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AI 시대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

2024. 3. 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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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KT 부문장·『커넥팅』 저자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천재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16세에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35세에 대만의 디지털 장관이 된 오드리 탕의 말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었는데 쓸모없는 사람이 되라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 탕의 말은 너무 일찍부터 자신을 특정한 용도로만 정의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지나치게 쓸모를 강조해서 오히려 문제라는 것이다. 너무 일찍부터 자신의 쓸모를 특정 영역으로 정의하면 이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쓸모의 유효기간이 다할 때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찾기 어렵게 될 수 있다.

「 일찍 자신의 용도 특정하면
향후 창의적 대응 어려워져
시간의 80%는 지금 일에 쏟고
나머지는 다음 단계 준비해야

온선데이
또한 자신에게 더 재능 있는 영역이 있더라도 새롭게 도전하거나 발견하지 못한 채, 젊은 시절 배웠던 그 특정 영역을 중심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게 된다. 한 야구 트레이너가 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한국은 지도자가 성급하게 재능을 단정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1학년부터 줄곧 한 포지션만 시킨다. 선수는 다른 것을 할 줄 모르기에 그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도태된다. 투수는 어깨 혹사로 이른 나이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마이크로 매니징 식의 쉼 없는 훈련을 받다 보니 잘하기는 하는데 창의력이 부족하다.

반면, 미국은 가능한 여러 포지션을 두루 시킨다. 각 포지션에서 요구하는 운동 능력이 다르기에 여러 포지션을 경험하면 다양한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가지를 해 보면 진짜 자신이 재능 있는 포지션을 발견할 수 있다. 틀 안에 가두지 않고 마음껏 해 보게 하는 것은 초기에는 발전이 느린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유연성과 창의력으로 보답한다.” 오드리 탕의 말은 이 야구 지도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향후 AI와 로봇 시대를 헤쳐갈 젊은이들은 과거의 전통 세대와 달리 몇 차례의 경력 전환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너무 일찍 자신의 용도를 특정하여 한 영역에 가두면 새로운 변화에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 ‘망치’라는 쓸모로만 자신을 규정하면, 박을 못이 주위에서 사라질 경우 자신도 더 이상 존재가치를 잃고 버려지게 될 뿐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서 이제부터 젊은이들의 커리어는 ‘커리어 패스’에서 ‘커리어 포트폴리오’로 변화할 것이라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커리어 패스’란 마치 사다리를 오르듯 한 단계씩 승진해 가는 모습이다. 반면, ‘커리어 포트폴리오’란 다양한 자신의 역량, 강점, 경험을 개발하여 펼쳐 놓고, 필요에 맞춰 이들을 유연하게 조합하여 대응한다는 의미다. 기업인 셰릴 샌드버그 또한 “커리어는 정글짐과 같다”라는 표현으로 비슷한 말을 했다. 위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도 움직이고, 내려가기도 하고, 시작하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라는 것이다. 유연성을 갖고 움직이며 직함보다는 직무 능력을 쌓으라는 의미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 연결하기(connecting dots)’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서체 디자인, 인도 여행, 맥킨토시 개발, 픽사 경험 등 서로 관련 없는 듯 보이는 경험들을 연결하여 애플에서의 스마트폰 혁신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그러면 AI 시대에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오드리 탕이 말하는 80:20의 룰은 새겨 들을 만하다. 80%의 시간은 현재 일에 집중하여 전문성을 기르되 20%의 시간은 다음 단계에 필요한 역량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현재 하고 있던 일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치되거나 쇠락한다면 준비해 두었던 나머지 20%를 활용해 빠르게 변신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 일을 맡았을 때에도 역시 또 다음의 20%를 준비해 둬야 함은 기본이다. 또 한가지, 자주 만났던 사람들만 만나지 말고 외부 커뮤니티를 통해 기존 사고 이외의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확장하라고 한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 또한 이직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기회는 잘 알고 자주 아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확률이 더 높다는 주장을 했다. 이를 ‘약한 연대(weak tie)의 힘’이라고 한다. 요컨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니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새로운 쓸모를 만들어 내는 레고블록 같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전통 세대와 다른 AI 세대의 커리어 전략이다.

신수정 KT 부문장·『커넥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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