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곳"이 직장이라면? 국립중앙박물관 33년 직원이 말하는 박물관의 힘

2024. 3. 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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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 인터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3년간 일하고 있는 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로 기증관을 꼽았다. 최기웅 기자
지난 달 종합 베스트셀러 1위(교보문고 기준)를 차지한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유명 시사지 ‘뉴요커’의 젊은 기자가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다가 미술관 경비원으로 취직해 그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10년간 일하며 치유 받은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유물과 예술을 전공자의 어려운 지식이 아닌, 삶과 밀착된 힐링과 깨달음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 또 박물관·미술관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을 일상의 일터로 삼은 사람의 특수한 경험 등이 책의 인기 요인일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박물관·미술관 장기 근속자들이 있다. 그중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에서 33년간 일하고 있는 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58)을 중앙SUNDAY가 만났다. “지금 국박에서 일하고 있는 학예사 포함해 모든 분들 중에 저보다 오래 일한 사람은 없습니다. 국박이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할 때 지금 (중앙통로) ‘역사의 길’에 우뚝 서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이 유물 중 첫째로 설치되는 것도 보았고, (프랑스군에 약탈당했다가) 145년 만인 2011년에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가 수장고로 들어가는 장면도 보았지요.”

박물관의 역사와 장소 구석구석에 대해 막힘 없이 말하는 이 경력관에게서 박물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배우 배용준의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2009), 방탄소년단(BTS)의 '디어 클래스 오브 2020' 영상 촬영(2020) 등 국박이 첨단 한류와 만나는 과정과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 국박에서 일하시게 된 계기는요.
A : “원래는 시나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하고 대학도 국문과를 나왔어요. 그러다 국박의 ‘박물관 신문’ 담당자로 들어온 거죠. 일을 하다 보니 박물관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박물관 내에서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서 PR을 공부했고, 국박이 용산으로 이전 재개관하면서 홍보팀이 생겨서 홍보 전문이 된 것이지요.”

Q : 사진을 찍게 되신 것도 박물관 업무와 관련이 있나요.
A : “카메라를 사게 된 계기는 99년에 아이가 태어나서 육아일기를 쓰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사진기를 구비하고 나서 출근을 하니 박물관 정원이 너무 예뻐서 찍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자연에서 힐링을 많이 받아요. 전시실에 가서 치유를 받을 때도 주로 회화실에 가서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바라봅니다. 홍보직은 학예직과 행정직을 연결해 주는 섬과 같은 존재인데, 그게 또 외로울 때도 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박물관 정원에 나가 이곳저곳에서 꽃을 찍습니다. 그리고 출근할 때마다 어제 찍은 예쁜 꽃 사진을 하나 골라서 마음을 다잡는 문구를 하나씩 넣어 매일매일 소셜미디어에 올리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 분 두 분 팬들이 생기고 그 분들이 자신이 연 갤러리에서 초대해 주셔서 전시도 하고, 출판사 대표를 소개해 주셔서 책을 내게 됐어요.(『빛, 내리다(2018)』『보고, 쉬고, 간직하다(2023)』) 물론 유물도 찍습니다. 놓치기 쉬운 불상의 뒷모습 등을 찍곤 해요. 거기서 힐링을 받기도 하고요.”

Q : 국박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공간들은요.
A : “개편된 2층 ‘기증Ⅰ’실을 좋아합니다. 관람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요. 한 벽에 가득 기증된 유물들이 보이고, 그 앞에는 현대미술가의 그림을 모티프로 한 소파와 테이블이 있습니다. 그 파란 그림은 김선형 작가의 작품인데, 마침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이거든요. 또한 조건 없이 자신들의 소장품을 기증한 분들의 영상이 나오는데 제가 박물관에서 일하며 직접 인연이 닿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그리고 2층의 제일 안쪽에 사랑방으로 꾸며진 곳이 있는데, 이곳을 좋아해요.”

Q : 영화들을 보면, 관람시간 아닌 때 인적 없는 박물관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실제로 어떤 기분인가요.
A : “박물관 유물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고 수많은 물건들 중 살아남은 것들이잖아요. 그래서 유물마다 어떤 강한 기(氣)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관람객이 없을 때 그 영적인 느낌이 더 강해지죠. 그럴 때 유물 앞에 서면 몇십 년 밖에 안 산 미물인 저에게 유물이 ‘너 그동안 씩씩하게 살아왔어. 흔들리지 마. 너의 길을 가’ 이런 얘기를 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 무서울 때도 있어요. ”

Q : 그러고 보니 오래된 유물이 많은 박물관에 귀신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요.
A : "여기 용산에서는 귀신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고요. (웃음) 예전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 1996년 철거)에 박물관이 있었을 때(1986년-1996년) 경비하시는 분들에 1층에서 귀신을 자꾸 본다고 한 적이 있어요. 결국 고사도 지냈답니다."

Q : 박물관에서 일하는 것이 본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A : “모든 문화 콘텐트의 원천이 사실 박물관에 있는 거잖아요. 그 속에서 살고 또 홍보 일을 하다 보니 본래 꿈꿨던 시나 소설은 아니지만 이 일에서도 예술적인 감각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생기고요. 또 제가 원래 극 I(내향성) 성격인데, 좀 더 밝고 활기차게 되었고, 이 공간과 일에서 충전을 받아온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살아온 시간 중에서 박물관에 없던 시간보다 박물관에 있던 시간이 더 많아요. 박물관은 저의 또 다른 집인 것 같아요.”

■ 이현주 홍보전문경력관이 뽑은 인생 유물 5선



1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공간입니다.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천천히 걸어서 만나게 되지요. 2021년 사유의 방이 생기기 전에는 두 반가사유상을 독립 공간에서 함께 전시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총 3회, 1986년, 2004년, 2015년). 용산으로 이사 오기 바로 전인 2004년 불교조각실에 다른 모든 유물들을 빼고 반가사유상 두 점만 남겨놓았을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사방으로 펜스를 치고 기다란 의자를 두었습니다. 그때 몇 번씩 전시실에 내려가 바라보았습니다.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보는 반가사유상은 그 느낌이 달랐습니다. 특별한 조명도 없었는데 아우라를 느꼈습니다. 지금은 사유의 방에서 언제든지 두 반가사유상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공간에서 각자 자신만의 고민이 온전히 드러난 시공간에 접속하는 것 같습니다. 1400년전에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이 고민하고 있는 공간. 그래서 모두가 말을 줄이고 생각에 집중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2 매화초옥도
매화초옥도
“이 그림은 동원 이홍근 선생님이 기증했습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전까지 가장 많이 기증하신 분입니다. 기증 때도 유물 포장하러 온 박물관 직원들에게 늘 밥을 지어 대접했다는 일화가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2021년 그의 기증을 기리는 전시에 이 그림이 나와서, 사무실에서 전시실로 갈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러서 보았습니다. 그림을 그린 전기(1825-1854)는 약재상을 하는 중인으로서 서화를 수장하고 감식하고 거래도 했다고 합니다.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오래 살았다면 어떤 그림을 또 남겼을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하얀 점들이) 매화꽃이 아니라 커다란 눈송이인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매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얼마 전 컴퓨터 화면을 이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곧 피어 향기를 흩뿌릴 매화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3 청자 사자모양 뚜껑 향로
청자 사자모양 뚜껑 향로와 사자의 뒷모습. 고려시대. 국보 [국립중앙박물관]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잖아요. 이 사자모양 향로는 뒷모습이 더 매력적인 상형 청자입니다. 꼬리는 납작해요. 몸과 가까운 꼬리 아래쪽엔 몽글몽글하게 문양처럼 모양이 잡혀 있습니다. 등을 덮고 목덜미까지 올라간 넓고 기다란 꼬리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늘어진 귀 모양과 함께 너무 귀엽지요. 앞모습은 부릅뜬 사자의 눈과 향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살짝 벌어진 입 안에 있는 이빨들이 보입니다. 코는 들창코처럼 들려 있습니다. 조금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뒷모습은 반전입니다.”

4 분청사기 철화 연꽃 물고기 무늬 병
분청사기 철화 연꽃 물고기 무늬 병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사이에 존재했던 도자기입니다. 청자가 주는 화려함. 백자에서 느껴지는 단아함과 우아함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전 분청의 소박함과 자연스러운 색감이 좋고 오히려 현대적인 세련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중에 쓱쓱 그려낸 물고기 병들은 최고의 화가가 그려낸 그림입니다.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물고기 문양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5 괘불
괘불
매년 석가탄신일이 다가오면 2층 불교회화실에 거대한 괘불이 걸립니다. 괘불을 걸기 전에 바닥에 종이를 깔고 괘불을 펴고 컨디션 체크를 위해 무릎을 꿇고 있는 학예사를 보면 참 경건한 마음이 듭니다. 컨디션 체크 후 다시 말아서 벽에 붙인 다음 도르레를 달아 조금씩 펼치면서 괘불을 끌어올리며 설치를 합니다. 이곳에 거는 괘불은 신통력이 있어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할 때 더 잘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괘불이 걸리지 않는 때에는 예전에 걸린 세 점의 괘불을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작품이 상영됩니다. 그 중 저는 ‘영천 은해사 괘불’(1750년, 높이 11m, 보물)을 특히 좋아합니다. 화면 중심에는 만개한 연꽃을 밟고 홀로 선 부처가 자리해 있고, 부처 주변에는 모란꽃과 연꽃이 꽃비처럼 흩날립니다. 아름다운 꽃과 새소리, 즐거움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정토(淨土)입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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