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와 소금 없이는 안 돌아가는 세상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인플루엔셜
21세기 첨단산업사회에 모래와 소금이 필수라는 얘기는 언뜻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한데 쉬운 예로, 반도체는 모래 없이 만들 수 없다. 반도체의 기반인 웨이퍼의 재료는 실리콘. 소금 광산에서 석영 덩어리를 채굴하고, 용광로에 녹여 실리콘을 만들고, 다시 한층 순도 높은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등의 과정을 세계 각지에서 거쳐야 한다. 이뿐만 아니다. 모래에서 유리가, 유리에서 광섬유가 나온다. 모래가 없으면 반도체가 탑재된 스마트폰은 물론 초고속통신망도, 인터넷도 없다는 얘기다. 온갖 건설과 건축에 쓰이는 콘크리트는 말할 것도 없다.
반도체는 실은 소금이 없어도 만들 수 없다.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과정에는 소금을 전기분해해서 얻는 염화수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소금은 그 자체로 인체 생존에 필수다. 게다가 소금에서 나온 염소로 식수를 정수하고, 각종 의약품을 만든다. 인류가 화약과 비료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소금의 일종”인 질산칼륨을 통해서다.
이 책의 큰 특징은 이런 이야기를 세계 각지의 현장과 함께 전하는 점이다. 저자가 다녀온 현장은 그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역사와 규모가 상당한 여러 광산·제철소·정유공장 등과 대만의 TSMC 반도체 공장, 미국 네바다주 테슬라 기가팩토리 등을 아우른다. 이런 현장의 규모를 비롯해 각종 수치를 체감하기 쉽게 표현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예컨대 물질을 얻어내는 작업이 이뤄지는 지하의 깊이를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하는 식이다.
특히 기억할만한 수치가 있다. 인류 역사 초창기부터 1950년까지 캐낸 물질의 총량보다 더 많은 물질을 2019년 단 한 해 만에 캐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문제를 상상할 수 있는 실마리는 여럿이다. 이를테면 구리 광산으로 유명한 칠레의 추키카마타는 집과 건물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살지 않는 유령 마을이 되었다. 매장량이 고갈된 탓이 아니다. 채굴 과정에서 쏟아진 흙과 돌 등이 마을까지 뒤덮고, 제련 과정에서 나온 유독 가스가 건강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구리 등의 새로운 채굴처로 심해에 눈을 돌리는 이들도 있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지상에서 그랬듯 깊은 바다에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는 일이다.
물질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저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지구촌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시선으로 이어진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자는 폭넓은 공감대에도 여전히 석유 수요는 강력하다. 한편으로 이른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물질의 수요를 그저 줄이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전기차는 일반 자동차보다, 태양광 패널은 일반 발전소보다 몇 배나 많은 구리가 쓰인다. 저자는 ‘순환 경제’로도 시선을 이끈다. 책에 따르면 폐품이 재활용되는 비율이 강철은 70~90%, 알루미늄은 42~70%, 구리는 43~53%다. 반면 배터리 등으로 주목받는 리튬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온종일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 매여 있다 보면, 마치 세상이 클릭이나 터치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물론 대단히 큰 착각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런 ‘비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물질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나아가 현재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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