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파도와 어기여차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D-A-Bm-F# G-D-Em-A….’ 기타 선생님이 코드를 적기 시작한다.
나는 숨죽인 채 적힌 코드를 두 눈 부릅뜨고 본다. 혼자 코드대로 어떻게든 쳐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실패다. 다행히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셨다. 몇 마디 연주를 마치고 선생님이 덧붙였다. “이게 레이지본 노래 <어기여차>예요.”
아…?! 당황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수십 번 아니 백여 번 정도는 들은 거 같은데… 선생님이 말하기 전까지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세상에나.
레슨 초반 그 노래를 기타로 치고 싶다고 한 적 있는데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짜증, 분노, 의욕 상실 같은 감정에 휘둘렸다. 그런 가운데도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려고 저 바닥 끝 에너지를 그러모아야 할 때 나는 이 노래를 들었다.
일단 가사가 좋다.
“어기여차 디여라차. 파도는 날 들고 내리고 집어도 삼키네.
비바람 지나간 바닷가 해가 뜨는 거니까 노래하세 노를 잡고.
그래 어차피 세상이란 날 가만 둔 적도 없었지 Right.
살아온 나날 쉬운 것보다 힘든 시간들이 더 많았어.
거친 저 바다 같았던 내 삶 내 맘에도 파도 쳐 항상….”
가사를 음미하며 나는 종종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유명한 그림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떠올리기도 했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 이 곡을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리라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이 컸지 내가.
이후로도 나는 하루 일을 시작할 때, 혹은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운전하면서 긴장을 풀 때(초보운전이다) 등 무시로 <어기여차>를 듣는다. 그런데도 기타 연주를 듣고 노래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짐작하건대 ‘극’ 텍스트형 인간인 나는 가사만 있었다면 심지어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거나 가사가 몇 군데 틀렸더라도 단박에 이 노래를 알아채고 틀린 가사까지 바로잡았겠다.
음악인을 멜로디형 인간과 리듬형 인간 둘로 나눈다면, 나는 어느 쪽에도 맞지 않는 텍스트형 인간이다. 애초에 타고나기를 멜로디형도 리듬형도 아니어서 그런가. 기타 실력이 여간 늘지 않는다.
작년 4월 마흔엔튜닝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쓴 글을 훑어보곤 무척이나 놀랐다. 무려 11개월 전 일인데도 그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나는 리듬 감각이 없고 코드도 단박에 짚지 못하며 더군다나 코드 변경이라도 할라치면 박자를 놓치고 만다. 이런 나를 보는 기타 선생님은 오죽 답답할까 싶다.
부디 선생님이 이 늦된 레슨생을 보며 고난과 역경의 파도를 떠올리거나, 레슨 시간이라는 험난한 파도가 언제 지나갈지 막막해하지 않길. 다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비바람 지나간 바닷가 해가 뜨는 거니까’ 좋은 날 오겠지요 선생님. 저도 잘하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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