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차기 사건’ 이후 500일의 고군분투
김진주 지음
얼룩소
20여년 전 미국에서 권총 강도를 당한 적 있다. 주말 오후 대로변에서 지갑과 여권을 뺏겼다. 현지인들은 “어리숙한 외국인이라 그나마 살았다”며 “신고 못 하게 총을 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현지 경찰서와 한국 영사관을 오갔지만 ‘내 편’은 없었다.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외국에서, 몸은 안 다쳤는데도 그랬다.
하물며 한국 땅에서, 소위 ‘묻지마 폭행’을 당해 죽을 뻔했다면? 충격으로 몸이 마비되고 기억을 잃었다면? 그런데도 수사·재판에서 소외되고, “구치소 나가면 때려죽이겠다”는 위협에 시달렸다면?
20대 디자이너 김진주(필명)씨가 경험한 ‘날벼락’이다.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인 그는 그래도 도망가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고 잠들면 세 시간 만에 깼고, 어쩔 때는 침대 시트가 다 젖도록 땀을 흘려댔지만” 맞서 싸웠다. 법을 공부해 스스로 피해를 증명하고, 적극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수사기관이 중상해·살인미수로 처리하려던 사건을 성범죄 살인미수 사건으로 바꿨다. 1심에서 범인의 형량을 8년이나 경감해줬던 사법부 판단도 바꿨다. 이 책은 그 500일간의 ‘고군분투기’다.
저자는 사건이 일단락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유튜브 채널(‘피해자를 구하자’)·온라인 카페(‘대한민국 범죄피해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다른 피해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칭 “프로불편러”가 되어 보복범죄 예방 시스템 구축, 가해자의 반성·심신미약 등 “사건과 관련 없는” 양형 기준 폐지, 피해자의 알 권리 보장을 공론화했다. 부실했던 초기 수사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범죄 대처법을 알려주는 온라인 플랫폼도 준비 중이다. “이렇게 억울한 일을 나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겪게 하지 않기 위해서” “피해자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들이 숨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내내 무겁고 힘든 얘기일 것 같지만, 책 분위기는 의외로 가볍고 밝다. 법정에 갈 때도 일부러 짙은 화장에 원피스를 입었다는, ‘피해자다움’을 거부하는 저자의 젊고 당찬 목소리를 구어체로 담았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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