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 선택할 권리, 아직 금기인가 이제 공감인가
[비욘드 스테이지] 조력존엄사 다룬 연극 ‘비Bea’ 화제
최근 유럽서 안락사·조력존엄사 확산
토크콘서트 현장도 비슷했다. 출연배우 방은진·강명주·김주연·이지혜·강기둥·김세환 전원이 참석했고, 관객까지 참여해 조력존엄사에 대한 공감과 남겨진 이들의 고통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대화가 오갔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연극의 톤 대로 경쾌하게 진행됐지만, 방은진과 일부 관객이 최근 직접 마주한 죽음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2010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 작품을 2011년부터 국내에 제안했던 석재원 프로듀서는 “죽음이라는 어두운 단어를 자기성찰이나 사랑으로 승화시켜 죽음을 통해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음을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면서 “2011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 이슈는 이르다는 인식 때문에 제작이 무산됐지만 세상이 변했다. 이제 스위스에 가서 실행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미 찬반 이슈는 넘어섰고,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을 공감하고 존중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모두의 해피엔딩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 고려되는 조력사망은 흔히 ‘안락사’와 ‘조력존엄사(조력자살)’ ‘존엄사’로 구분된다. ‘안락사’는 통상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방식으로, 2002년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합법화된 후 벨기에·룩셈부르크·캐나다·콜럼비아·미국과 호주 일부 주, 뉴질랜드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조력존엄사’는 환자가 약물을 직접 투여해 생명을 끊는 방식으로, 흔히 말하는 ‘스위스 안락사’가 해당된다.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으로, 한국에서도 2018년 합법화됐다.
사회적 약자들, 그런 선택 내몰릴 수도
유럽에서는 안락사와 조력존엄사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5%에 이르고, 지난해 허용 연령을 만 12세 미만 어린이까지로 확대했다. 유일하게 외국인 조력존엄사가 가능한 스위스에서는 한국인도 10명 이상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선 2022년 6월 조력존엄사 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와 종교계의 강한 반발로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80% 이상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의향서 등록자도 222만명에 달한다.
지금 우리 문화계가 ‘존엄한 죽음’에 주목하는 이유다. 지난달 7일 개봉한 독립영화 ‘소풍’은 고령으로 대소변도 가리기 힘든 두 친구가 세상 소풍을 마무리하고 자발적인 ‘귀천’을 암시한다. 국민배우 나문희·김영옥·박근형의 열연에 임영웅의 노래 ‘모래알갱이’까지 삽입해 눈물샘을 자극하며 32만 관객을 동원했고, 나문희와 김영옥 두 배우는 5일 MBC ‘PD수첩’에도 나와 존엄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극 ‘비Bea’가 토크콘서트를 연 것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다. 토크콘서트의 주제는 석 프로듀서의 말대로 조력존엄사 찬반 논쟁이 아니라 작품의 키워드인 ‘공감’이었다. “침대에 8년이나 갇혀 있었고 앞으로도 희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다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스런 삶을 조금 낫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강명주 배우)라는 취지다.
하지만 조력존엄사가 합법화되면 치료 불가능한 환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현대판 고려장’에 내몰리게 되는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다. 실제 캐나다에서 살 집이 없어 조력존엄사를 선택한 경우가 보고됐는데, ‘소풍’과 같은 날 개봉한 일본영화 ‘플랜75’의 상황과 일치한다. 초고령화 시대에 국가가 효율성이 낮은 고령자의 조력사를 지원한다는 영화의 발상이 극단적인 상상이 아님을 방증하는 사례다. 시신이 화장터가 아니라 폐기물 소각장에서 처리된다는 영화의 설정도 기억할 만하다.
■ 조력존엄사 현장 경험한 신아연 작가 “안락사 논쟁, 찬반 팽팽해야 건강한 사회”
Q : 현장 동행 후 왜 반대하게 됐나.
A :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이렇게 처분하는 건 아니라고 봤고, 그분의 뜻으로 책을 쓰면서 신앙을 갖게 됐다. 그분은 태어나는 건 내 의지가 아니지만 가는 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생명이라는 동전의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오는 게 내 선택이 아니었듯 가는 것도 내 선택이 아니라는 내면의 음성을 들었다.”
Q : 말기 환자들의 고통을 공감 못하는 것 아닌가.
A : “모서리에만 찧어도 데굴데굴 구르는데 왜 모르겠나. 그런 환자를 넘어 ‘소풍’이나 ‘플랜75’처럼 고령자나 사회적 약자에게로 대상이 넘어간다는 게 문제다. 네덜란드에서 어린아이까지 안락사를 허용한 것처럼 법은 유기적으로 움직이니 해석과 적용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다. 캐나다에서 처음 조력사를 시행한 의사도 ‘조력사의 실상은 육체의 극한이 아니라 정신적인 한계에서 하는 선택’이라고 했는데, 기저귀 차고 추한 꼴 보이고 싶지 않은 현대인의 자아의식인 거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있나.”
Q : 남겨진 사람들도 직접 목격했는데.
A : “삶을 스스로 중단하는 걸 본 가족은 트라우마가 생긴 듯 했다. 그래서 죽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됐다. 남겨진 사람은 남은 생을 추억으로 살 텐데, 조력존엄사로 마감하는 건 피가 응고되지 않는 느낌이다.”
Q : 찬성 80% 속 반대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한다면.
A : “안락사 논쟁은 찬반이 팽팽한 게 건강한 사회다. 급격하게 찬성 쪽으로 기운다는 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과잉의료를 없애고 예전처럼 집에서 임종할 수 있게 하는 게 대안이라 본다. 우리는 의료비도 본인부담이라 가족 눈치를 보며 내가 죽어줘야 한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서양의 선도국들은 개인주의에다 의료비도 국가지원이라 선택이 자유로울 수 있지만, 우리 사회는 백번 양보해도 시기상조다. 가족중심주의 가치관부터 바뀌어야 한다.” 」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