 곳이 있는데, 이곳을 좋아해요.”
Q : 영화들을 보면, 관람시간 아닌 때 인적 없는 박물관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실제로 어떤 기분인가요.
A : “박물관 유물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고 수많은 물건들 중 살아남은 것들이잖아요. 그래서 유물마다 어떤 강한 기(氣)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관람객이 없을 때 그 영적인 느낌이 더 강해지죠. 그럴 때 유물 앞에 서면 몇십 년 밖에 안 산 미물인 저에게 유물이 ‘너 그동안 씩씩하게 살아왔어. 흔들리지 마. 너의 길을 가’ 이런 얘기를 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 무서울 때도 있어요. ”
Q : 그러고 보니 오래된 유물이 많은 박물관에 귀신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요.
A : "여기 용산에서는 귀신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고요. (웃음) 예전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 1996년 철거)에 박물관이 있었을 때(1986년-1996년) 경비하시는 분들에 1층에서 귀신을 자꾸 본다고 한 적이 있어요. 결국 고사도 지냈답니다."
Q : 박물관에서 일하는 것이 본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A : “모든 문화 콘텐트의 원천이 사실 박물관에 있는 거잖아요. 그 속에서 살고 또 홍보 일을 하다 보니 본래 꿈꿨던 시나 소설은 아니지만 이 일에서도 예술적인 감각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생기고요. 또 제가 원래 극 I(내향성) 성격인데, 좀 더 밝고 활기차게 되었고, 이 공간과 일에서 충전을 받아온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살아온 시간 중에서 박물관에 없던 시간보다 박물관에 있던 시간이 더 많아요. 박물관은 저의 또 다른 집인 것 같아요.”
■ 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이 뽑은 인생 유물 5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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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가사유상
2 매화초옥도
3 청자 사자모양 뚜껑 향로
4 분청사기 철화 연꽃 물고기 무늬 병
5 괘불
」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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