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상의 정치성·상술, 올핸 ‘오펜하이머’ 택하나
━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모든 건 다 ‘기생충’ 탓(덕)이다. 2020년 미국의 제92회 아카데미상(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이 영화가 무려 4개 부문, 그것도 원래는 웬만해서 같이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작품상과 감독상 모두를 비롯해 각본상과 국제장편영화상까지 수상하고부터 모든 것이 다 뒤집혔다.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MPAS :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는 ‘기생충’에게 4개의 오스카상을 파격적으로 몰아 준 후 마치 예수가 그랬듯이 ‘이제 다 이루었도다’의 표정을 지었다.
‘가여운 것들’ 엠마 스톤 여우주연상 전망
이후 아카데미는 여성들에게, 성 소수자들에게, 외국인들에게도 차례로 문호를 개방시켰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마음을 열었다. 2002년 흑인 여배우 할리 베리가 영화 ‘몬스터 볼’로 여우주연상을 탄 것은 흑인 인종차별 문제와 여성 차별 문제를 한번에 돌파한 셈이 됐다. 외국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사실상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닌데, 인정하고 존중하는 척 사실은 ‘외국어영화상’이란 이름으로 차단막을 쳤던 유럽 영화들에 대해 국제장편영화상이란 이름으로 공식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 2020년이다. 여기에 지역의 장벽을 해체시킬 마지막 관문이 남았던 바, 바로 아시아 영화들을 끌어 들이는 것이다. 그런 등등의 요소에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는 인물과 영화가 한편 있었으니 봉준호와 ‘기생충’이었다.
마침 봉준호가 미국의 한 영화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그는 오스카상에 대해 “미국 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로컬 상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아카데미가 늘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었으며 마침 미국 할리우드는 전략적인 의미에서 아시아 시장을 확대할 강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던 시기였다. 특히 한국 시장은, 6억5000의 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각각 14억 인구 규모의 인도와 중국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중요한 교두보였다. 할리우드로서는 스스로가 몸을 낮추지 않을 수 없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기생충’과 같은 맞춤형 작품, 그것도 걸작이 나왔다.
아카데미는 그렇게 스스로 장벽을 무너뜨렸다. 당시는 미국이 뉴멕시코 지역에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며 장벽을 쌓을 때였다. 동시에 (미국 부호 유태인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립시킬 때였다. 당시 대통령 트럼프가 정치와 외교를 고립의 길로 가져 가려 할 때 미국의 문화예술가들은 그 장벽을 베를린 장벽처럼 무너뜨려야 한다는 정치적 욕망을 작동시켰다. 아카데미상은 이렇게 오만 가지 사회적 정치적 현상이 둘러 싸여 있다.
‘추락의 해부’는 각본상 수상 정도가 유력해 보인다. 셀린 송이 만든 ‘패스트 라이브즈’와 경합을 벌여야 하지만 작품의 규모와 사회적 이슈를 생각할 때 ‘추락의 해부’가 더 우세해 보인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은 1997년에 나온 한국영화 ‘넘버3’ 감독 송능한의 딸이어서 국내 영화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중이긴 하다. 두 작품 모두 뛰어난 영화다. 다만 각본의 깊이 면에서 ‘추락의 해부’가 한 수 위로 보인다.
‘추락의 해부’의 산드라 휠러가 여우주연상에서 유력해 보였던 바로 그 순간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의 엠마 스톤이 나와 버렸다. ‘추락의 해부’가 자꾸 수상권에서 멀어져 보이는 것은 치열한 경합 작품들이 후반 들어 급격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가여운 것들’은 한 마디로 ‘섹스 오딧세이’ 같은 작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배우가 혼신과 투혼의 연기를 펼쳤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카데미 투표단은 엠마 스톤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작품상과 감독상 면에서도 ‘추락의 해부’는 두 개의 거산(巨山)을 넘어야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와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이 그것이다. 아마 넘기 힘들 것이다.
셀린 송 ‘패스트…’ 후보에 만족할 수도
안타까운 것은 셀린 송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후보에 오른 것 정도로 만족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훌륭한 작품이고 특히 오프닝 씬이 뛰어 나지만 이번 아카데미상은 한국 작품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신예급이었던 중국의 클로이 자이가 2021년 ‘노매드 랜드’로 작품상을 탄 것을 고려하면 작품상 수상이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될 것이다. 아카데미상은 매우 정치성이 높고 높은 지략의 상술이 동원되는 상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경제국제적 상황은 미국 아카데미의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